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카페] 황금알 낳는 우주 제약 공장, 지구 재진입 성공할까

이영완 과학에디터 2023. 11. 6.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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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약품 실험 위성, 지구 귀환 계속 연기
우주는 단백질 약품 제조에 최적 환경
머크, 우주정거장에서 항암제 균일 합성
일본은 희소질환 치료 신약 개발도 성공
“製藥 등 우주제조, 2030년 13조 시장 창출”
미국 우주기업 바르다가 지난 6월 발사한 의약품 실험 위성인 위네바고 1호. 당초 9월 지구로 귀환할 계획이었으나 정부 승인을 받지 못해 내년으로 연기됐다./Varda

세계 최초로 우주로 나간 제약 공장이 지구로 돌아올 날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정부의 안전 규제를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지만, 관료주의가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런데도 전 세계에서 우주에서 약품을 만들려는 제약사들이 잇따르고 있어 우주 의학, 우주 제약(製藥) 시대가 머지않아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전문가들은 우주 제약이 장차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맥킨지(McKinsey)의 일란 로젠코프(Ilan Rozenkopf) 파트너는 지난 8월 미국의 경제뉴스 채널인 CNBC 인터뷰에서 “우주 제조는 제약, 반도체, 미용, 건강 제품, 식품 등에서 2030년 100억 달러(한화 13조 1200억원) 이상의 시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의약품 실험 위성, 9월 귀환 일정 훌쩍 넘겨

미국 전기전자공학회(IEEE)가 발간하는 ‘스펙트럼’은 지난달 24일 “지구 상공 500㎞에 있는 작은 우주선이 지구 귀환 허가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우주선은 미국 우주 스타트업인 바르다 스페이스 인더스트리(Varda Space Industries)가 지난 6워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에 실어 발사한 위네바고(Winnebago) 1호이다. 현재 시속 3만㎞에 가까운 속도로 지구를 돌고 있다.

대부분 인공위성이나 무인(無人) 우주선은 임무를 마치면 동력을 끄고 지구 중력에 끌려가 대기권과 마찰해 불탄다. 지구 궤도를 돌다가 다른 위성이나 우주선과 충돌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바르다는 이와 달리 위네바고 1호를 지구로 재진입시킬 계획이다. 그 안에 후천성면역결핍증(AIDS)과 C형 간염 바이러스 치료제인 리토나비르(ritonavir)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미국 우주기업 바르다의 우주의약품 실험 위성인 위네바고 1호의 지상 준비 모습./Varda

바르다는 원래 9월 7일 미국의 유타주 사막에 있는 군사기지에 위네바고 1호의 화물 캡슐을 낙하시킬 계획이었다, 하지만 발사 당시 정부로부터 지구 재진입 허가를 받지 못했다. 미국 연방항공청(FAA)은 9월 6일 안전 문제로 위네바고 1호의 지구 귀환을 불허했다. 지구 재진입 과정이 잘못됐을 때 다른 항공기나 지상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점이 확실하게 보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펙트럼지는 같은 제원을 가진 위네바고 2호의 안전 분석 문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지상 피해는 무시할 수준이라고 밝혔다. 위네바고 2호는 내년 발사 예정이다. 스펙트럼지에 따르면 가장 위험한 상황은 지구 재진입 과정에서 우주선이 화물이 든 캡슐을 목표와 다른 방향으로 발사하는 경우이다. 캡슐이 재진입 과정에서 엄청난 열에 파손되거나 낙하산이 일찍 펴지는 시나리오도 생각해볼 수 있다.

안전 분석 문서에 첨부된 지도에는 멕시코 북부에서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거쳐 라스베이거스 근처까지 이르는 충돌 가능 위치가 표시됐다. 하지만 모든 가능성을 다 고려해도 예상 인명 피해는 1만4600분의 1로 계산됐다. 이는 나사가 요구하는 1만분의 1보다 낮은 수치라고 스팩트럼은 전했다.

바르다는 안전 분석 문서에서 위네바고 우주선이 지구 재진입 과정에서 오작동할 경우 충돌할 수 있는 지역(왼쪽)과 항공기 탑승자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지역(오른쪽)을 예상했다. 최악의 경우에도 피해가 NASA의 안전 기준 밑으로 나왔다./Varda

◇뉴스페이스 시대 맞춰 규제 지원도 늘려야

바르다는 위네바고 1호가 내년 1월 지구로 귀환할 수 있다고 본다. 착륙장인 유타 시험 및 훈련장(UTTR) 측이 내년 1월을 재진입 시점으로 제안했다는 것이다. 물론 FAA와 협의가 제대로 됐을 때 가능한 일이다.

바르다는 이번과 같은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호주 남부에 다른 착륙장을 준비하고 있다. 이곳은 미국보다 항공기 운항이나 인구밀집지역이 적어 안전 문제가 덜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FAA는 호주에서도 미국 기업이 주도하는 우주 임무의 재진입을 여전히 규제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우주 산업계에서는 정부가 민간 주도의 ‘뉴스페이스(New Space)’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바르다 공동 창업자 겸 회장인 델리안 아스파루호프(Delian Asparouhov)는 스펙트럼지에 “FAA가 더욱 신속하게 대응해야 한다”며 “상업적 우주 활동이 엄청나게 늘고 있는 것에 비해 FAA의 인력과 예산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미국 상원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와 제프 베이조스의 블루 오리진, 리처드 브랜슨의 버진 갤럭틱 같은 우주 기업들도 같은 우려를 나타냈다. 스페이스X의 부사장은 “민간 우주 로켓 발사 허가를 위해서는 FAA의 상업용 우주사무소에 지금보다 최소 두 배의 자원이 필요하다”고 증언했다.

