EU·영국도 비슷한 ‘가짜뉴스’ 대응?…“표현의 자유 우선 고려” [가짜뉴스]③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첫 방송통신위원장인 이동관 위원장은 취임 3주 만에 가짜뉴스 근절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이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를 출범시켰고, 인터넷 언론까지 심의를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가짜뉴스 대책'은 한 달여 사이 언론계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법적 근거도 빈약하고, 개념도 분명치 않은 '가짜뉴스' 대응이 언론자유를 크게 위축시킬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방통위와 방심위는 '가짜뉴스' 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속도를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방통위는 '가짜뉴스 근절 추진 현황과 해외 사례'라는 자료를 만들어 국무회의에 보고했습니다. KBS는 가짜뉴스의 개념부터 쟁점, 근절 계획까지 담긴 보고서 내용을 꼼꼼히 살펴봤습니다.
분석 결과는 3번에 걸쳐 정리합니다.
■ "해외에서는 언론사 아닌 플랫폼이 대상…제재가 목적 아냐"
방통위는 국무회의에 제출한 '가짜뉴스 보고서'에서, 우리 정부가 포털이나 플랫폼에 가짜뉴스 유통방지 책임을 부과하는 체계는 유럽연합(EU)이나 영국 등 해외 사례와 유사하다고 소개합니다.
앞서 방통위는 방심위에서 심의 진행 중인 기사는 인터넷 포털에서도 '심의 중'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포털 사업자들이 자율규제를 통해 가짜뉴스 콘텐츠는 삭제 ·차단하도록 하는 등의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을까요?
방통위 보고서에서 제시한 해외 사례입니다.
o (EU) 디지털서비스법 (DSA) 시행 (’23.8) 이후 최초로 플랫폼 사업자에게 ‘이스라엘-하마스 戰’ 테러선동 콘텐츠와 가짜뉴스 관련 조치방안 보고 요구
- 이에, X (舊 트위터), 메타 (페이스북), 틱톡은 불법 콘텐츠·게시물 및 관련 계정에 대해 삭제 등의 조치를 취했다고 보고
o (영국) 플랫폼 사업자에게 불법·유해콘텐츠로부터 이용자 보호 의무를 부과하고, 규제당국 (Ofcom)이 정보요구 및 벌금을 부과토록 하는 ‘온라인 안전법(안) (Online Safety Bill)’ 의회 통과 (’23.9.19
방통위가 제시한 사례들을 보면, EU와 영국 모두 언론사가 아닌 '플랫폼 사업자'를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또 플랫폼 사업자에게 '조치를 요구한 정보'의 생산자가 언론사인 경우도 없으며, 그 목적도 제재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당국의 지시와는 무관하게 사업자가 자율적으로 불법·유해 콘텐츠를 찾아 조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김민정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디지털서비스법은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불법으로 규정된 정보를 어떻게 모더레이션(관리)을 할 건지 밝히고, 그 다음에 어떻게 집행했는지 보고하라는 것"이고, "영국의 오프콤(Ofcom)도 특정 정보를 심의하거나 삭제하라고 플랫폼 사업자들한테 알리는 형태는 아니다"고 지적했습니다.
즉 우리의 심의·제재 상황과는 전혀 다른, 직접 비교할 수 없는 사례라는 겁니다.
다음은 최근 EU 디지털서비스법(DSA)이 적용된 사례와 영국 온라인 안전법에 대한 설명을 실은 기사입니다.
[바로가기] https://www.politico.eu/article/eu-starts-probe-into-musks-x-over-hamas-content/
'폴리티코 유럽'은 이 기사에서 EU 담당자들이 대표적 소셜 미디어인 'X'(옛 트위터)가 디지털서비스법을 준수했는지를 조사한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X의 정책과 관행이 테러리스트나 불법·가짜 콘텐츠를 처리하기 위한 디지털서비스법을 존중하는지, 불법 콘텐츠 확산과 허위 정보를 식별하고 제한 조치를 했는지 면밀히 조사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바로가기] https://www.bbc.com/news/technology-67221691
이 BBC 기사는 온라인 안전법이 무엇이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규제 대상이 무엇인지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Ofcom(영국의 방송통신규제기관)은 검열 기관이 아니고 콘텐츠 삭제 권한도 없다며, 사생활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충분히 고려할 것이라고 전합니다.
규제 대상으로는 아동 성적 학대나 통제·강압적 행동, 극단적 성폭력, 불법 이민과 밀수입, 자살·자해 조장, 동물 학대, 불법 마약·무기 판매, 테러 등을 열거했습니다. 어디에도 '가짜뉴스'나 '언론 보도'는 없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을 수록한 국무회의 보고서…법·제도 바르게 개선될까
국정감사장에서 이동관 방통위원장이 꺼내들었던 보고서는 방심위 전체회의장에서 다시 등장했습니다.
류희림 방심위원장은 지난달 30일 회의에 앞서 방심위원과 취재기자에게 이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류 위원장은 한 주 전 국정감사에서 이동관 방통위원장이 공개했던 자료라며, 방통위와 긴밀한 업무 관계에 있는 만큼 참고할 수 있도록 배포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자료를 받은 야권 추천 방심위원들은 "방통위원장 말만 믿고 내부 문제 제기 등 다 무시하고 (가짜뉴스 심의 문제를) 처리하면 위원장의 법적 책임뿐 아니라 위원회 기구의 존립 문제가 생기게 된다"며 거세게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야권 방심위원들에게 비판받은 이 보고서는 윤석열 대통령도 참석한 국무회의에서 보고됐습니다.
정부는 이 자료를 바탕으로 '여론 왜곡·조작 방지 범부처 TF'를 운영하고 한국판 '가짜뉴스 종합대책'을 내놓을 예정입니다.
하지만 앞서 전문가들과 함께 살펴봤듯 보고서에서 근거로 제시한 법 조항이나 판례는 방통위의 입맛에 맞춰 발췌되거나 포괄적으로 적용됐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적법하고 합리적인 '가짜뉴스 대책'이 마련될 수 있을지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입니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이동관 방통위원장은 '가짜뉴스 근절방안'의 법적 근거에 대한 질의에 이같이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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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인 기자 (izzana@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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