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共鳴)의 시간 맞은 한예종, 이제 세계와 경쟁해야 할 때"
"이제 '공명(共鳴)의 시간' 맞았다. 사회와 더 소통하겠다."
올해 개교 30주년을 맞은 한국종합예술학교(이하 한예종)를 3년째 이끌고 있는 김대진 총장(사진)은 최근 머니투데이와 가진 인터뷰 자리에서 줄곧 이런 사명감을 강조했다. 초기 어려웠던 시절을 견뎌내고 예술계에서 세계적인 스타들을 배출하고 있는 현재의 한예종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지난 3월 김 총장이 30주년 기념사를 통해 "한예종의 지난 30년은 '증명의 시간'이고 앞으론 '공명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사회적 역할에 대한 화두를 던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면서도 세계와의 교류나 경쟁도 필요하단 점을 분명히했다. 세계에서 주류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한예종이 배출하는 예술 인재들을 더 성장시키겠단 각오인 셈다.
김 총장은 아직 세계적 수준의 인프라가 갖춰지지 못한 우리 현실에서도 뛰어난 개인의 실력으로 세계 무대에 서고 있는 클래식 천재들을 키워낸 한예종의 역할을 강조했다. 다른 한편으론 클래식 음악계에서 K-스타들이 더 도약할 수 있으려면 기획력을 갖춘 산업적 지원체계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단 점도 지적했다.
다음은 지난달 31일 한예종 서울 석관동 캠퍼스에서 진행한 김 총장과의 일문일답.
-예술가(피아니스트)와 교수, 교육행정가(대학총장)로서 각각의 역할은 어떤가.
▶굉장히 비슷한 점이 많이 있다. 음악을 연주한단 건 결국 관객들하고 소통하는 것이다. 실무자들과 소통을 잘 해야 하는 대학 행정도 마찬가지다. 그 이해에 바탕을 둬야 되는 어떤 뿌리가 있는 것이다. 학교는 영리추구가 아니라 창의력 있는 학생들을 길러낸단 뿌리에서 시작을 하는 것으로 같은 목표 의식을 갖고 있다. '공적 마인드'로 교육기관의 본질을 공유하면서 소통을 많이 하고 있다. 처음엔 행정만 해오던 공무원들과 쓰는 언어가 달라 당황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이젠 잘 이해하고 있다.
평소 역할에 대해 통역관·메신저란 표현을 쓰는데 피아노 치는게 다르고 바이올린 하는게 다르듯, 교내에서 우리가 같은 목표로 같은 음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서로 이해시키고 하는 그런 중간 역할을 맡고 있다.
-학생들 입장에선 대선배인데.
▶교수를 27년 넘게 해오면서 학생들하고 소통하는 것에 대한 경험은 많다. 전공이 다르고 해도 학생들과 이야기 할땐 예술적 언어를 쓴단 점에서 통한다. 가끔 교내에서 학생들이 피켓들고 시위라도 하면 "제발 그런 뻔한 것 하지말고 예술적으로 뭔가 퍼포먼스라도 하면서 해봐라"라고 하면서 예술적 품격이 있어야 한단 점을 강조한다. 행정파트에 있는 구성원과도 우리가 '공동체'란 점을 강조하고 (음악·연극·영상·무용·미술·전통예술) 6개 원이 모두 같은 목표로 가고 있단 점을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6개 원이 서로 협조는 잘 되고 있나.
▶설립 초반부터 올해까지 한예종이 증명을 해야 하는 시기엔 각 원이 서로 성과를 내야해서 경쟁적 면도 있었고 협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젠 서로 융합을 하면서 새로운 '창의력'을 보여줘야하는 타이밍이 됐다. 창의력은 자기 것만 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라 결국 융합을 해야 한다. 다른 예술과의 융합을 경험해야 창의력이 생기는 것이고 예술가 본인이 그걸 느끼고 끄집어내야 한다.
학교는 그런 융합을 하고 느낄 수 있는 경험의 장을 제공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도 6가지 예술이 함께 모여 공부하는 한예종 같은 학교는 찾아볼 수 없다. 그만큼 학생들에게 아주 좋은 경험의 장을 많이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이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그런 예술인의 상이 '융합'이기도 하다. 옛날엔 한 가지만 잘하면 '장인'이라고 불렀는데 요즘엔 한 가지만 해선 살아 남을 수가 없고 '멀티'가 돼야 된다. 예술도 그것과 비슷하게 가고 있다. 자기 피아노곡만 잘 쳐선 더 깊은 음악인이 될 수는 없다.