나사 우주비행사 토마스 페스케가 미국 제약사 머크의 단백질 결정 실험 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머크는 우주정거장에서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를 더 균일하게 합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NASA

◇우주 의약품, 의료 인프라 부족한 개도국에 도움

우주인이 아닌 우주 물체가 지구로 재진입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정부 차원의 우주 탐사거나 아니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에서 드물게 지구 재진입이 일어난다. 지난 9월 미항공우주국(NASA나사)의 무인 탐사선인 오시리스-렉스가 소행성 베누에서 채취한 토양 시료를 담은 캡슐을 유타주 사막에 낙하시킨 바 있다.

바르다가 지구 재진입을 시도하는 것은 우주에서 만든 약품을 지구에서 분석하기 위해서이다. 이 회사는 중력이 거의 없는 우주에서 바이러스 치료제를 합성하는 새로운 방법을 실험하고 있다. 치료제 성분인 단백질은 중력이 없으면 더 균일하게 합성된다. 바르다는 우주에서 합성한 약품을 분석해 지구에서 리토나비르 제조 공정을 개선할 계획이다. 성공하면 더 좋은 약품을 훨씬 쉽고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다.

우주에서 단백질 의약품을 만드는 실험은 이미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나사에 따르면 이미 2021년 현재 ISS에서 500건 이상 단백질 결정 성장 실험을 수행했다. 이는 우주정거장에서 수행된 실험 중 가장 큰 규모이다.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 제약사 머크는 지난 2019년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 미세 중력’에 “우주정거장에서 면역항암제인 키트루다(Keytruda)의 약효 단백질을 지구보다 더 균일하고 점도가 낮게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최기혁 한국마이크로중력학회장(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미세 중력에서는 침전이나 대류가 크게 줄어 화학반응이 지상보다 완벽하게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만약 우주에서처럼 단백질 결정을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다면 지금처럼 병원에서 정맥 주사를 하지 않고 간단하게 피하 근육 주사도 가능하다. 또 약품 정제는 물론 보관도 쉬워져 제조, 유통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단백질 입자가 균일하게 용액 속에 고루 퍼진다면 냉장 보관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개발도상국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2022년 6일 미국 LA에서 열린 '케어 인 스페이스(CIS)' 챌린지에서 김정균 보령 이사회 의장이 우주정거장 사진을 띄우고 장차 민간 우주정거장이 우주헬스케어 분야의 연구개발 인프라가 될 것이라고 발표하고 있다./보령

◇황금알 낳는 거위로 떠오른 우주 제약

우주 제약은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된다. 최기혁 마이크로중력학회장은 “전 세계 제약 산업은 연구에 2800억 달러, 임상시험에 800억 달러를 쓴다”며 “우주 제약을 통해 개발 중인 화합물의 성공률이 높아지고 제품 개발 일정이 단축되면 큰 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우주 제약 생산은 잠재적으로 28~42억 달러 수익을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우주 제약은 기존 의약품의 제조 공정을 개선했을 뿐 아니라 우주 신약까지 탄생시켰다.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는 쓰쿠바대가 개발한 듀센 근이영양증 치료제 단백질을 우주정거장에서 합성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여기서 가장 효능이 좋은 단백질 결정 구조와 합성 방법을 확인해 2017년 환자 대상 안정성 임상시험을 마쳤다. 2020년 12월부터는 마지막 임상 3상 시험이 시작됐다. 이 병에 걸리면 근육세포를 구성하는 핵심 단백질이 합성되지 않는다. 전 세계 환자 수는 30만 명 정도인데 대부분 20대에 심장 근육 기능이 멈춰 사망한다.

국내에서는 제약사인 보령(옛 보령제약)이 우주 제약에 도전하고 있다. 미국 액시엄 스페이스(Axiom Space)는 오는 2027년까지 국제우주정거장을 대체할 민간 우주정거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보령은 액시엄에 투자해 민간 우주정거장의 실험 공간을 확보했다. 김정균 보령 이사회 의장은 “우주는 중력이 거의 없어 신약용 단백질 결정을 만들기 쉽다”며 “우주인에게 필요한 헬스케어 기술도 우주정거장에서 실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보령은 지난해 우주에서 필요한 헬스케어 기술을 다루는 ‘케어 인 스페이스(Care In Space, CIS)’ 챌린지 대회를 미국에서 처음 열었다. 당시 수상팀 중 하나인 나노 파마솔루션스의 대표는 “코로나 치료제 렘데시비르는 물에 녹지 않아 정맥주사로만 투여한다”며 “우주에서 나노크기로 작게 만들면 용해도가 높아져 집에서도 쉽게 복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바르다와 같은 우주 약품 실험도 추진되고 있다. 한림대춘천성심병원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함께 암세포 배양과 항암제 반응을 관찰하는 시스템을 개발해 2027년 위성에 실어 우주로 보낼 예정이다.

참고 자료

IEEE SPECTRUM(2023), https://spectrum.ieee.org/space-manufacturing-varda

NASA(2022), https://www.nasa.gov/missions/station/iss-research/crystallizing-proteins-in-space-helping-to-identify-potential-treatments-for-diseases/

npj Microgravity(2019), DOI: https://doi.org/10.1038/s41526-019-0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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