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경영진 소통 방해할 법무부 ‘상법 개정안’
[세상읽기]
[세상읽기] 김우찬ㅣ경제개혁연구소장·고려대 경영대 교수
지난 8월 법무부는 전자주주총회를 도입하는 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전자주주총회가 가장 필요했던 코로나 시기에는 미동도 하지 않다가 이제야 움직이는 것이 못마땅하지만, 늦게나마 개정안을 내놓은 것을 환영한다.
주주는 다양한 이유로 주주총회 현장에 직접 참석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외국이나 지방에 머물고 있을 수도, 질병이나 장애가 있을 수도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불가피한 팬데믹 상황에서는 참석 인원 자체가 제한된다. 전자주주총회 도입 목적은 이런 상황에 놓인 주주들이 전자통신 수단을 통해 주주총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해 주주와 경영자 간의 소통을 더욱 활성화하는 데 있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된 법무부의 전자주주총회 도입 방안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주주와 경영자 간의 소통을 후퇴시킬 가능성이 크다.
가장 큰 문제점은 법무부가 병행전자주주총회(주주가 선택에 따라 주주총회가 열리는 장소에 직접 출석하거나 전자통신수단에 의하여 출석할 수 있는 방식)만 허용한 것이 아니라 완전전자주주총회(주주 전부가 전자통신수단에 의하여만 출석할 수 있는 방식)까지 허용했다는 점이다.
완전전자주주총회가 주주와 경영자 간의 소통을 제약하는 방식임은 팬데믹 기간 중 이 방식으로 주주총회를 개최한 수많은 미국 회사들 사례로 이미 드러났다. 이들 회사에서 주주는 화상이나 음성이 아니라 텍스트 박스를 통해서만 질문을 제출할 수 있었고, 질문 내용은 경영자들만 알고 전체 주주들에게는 공유되지 않았다. 경영자들은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성을 악용해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을 의도적으로 외면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더라도 주주의 질문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답변하거나 후속 질문을 받지 않는 방식으로 주주의 질문권을 얼마든지 제약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 기관투자자협회(CII)와 양대 의결권 자문사(ISS와 글래스루이스)는 모두 완전전자주주총회 방식에 부정적이다. 예외적인 특수 상황에서만 완전전자주주총회 방식의 주주총회를 허용하고, 이러한 특수 상황의 구체적인 내용을 사전에 공시할 것을 요구한다. 또, 직접 출석하는 방식에서 주주가 누릴 수 있는 모든 권한과 기회가 완전전자주주총회에서도 동일하게 제공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두 의결권 자문사는 완전전자주주총회에 반대할 것을 권고한다.
법무부도 이런 문제점을 의식해서인지 개정안에서 직접 출석하는 방식과 병행하는 방식을 모두 배제하면서 완전전자주주총회만 허용하는 정관 개정을 금지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관이 모든 방식을 허용하더라도 직접 출석하는 방식이나 병행하는 방식의 주주총회 개최를 요구할 수 있는 소수주주권이 주주에게 부여되지 않은 이상, 경영자들은 완전전자주주총회를 고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주주가 현행 상법 제366조의 주주총회 소집 청구권을 통해 다른 방식의 주주총회 소집을 청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임시주주총회에 국한된 것이고 정작 중요한 정기주주총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번 법무부 도입 방안의 또 다른 문제는 정관 개정을 통해서만 전자주주총회를 도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정관 개정은 의결정족수가 높은 특별결의(출석한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과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으로 결의) 사항이다. 지배주주의 동의 없이 외부 주주의 힘만으로는 사실상 안건을 통과시키기 어렵다. 결국 아무리 주주가 원해도 지배주주가 반대한다면 병행전자주주총회를 개최할 수 없다.
종합하면 법무부의 이번 전자주주총회 도입 방안이 현실화하면 병행전자주주총회 개최를 거부하거나, 정기주주총회를 완전전자주주총회 방식으로만 개최할 수 있는 길을 지배주주나 경영자에게 열어주게 된다. 만약 법무부의 상법 개정안이 수정되지 않고 그대로 국회를 통과한다면, 전자주주총회는 주주와 경영자 간의 소통을 늘리기보다는 오히려 이를 제약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국회는 이러한 결과가 초래되지 않도록 상법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 병행전자주주총회만 새롭게 허용하되, 이를 정관 개정이 아니라 이사회 결의만으로 개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일정 수 이상 주주가 요구할 경우 경영자 의사와 무관하게 주주총회를 병행전자주주총회 방식으로 개최하는 것을 의무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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