-사회적 역할 측면에서 '공명의 시간'을 강조했는데.
▶예술가에겐 교육으로만 되는게 아니라 경험이 필요한데, 다른 분야 예술과 함께 공연을 하거나 작업 또는 프로젝트를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비예술 분야에서도 배우고 습득하고 사회로 나가는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것을 교과 과정에 커리큘럼화하긴 어렵기 때문에 공연과 같은 것을 계기로 6개 원이 서로 경험을 공유하게 하려고 한다. 30주년 기념 행사 공연도 그런 의미에서 6개 원이 다 참여를 했다. 그런 시도가 중요하다. 예술은 지속적으로 조금씩 발전하는게 아니라 제자리에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엄청난 도약을 하는 것인데 그런 계기를 학교에서 만들어보잔 취지다.
-음악분야를 넓게 보면 K-팝이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다.
▶답은 이미 나왔다. 우리 국민들의 창의력은 정말 대단하다. 요즘 다시 하는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을 봐도 저런 능력이 대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감탄할 때가 많다.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한참 늘어나고 K-팝 붐이 일기 시작할 때 아티스트들만으로 뻗어갈 순 없었다. (그 과정에서) 결국 기획자가 생겨난 것이다. 기획자가 전 세계하고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클래식도 마찬가지다. 그런 기획자들이 이제 나와줘야 한다.
음악을 예를 들면 세계적 콩쿠르를 나가는 건 그 세계를 움직이는 유명 기획사와 계약을 하기 위해 나가는 것도 있다. 주류 음악계에 들기 위해선 개인의 역량만으론 안 된다. 그 안으로 들어가긴 정말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 국내에서 글로벌 기획사들과 협업할 수 있는 기획사나 체계가 존재한다면 많이 달라질 수 있다.
-클래식 관련 기획사가 없는 이유는.
▶간단히 돈이 없어서 그렇다.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는 나라는 없고 민간영역이 담당해야 한다. 기획사가 튼튼해지면 굉장히 많은 일을 적극적으로 개척해 나갈 수 있는데 현재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 없다. 우리도 기업들이 메세나 활동을 꾸준히 늘리고 있지만 특정 아티스트 개인이나 단체를 정해 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본의 경우 우리와 다르게 클래식 기획사들을 지원한다. 그러면 이 기획사들이 아티스트도 발굴하고 많은 예산으로 해외와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
우리 기업들이 메세나 활동을 해주는 것도 정말 감사한 일인데 이젠 그 방향을 한번 좀 바꿔봤으면 좋겠다. 세계 시장과 겨룰 수 있는 그런 기획자를 양성하면 좋겠다. 클래식 스타들은 나오고 있는데 그들을 품을 수 있는 플랫폼이 없다. 이를 두고 평소 "아이들은 잘 하고 있는데 어른들이 잘못하고 있다"고 표현하는 이유다. K-팝엔 세계적으로 이름만 대면 알만한 기획자들이 있는데 클래식엔 그런 기획자들이 해외에만 있다. 이런 사실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한예종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립대의 역할은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무언가를 더 내놓는 것이라고 본다. 그렇게 잘 하는 어떤 인물(스타)이나 좋은 작품이 나오면 이렇게 잘하고 있으니 더 후원을 지원을 해줘야겠단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모든 예술 활동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상에 부합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와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작품과 인물을 배출해야 한다. 그래야 세계와 경쟁해야 한단 한예종의 진심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예산이 넉넉하지 않을텐데 기부는 잘 들어오나.
▶주어진 예산으로 잘 꾸려가야 하는게 국립대다. 정부의 예산 정책 기조에 맞춰야 한단 얘기다. 내년 예산이 줄어드는데 우리만 그런게 아니다. 기부는 중요하다. 사회에서 정직하게 사신 소시민들이 예술발전을 위해 한예종에 기부를 해줄 때 우리가 진짜 성공한 학교가 될 수 있다. 과거에 우리 학교를 지원했다 떨어졌는데 적지 않은 금액을 낸 기부자에게 굉장히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다른 대학을 졸업한 후 오랫동안 활동한 그 기부자가 "한예종이 성공을 해야 우리나라 성악계가 발전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을 전해줘 놀랐다. 개교 30년에 느낄 수 있는 감동인 셈이다. 앞으로도 '김밥 할머니' 같은 기부자들이 많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대담=최석환 정책사회부장 겸 문화부장 neokism@mt.co.kr 정리=유동주 기자 lawmaker@mt.co.kr 사진=이기범 기자 leekb@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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