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선, 슬로시티, 염전…증도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이재진 2023. 11. 6.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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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특집]
증도 짱뚱어다리의 일몰. 470m 길이의 이 다리에서 다양한 갯벌 생물들을 관찰할 수 있다.

1975년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 검생이마을(검산마을)의 어부가 잡힌 물고기를 확인하려 그물을 거둬들이고 있었다. 고기는 잡히지 않고 쓰레기더미만 올라온다면서 어부는 그물에 걸린 잡동사니들을 배 바닥에 내팽개쳤다. 겉보기에 멀쩡한 그릇 몇 점은 개 밥그릇으로 쓰려고 따로 챙겼다.

개 밥그릇으로 쓰인 신안 보물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신안 보물선'은 이렇게 시작됐다. 보물선은 방축리 검생이마을 서북방향 2.7㎞ 지점의 도덕도 앞바다 밑에 있었다. 도자기 운반선이었고 1325년경에 침몰한 것으로 추정됐다. 난파선은 '신안선'으로 이름 붙여졌고 보물들은 국립중앙박물관과 목포에 있는 국립해양유물전시관에 보관, 전시되고 있다. 1984년 9월까지 11차례에 걸친 인양의 결과 도자기류 2만661점, 금속제품 729점, 석제품 43점, 동전 28톤 등 엄청난 양의 보물들이 쏟아졌다. 청자가 9,600여 점이었는데 대부분 원나라에서 만든 것이었고, 일부는 송나라 것도 있었다. 고려청자도 3점 발견됐다. 출토된 유물은 당시 해상 운송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보여 주며 고려와 중국, 일본의 3국 교류가 무척 활발했음을 알려준다.

증도와 화도를 잇는 노둣길. 섬과 섬을 잇기 위해 사람들이 돌로 만든 길이 지금은 포장돼 걷기 편한 길이 됐다

'슬로시티' 증도는 이렇게 보물선으로 먼저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면적 27.69㎢, 해안선 길이 46.5㎞인 증도에는 16개 마을이 있고 8개의 유인도와 93개의 무인도가 있다. 높은 산이 없고 대체로 나지막한 구릉과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신안군 증도는 2007년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로 선정됐다. 세계적 웰빙운동인 슬로시티의 출발점은 슬로푸드였다. 1986년 패스트푸드의 아이콘 맥도날드의 이탈리아 상륙을 계기로 촉발된 슬로푸드 운동은 사라져가는 전통문화와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 1989년 파리의 슬로푸드 선언문으로 이어졌다.

증도 우전해변의 천년해송길. 한국의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됐다.

빨갛게 익어가는 태양초, 메주콩, 잠녀

슬로시티 선정을 위해 증도를 찾은 이탈리아 실사단이 주목한 것은 번듯한 포장길과 건물이 아니었다. 그들은 비닐하우스 속에서 빨갛게 익어가는 태양초 고추와 길가에 널어놓은 메주콩, 그리고 물질을 막 끝내고 나온 잠녀들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증도는 2010년 연륙교로 육지와 연결됐지만 여전히 갯벌 섬이다. 증도에는 펄갯벌과 모래갯벌, 혼합갯벌 등 다양한 종류의 갯벌들이 훼손되지 않고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증도 갯벌은 도립공원인 동시에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이면서 람사르습지다. 갯벌의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증도해변에는 퉁퉁마디, 순비기나무 등 다양한 염생식물이 자라고 있고, 갯벌에는 짱뚱어, 풀게, 농게, 조개 중의 으뜸이라는 백합 등 100여 종 이상의 생물들이 살고 있는 생태계의 보물창고다. 증동리 솔무등 공원 앞에서 장고리 사이 갯벌에 놓인 470m 길이의 짱뚱어 다리에서 다양한 갯벌 생물들을 관찰할 수 있다.

신안해저유물발굴 기념비.

우전해수욕장은 증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백사장으로 꼽힌다. 조선시대 말 신안군의 전신이었던 지도군의 초대 군수 오횡묵은 증도 우전리 해변에 핀 해당화를 이렇게 적었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아득하게 끝없이 넓게 펼쳐져 있는데 이때 실바람이 불어와 향기가 코끝에 풍겨왔다. 벽지 바닷가 섬에 있어 널리 드러나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4㎞나 되는 해변을 뒤덮은 해당화가 혼자만 보기에는 너무도 아깝다는 그의 아쉬움이 절절이 전해진다. 지금은 해당화 대신 한국의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된 한반도 모양의 해송숲이 해변 뒤에 병풍처럼 서 있다. 해변 한쪽 끝에는 멋진 바다 전망을 갖춘 엘도라도 리조트가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우전해변 끝에 자리잡은 엘로라도 리조트. 뛰어난 바다 조망을 자랑한다.

국내에서 가장 큰 염전

증도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염전인 태평염전이 있다. 462㎢ 규모로 서울 여의도의 두 배쯤 된다. 이 염전은 6.25전쟁 직후인 1953년 피란민들을 정착시키고 소금 생산을 늘리기 위해 조성됐다. 매년 1만5,000톤의 천일염이 나는데 단일 염전으로 국내 생산량의 5%를 차지한다. 중국산 소금이 들어와 가격이 폭락하기 전까지 염전은 '백금밭'이라 불렸지만 지금은 더 이상 큰돈이 되지 않아 폐염전들이 많다. 소금은 '비온 뒤 소금'을 최고로 친다. 염도가 높지 않은 깨끗한 소금이기 때문. 그래서 '약소금'이라 부른다. 천일염은 7~8월에 생산된 소금을 최고로 치는데 장마철이라 비가 자주 와서 염분 농도가 높지 않기 때문이다.

연륙교가 놓인 후 증도를 찾는 사람들은 한 해 10만 명에서 이젠 100만 명 규모로 부쩍 늘었다. 시간에 치여 사는 사람들이 증도에 가면 시간이 슬로하게 흐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월간산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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