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 부모 절연→극진 내조 김환기♥김향안 러브스토리에 감동(선녀들)[어제TV]
[뉴스엔 서유나 기자]
가수 겸 배우 하니가 김환기 화백, 김향안 여사의 러브스토리에 감동을 드러냈다.
11월 5일 방송된 MBC 시사 교양 프로그램 '선을 넘는 녀석들-더 컬렉션'(이하 '선녀들') 9회는 '한국의 피카소'로 통하는 김환기 화백 특집으로 꾸며졌다.
이날 만난 화가는 '유니버스'라는 작품으로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 132억 원을 기록한 김환기 화백. 한국 추상 미술의 대가이자 시초로 '노력하는 천재'로 통했다.
지역 유지였던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이른 나이 일본 유학까지 다녀올 정도로 엘리트였던 그는 자신의 영혼의 동반자인 변동림 여사를 유학 시절 알고 지낸 일본인 시인을 통해 만났다.
이화여대의 전신 이화여전 영문과 출신의 변동림 여사는 작가로 활동하며 지적인 매력을 뽐냈고, 두 사람은 1년간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당시 아이가 셋이나 달린 이혼남이었던 김환기 화백. 도슨트 이창용은 "처음 연애를 시작할 때는 (변동림 여사를 놓칠까 봐) 그 말을 안 하셨단다. 한참 뒤 고백하셨단다"고 말했다.
진실을 알게 된 변동림 여사의 반응은 의외로 쿨했다. "하나? 둘? 셋이야? 열이면 어때. 데려다 교육시키면 되지"라고 반응했다는 것. 하니는 "굉장히 걸크러시다. 너무 멋있다. 넉넉하게 품을 수 있다는 게"라며 감탄했다.
심지어 변동림 여사는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히자 처가와 인연을 끊고 '오직 당신만을 바라보고 살겠다'는 의미로 성도 이름도 버리는 결단을 내렸다. 그러면서 김환기 화백에게 청한 건 '당신의 아호 '향안'을 나에게 선물로 주시면 평생 그 이름으로 당신만 바라보고 살겠습니다'. 이후 변동림 여사는 '김향안'이라는 이름으로 김환기 화백과 결혼, 성북구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결혼한 김향안 여사는 뒷바라지에 매진했다. 김환기 화백이 술 먹고 늦게 들어와도 '(6.25) 전쟁 중에도 그림 그리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냐'고 다독인 것은 물론, 피난 생활이 끝나고 궁핍한 상황에 김환기 화백이 "돈이 없다"며 화를 내고 나가버렸다가 뒤늦게 사과하자 "그런 말은 보통 사람이나 하는 말"이라고 답했다고. 전현무는 "보살님이시냐"며 김향안 여사의 사랑과 헌신에 놀라워했다.
한국에서 당시 최고의 화가로 평가받던 김환기 화백은 문득 예술의 중심지 파리에 가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됐다. 이 마음을 안 김향안 여사는 어떻게든 목표를 이루는 남편의 성격을 알기에 자신이 먼저 프랑스로 건너가 답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마침 김향안 여사가 불어를 조금 할 줄 알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환기 화백의 포트폴리오를 들고 직접 영업을 뛴 김향안 여사는 곧 파리에서 전시회 요청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남편에게 전달했다. 이에 김환기 화백은 유일한 재산인 성북동 집을 팔고, 홍익대 미대 교수라는 안정적 직업까지 내려놓고 파리로 향했다.
김향안 여사의 내조는 파리에서도 이어졌다. 김향안 여사는 김환기 화백의 인터뷰 통역을 하고, 생활고 속에서도 담배를 끊지 못하는 남편을 위해 돈을 빌리러 다녔다. 그럼에도 남편에게는 담배 끊으라는 잔소리 한 번 한 적이 없었다.
김환기 화백은 계속된 생활고에 한국에 머물고 계시던 어머니의 별세에 파리 생활 3년 만에 귀국을 결심했다. 그뒤 홍익대 미대 학장으로 근무하던 그는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참가해 명예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는데, 이곳에서 마침 급부상 중인 뉴욕의 미술을 접하고 바로 뉴욕으로 떠나는 새로운 도전을 감행했다.
물론 이때도 김향안 여사의 내조가 빛났다. 미국 뉴욕에서 1년 유학하기 위해선 1억 이상이 필요한 상황, 때마침 록펠러 재단에서 아시아 일류 화가를 후원하겠다는 공고가 떴다. 이에 김환기 화백이 지원을 결심할 쯤 김향안 여사에게 '이미 내가 지원해놨다'는 내용의 편지가 도착했다. 전현무는 "완벽 그 자체"라며 몇 수를 앞서가는 김향안 여사에 감탄했다.
뉴욕으로 떠난 김환기 화백은 '전면점화'를 통해 결국 성공을 거뒀다. 작품 1개를 팔면 1년 생활비가 나올 정도. 뉴욕타임스엔 그의 작품에 대한 호평 기사가 쏟아졌다. 그치만 하루 16시간씩 작업을 하며 디스크가 심해진 김환기 화백은 입원해 수술을 받다가, 침대에서 낙상하는 사건으로 허망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김환기 화백 별세 후 남편을 그리워하던 김향안 여사는 파리에서 젊은 작가들을 후원하기 시작, 1979년 공식적으로 환기 재단을 설립했다. 또 남편이 생전 바라던 '환기 미술관'을 1992년 개관했다.
하니는 부부의 사랑에 "'방문객'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그 사람의 우주를 품는 일이라는 말이 있다. 누군가가 누군가의 우주를 품고 끌어안는다는 게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라며 감동을 드러냈다.
뉴스엔 서유나 stranger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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