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사망 0명’ 유토피아를 연구하다
카메라·시트·운전대·안전벨트 통해 졸음·심박 등 실시간 상태 확인
CCTV 정보 받아 물체 출현 경고·그릴에 보행자용 ‘초록 불’ 표시도
스쿠터 종류별 맞춤 에어백 개발…교통 약자 위험 낮추는 기술 핵심
지난달 28일 일본 도치기현 우쓰노미야에 있는 혼다의 ‘연구·개발(R&D) 프루빙그라운드’. 정문을 지나 벚나무 길을 거쳐 터널을 통과하니 시원하게 뻗은 서킷과 연구동이 모습을 드러냈다. 혼다의 기술 연구와 관련 주행 테스트가 진행되는 곳이다. 혼다코리아 관계자는 이곳을 “혼다의 심장부”라고 표현했다.
이날 프루빙그라운드에서는 한국과 태국 언론을 대상으로 혼다가 개발 중인 안전 기술에 대한 시연이 이뤄졌다. 혼다 연구원과 함께 전기차 ‘혼다e’를 개조해 만든 안전차량(ESV)에 탑승해봤다.
차량에서 “운전 가능한 상태인지 실시간으로 체크한다”는 설명이 나왔다. 내부 카메라는 운전자인 혼다 연구원의 얼굴을 비춰 표정과 졸음 여부 등을 살피고, 운전석에 내장된 센서는 심장박동을, 스티어링휠은 맥박을, 안전벨트는 호흡 수준을 감지한다.
안전차량은 외부 서버(아마존 AWS)와 연결된 ‘커넥티드 카’다. 차량이 운전자의 상황과 주행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해 외부 서버로 전송하면, 서버에서는 이를 교통상황·폐쇄회로(CC)TV 정보 등과 종합해 시뮬레이션을 돌린 뒤 사고 가능성을 미리 예측해 차량에 전달한다.
운전이 시작됐다. 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시야도 나빠졌다. 신호등 없는 교차로에서 우회전을 해야 하는데 맞은편에는 좌회전을 기다리는 스포츠유틸리티차(SUV)밖에 없었다. 차량에서 “맞은편에서 오토바이가 다가오고 있다. 정지하라”는 안내가 흘러나왔다.
몇 초 뒤 SUV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던 맞은편 차선에서 오토바이가 튀어나왔다.
차량이 왕복 2차선 도로에 진입했다. 앞쪽으로 보이는 커브길 옆으로 검은색 밴이 한 대 주차돼 있었다. 커브길 진입 3~4초 전 차량에서 “저 자동차 뒤에 아이가 있다”고 경고했다. 혼다 연구원이 속도를 줄였다. 커브에 진입하자 검은색 밴 뒤에서 길을 건너려는 아이 마네킹이 나타났다. 실제 상황에서 이 같은 안내가 없다면 십중팔구 사고로 이어질 것 같았다.
외부 서버에 연결되지 않은 일반 차량에서도 이 같은 사고를 막을 수 있을까. 이번에는 혼다의 경차 ‘N박스’로 갈아탔다. 혼다 연구원이 시속 30㎞ 정도로 1차선 주행을 시작했다. 전방에는 차고가 높은 또 다른 차량이 주행 중이었는데 급하게 2차선으로 옮긴다. 갑자기 눈앞에 1차선에서 신호 대기 중인 스쿠터가 나타났다.
운전대를 잡은 혼다 연구원이 브레이크를 밟기도 전에 차량이 스스로 급제동하며 충돌을 피했다. 연구원은 “스쿠터 같은 작은 크기의 물체는 자동차가 스스로 감지해서 충돌을 회피하기가 쉽지 않다”며 “스쿠터 충돌 사고 등을 방지하기 위해 개발했다”고 소개했다. 최신 혼다 차량에 장착된 운전보조 기능이지만, 한국에서 판매하는 차에는 아직 적용되지 않았다.
이날 혼다가 시연한 자동차 안전 기술들은 대부분 보행자와 스쿠터 운전자 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카이시 히데아키 혼다 수석 총괄 엔지니어는 “2050년까지 전 세계에서 혼다의 자동차 및 오토바이와 관련된 교통사고 사망자를 ‘제로(0)’로 만드는 게 혼다의 목표”라며 “보행자와 오토바이 운전자 등 교통약자의 이동 위험을 낮추는 기술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그릴 부분에 발광다이오드(LED) 램프가 촘촘히 박힌 차량도 있었다. 혼다는 이 램프를 ‘커뮤니케이션 램프’라고 불렀다. 차량이 카메라를 활용해 전방에서 길을 건너는 보행자를 감지하면 커뮤니케이션 램프가 초록색으로 바뀌면서 램프가 보행자의 이동 방향을 따라 움직인다. 보행자에게 ‘차량 운전자가 인지하고 있으니 안전하게 길을 건너도 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길을 건너가라’는 뜻의 손짓을 램프가 대신하는 셈이다.
한밤중에 차량이 횡단보도 앞에 섰을 때는 ‘격자무늬 하향등’을 켤 수도 있다. 길을 건너는 이들이 격자무늬 하향등 앞을 지나가면 눈앞에 불빛이 반짝거리는 느낌을 받는다. 혼다 관계자는 “좌우를 살피지 않고 스마트폰을 보며 길을 걷는 보행자에게 ‘차량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신호를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량 후면에는 특별 제작된 반사판(리플렉터)이 설치돼 있었다. 반사판에 빛을 쏘자 상당히 밝게 반짝거렸다. 일반적인 반사판과는 형태나 소재가 달라 빛을 비출 경우 밝기가 10배 이상 높단다. 한밤중 불빛 하나 없는 골목에 자동차가 주차돼 있더라도 이 같은 반사판이 붙어있으면 골목길을 지나는 오토바이 등이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게 혼다의 설명이다.
혼다는 이날 스쿠터용 에어백도 언론에 공개했다. 충돌 시 핸들 중간에 있는 주머니에서 에어백이 터져나와 운전자의 가슴을 보호하는 방식이다. 오토바이용 에어백은 그동안 ‘혼다 골드윙’ 같은 커다란 오토바이에만 장착됐다.
혼다는 “허리를 펴고 운전하는 스쿠터 운전자의 안전을 보호하면서도 스쿠터에 알맞은 작은 크기 에어백을 개발 중”이라며 “오토바이 종류에 따라 에어백을 달리 개발해야 하기 때문에 혼다의 모든 오토바이에 에어백을 장착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과거 ‘기술의 혼다’라는 별칭은 앞선 동력성능 등을 일컬었다면, 이제는 안전을 더 생각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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