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호의 침대축구] 'NO근본·NO잼' FA컵 이름, 개명 신청합니다

이현호 기자 2023. 11. 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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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스틸러스 FA컵 우승 세리머니/대한축구협회
FA컵 트로피/대한축구협회

[편집자주] 아침에 침대에서 눈을 뜰 때나, 밤에 침대에서 눈을 감을 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축구계 이슈를 전합니다. 너무 무겁지도 않고,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소식을 침대 위에 살며시 올려놓겠습니다.

[마이데일리 = 이현호 기자] 한국축구 최강을 가리는 대회 FA컵. 명칭이 너무 밋밋하다. 개성도 없고 정체성도 없다. 다른 나라 사례와 비교하면 더욱 초라하다.

대한축구협회(KFA)가 주최한 2023 하나원큐 FA컵이 지난 4일 결승전을 끝으로 긴 여정을 마쳤다. 포항 스틸러스가 전북 현대를 4-2로 꺾고 FA컵 트로피를 손에 쥐었다. 포항은 지난 1996, 2008, 2012, 2013년에 이어 2023년에 통산 5번째 FA컵 우승을 차지했다.

FA컵은 축구협회가 주관하는 최고 권위 대회다. K리그1·2에 소속된 프로팀은 물론 하부리그 아마추어팀과 대학팀까지 FA컵에 출전한다. 토너먼트 형식이기에 약팀이 강팀을 때려잡는 ‘자이언트 킬링’이 자주 나온다. 이 맛에 FA컵을 본다.

축구협회가 있는 나라라면 전 세계 어디서나 FA컵이 열린다. FA컵 자체가 축구협회(Football Association) 대회를 뜻하기 때문이다. 다만 국가별로 FA컵 명칭이 다르다. 대회 이름만 들어도 어느 나라 대회인지 단번에 알아차릴 만큼 정체성과 근본이 가득하다.

대한축구협회(KFA) 엠블럼/대한축구협회
일본축구협회(JFA) 엠블럼/게티이미지코리아
비셀고베 일왕배컵 우승 세리머니/일본축구협회

이웃 나라 일본의 FA컵은 ‘일왕배 JFA(일본축구협회) 전일본축구선수권대회’가 공식 명칭이다. 흔히 ‘일왕배컵’으로 줄여서 부른다. (일본에서는 ‘천황배컵’으로 쓴다.) 매년 결승전을 이듬해 1월 1일에 치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중국은 CFA(중국축구협회)컵, 호주는 오스트레일리아컵, 사우디아라비아는 킹스컵(국왕컵)이 FA컵 명칭이다. 저마다 나라 이름이나 이니셜을 넣는다. 군주 국가의 경우 왕권을 상징하는 이름을 활용한다. 그만큼 상징성과 권위가 높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독일은 DFB(독일축구연맹) 포칼, 스페인은 코파 델레이(국왕컵), 이탈리아는 코파 이탈리아, 프랑스는 쿠프 드 프랑스, 네덜란드는 KNVB(네덜란드 축구협회)컵, 스코틀랜드는 스코티시컵이 FA컵을 뜻한다. 이외에도 미국의 US 오픈컵, 브라질의 코파 두 브라질, 아르헨티나의 코파 아르헨티나가 있다. 추가 설명이 필요 없는 이름들이다.

라이프치히 DFB 포칼 우승 세리머니/게티이미지코리아
인터 밀란 코파 이탈리아 우승 세리머니/게티이미지코리아
레인저스 스코티시컵 우승 세리머니/게티이미지코리아

유일하게 잉글랜드만 수식어 없이 ‘FA컵’ 그 자체를 고유명사로 쓴다. 콧대 높은 축구종가 잉글랜드의 축구협회 명칭이 FA이기 때문이다. 잉글랜드 FA컵이 전 세계 모든 구기 대회 중 가장 오래된 걸 감안하면 자부심이 클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 FA컵이라고 쓰면 한국의 FA컵인지, 잉글랜드 FA컵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구글 검색창에 ‘FA컵’을 쳐봤다. 친절하게도 지구 반대편 잉글랜드 FA컵 일정과 소식을 알려준다. ‘한국 FA컵’이라고 검색해야 포항 우승 소식이 뜬다. 다른 포털 사이트도 잉글랜드 FA컵은 하부리그팀의 경기 결과까지 세세히 알려주지만, 한국 FA컵 일정은 꽁꽁 숨겨놨다. 속상하다.

인지도가 낮은 건 어쩔 수 없다 치자. 대회 명칭이라도 근본 넘치게 지을 수는 없을까. 외국인들이 처음 들어도 “아 한국의 FA컵이구나”라고 할 상징성을 넣을 수 없을까. 축구를 잘 몰라도 “우리나라 최고 대회구나”라고 느낄 임팩트를 줄 수 없을까.

맨시티 FA컵 우승 세리머니/게티이미지코리아
구글 검색창에 'FA컵'을 치면 잉글랜드 FA컵이 가장 먼저 뜬다/구글

정작 FA컵을 주관하는 대한축구협회는 FA컵에 무신경하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한때 FA컵 새 명칭 후보로 KFA컵, 코리아컵 등이 거론된 적이 있으나 흐지부지됐다. 종종 논의는 하지만 다른 이슈에 집중하느라 바쁘다”고 둘러댔다. 하긴, 결승전 개최 방식을 대회 도중에 변경하는데, 그깟 이름 따위 신경이나 쓸까 싶다.

고민하기 귀찮다면 팬 공모전을 열어서 새로운 명칭 후보를 추리는 방법도 있다. 대한축구협회 소셜미디어(SNS)에 공모전 포스터를 게시하고, A매치 소집 기간에 손흥민, 이강인, 조규성 등 인기 선수들이 “FA컵 새 이름을 지어주세요!”라고 말하는 영상을 찍어 홍보하면 금세 소문난다. 당선자에게는 축구대표팀 사인 유니폼이나 이듬해 FA컵 결승전 시축 기회 등을 제공할 수도 있다.

FA컵 우승팀 포항의 김기동 감독은 “FA컵은 아마추어 축구와 프로 축구를 망라해서 최고 권위의 대회다. 이 대회를 성장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대회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갑자기 상금을 올리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비교적 예산이 적게 드는 ‘간판 교체’부터 시작해보자. 어떤 간판을 달아도 무성의한 FA컵보다는 손님을 잘 끌어모으리라 확신한다.

손흥민 영상 메시지/대한축구협회
포항 김기동 감독 FA컵 우승 세리머니/대한축구협회
포항 김기동 감독/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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