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경각심’은 살아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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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마디 말이 만들어낸 긴장감과 반향은 컸다.
서로 모르던 남녀가 만나 짝을 이뤄가는 과정을 담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여성 출연자가 남성 출연자의 애정 라인에 개입하며 조언하듯 던진 '경각심'이라는 단어가 그랬다.
그 굳세고 매서운 단어인 '경각심'이 최근에 개인적으로 겪은 한 가지 경험으로 인해 새삼 무겁게 다가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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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김재태 편집위원)
그 한마디 말이 만들어낸 긴장감과 반향은 컸다. 서로 모르던 남녀가 만나 짝을 이뤄가는 과정을 담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여성 출연자가 남성 출연자의 애정 라인에 개입하며 조언하듯 던진 '경각심'이라는 단어가 그랬다. 자신과 상대 여성의 관계가 거의 굳어졌다고 확신하는 남성 출연자의 순진함을 에둘러 지적하며 한 말이었다. 이 방송 회차가 대중에게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면서 여성 출연자가 자주 썼던 "경각심을 가지세요"라는 말이 한때 유행어처럼 퍼지기도 했다.
그 굳세고 매서운 단어인 '경각심'이 최근에 개인적으로 겪은 한 가지 경험으로 인해 새삼 무겁게 다가들었다. 몇 주 전에 한 모임에 나갔다가 덜컥 코로나19에 걸렸던 일이다. 대유행기에도 단 한 번 감염된 적이 없이 고난의 시기를 잘 버텨왔다 싶었는데 막바지에 이처럼 불편하고 불필요한 일을 당하니 조금은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이 일이 혼자만의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는 사실에 걱정 또한 적잖이 일었다. 같은 일로 고생한 사람이 주변에서도 잇따라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에 뒤늦게 감염돼 곤욕을 치렀다는 경험담이 심심찮게 들리는 것이 그 반증이다. 이처럼 코로나19는 지속적인 불확실성과 함께 여전히 살아있다. 게다가 환절기를 건너가고 있는 지금은 독감 바이러스에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시기다. 지난 호 시사저널에서도 보도했듯 한때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가 질기게 되살아나 기승을 부린다는 결핵의 낌새도 심상치 않다. 그야말로 감염병과의 전쟁이 여러 전선에 걸쳐 펼쳐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대로 손을 놓은 채 감염병과의 전쟁에 속수무책으로 끌려들어갈 수는 없다. 그렇다고 과거와 같은 엄중 방역 체제로 돌아가자는 얘기가 아니다. 이제 와서 모든 것을 예전처럼 되돌릴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국민들은 이미 느슨한 방역에 익숙해져 있고, 코로나19의 기세가 예전보다 많이 꺾인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시 방역 체제를 바꿨을 때 나타날 혼란도 무시할 수는 없다. 다만 앞서 언급한 단어인 '경각심'에 찬 마음가짐과 자세는 잊지 않고 다잡을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는 지난 8월31일 코로나19의 법정 감염병 등급을 인플루엔자와 같은 4급으로 낮추면서 이전까지 일상적으로 진행해오던 코로나19 확진자 수 발표를 중단했다. 따라서 지금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현실에서 얼마만한 위력으로 퍼져 있는지 객관적 자료를 통해 알아챌 길이 막혀있는 상태다. 우리 주변에 어떤 위험이 어떻게 잠복해 있는지를 알고 지내는 것과 모르고 지내는 것의 체감 차이는 크다. 그러므로 어차피 각자도생의 방역으로 들어선 마당에 조심하며 지내야 하는지, 안심하고 지내도 되는지를 스스로 판단할 근거 정도는 제시해주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는가. 예전처럼 매일이 아닌 주 단위, 월 단위로라도 중요 수치 등 필수 정보를 알려주는 친절함은 필요해 보인다. 공포는 항상 정보가 차단된 '무지의 공간'에서 증폭되기 마련이다.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은 지난 10월말, 광장에서 그리고 국회에서 그날의 희생을 기억하고 기리는 추모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그 추모만으로 아픔이 다 지워지고 치유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런 만큼 대형 감염병이나 대형 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은 우리의 삶 속에 계속 살아있어야 하고, 그 경각심을 든든하고 빈틈없이 받쳐줄 법과 제도도 함께 살아있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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