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 군사합의와 지정학적 리스크[한반도24시]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하마스 등 대외 안보환경 급변
9.19 군사합의 군사충돌 완화 효력
‘힘을 통한 평화’ 보다 대화를 통화 평화유지 나서야
정전협정에 따라 군사분계선 양쪽에 각각 2㎞ 비무장지대를 설치하고 군사적 충돌을 막고자 했지만 크고 작은 충돌이 계속돼 왔다. 냉전시대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치열한 대치점이 휴전선이며, 비무장지대는 사실상 중무장지대로 변질됐다. 정전협정 당시 해상군사분계선을 설정하지 않아 유엔사가 관할하던 북방한계선(NLL)이 해상경계선으로 굳어졌다. 한동안 북한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다가 NLL을 ‘불법비법의 선’이라며 인정하지 않아 여러 차례 서해교전이 있었다.
1991년에 채택한 남북기본합의서에서는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을 정전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쌍방이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하고, 추후 해상불가침경계선을 재설정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북한은 1999년부터 독자적으로 ‘경비계선(해상경계선)’을 설정하고 서해 5도 지역을 분쟁수역으로 만들려고 한다.
2018년 ‘한반도의 봄’ 흐름을 타고 남과 북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군사충돌을 막기 위한 긴장완화 조치로 전방초소를 철거하고 합의지역에서의 군사훈련과 위협행위를 하지 않기로 하는 등 ‘무력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한다’는 군사합의를 이끌어냈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남북관계가 단절되면서 4·27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9·19 군사합의를 이행하면서 북미, 남북대화 재개를 모색하지만, 북한은 한반도 2개 국가론을 펴면서 핵·미사일 고도화와 인공위성 발사를 준비하는 등 위기조성 행위를 지속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의 장기화, 이스라엘-하마스전쟁 격화, 북-러 군사협력 가속화 등 안보환경이 급변하면서 우리도 군사합의를 파기하고 ‘힘에 의한 평화’를 달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분출하고 있다. 더욱이 대한민국의 영토가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라는 헌법 3조를 내세우고 흡수통일을 공공연하게 주장하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북한정권 수립 이후 남북회담과 북미협상, 6자회담 등을 통해서 수많은 합의를 도출했지만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북한과의 합의는 합의 직후부터 서서히 사문화의 길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나마 현시점에서 효력을 유지하고 있는 합의는 9·19 군사합의일 것이다. 합의 이후 사소한 위반행위들이 있었지만,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심각한 군사충돌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군사합의의 효력은 유지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미중전략 경쟁의 본격화와 진행 중인 2개의 전쟁 등으로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부각되지 않고 있지만, 군사충돌의 가능성이 높은 곳이 대만해협과 한반도이다. 과거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이 진행 중일 때는 외국의 신용평가기관들이 한국의 지정학적 위험이 낮아진 것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자국민을 상대지역에 두고 전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 정부가 군사합의 효력을 중지할 경우 대외신인도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고 부산세계박람회(EXPO) 유치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북한이 합의를 파기할만한 도발을 할 경우 효력정지를 고려해 볼 수 있겠지만, 우리가 먼저 합의를 파기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지금 당시 합의내용의 유불리를 따지는 것보다 합의를 유지하면서 대응전략을 마련하고 긴장을 완화시키는 노력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남북관계의 주요정책은 헌법상 대통령의 ‘통일의무’에 따른 통치행위에 해당한다. 감사원도 ‘정책결정은 감사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원칙을 적용해서 군사합의 감사요청을 각하했다.
하마스의 기습공격을 거론하며 군사합의 효력정지를 강하게 주장하는 쪽도 있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장사정포 등에 대한 대응전략은 하마스식 기습공격에 대한 대응전략과 같을 수 없다. ‘힘을 통한 평화’도 중요하지만 대화를 통한 위협감소, 평화유지 노력도 병행해 나가야 한다.
윤정훈 (yunright@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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