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D집다] 농촌여행도 K-콘텐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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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혹스럽던 혹서가 거짓말처럼 지나가고, 어느새 들판에는 서리가 내린다.
농부에게 특히나 첫서리는 달리기 결승선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생각보다 많은 외국인과 재외 한국인이 농촌의 삶·자연을 직접 경험하길 원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가치가 농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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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혹스럽던 혹서가 거짓말처럼 지나가고, 어느새 들판에는 서리가 내린다. 농부에게 특히나 첫서리는 달리기 결승선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것으로 끝이 아닌 걸 알지만 어쨌든 통과하겠다는 마음으로 정신없이 달려가야 하는 곳’ 말이다.
크게 짓는 농사는 아니지만 작물의 종류가 많아 마음도 손도 바빴다. 고추·가지는 다 따내고, 씨생강을 캐는 와중에 한번씩 비가 와서 급히 차조며 수수 같은 것들을 잘라 창고로 들였다. 추워지는 날씨에 고구마와 늙은 호박에 방 한구석을 내주는 무렵엔 우리 마을 전체가 콤바인 소리로 가득해 ‘바쁜 건 우리만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살포시 했다.
일손이 부족해 농사일이 쌓여 있을 때 ‘바쁠 때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다’는 속담이 쓰이곤 한다. 다행히 우리에겐 고양이보다 일을 잘하는 친구가 있었다. 우리와 함께 지내는 열흘간 녹두를 따고 고구마 줄기를 벗기고 달래를 다듬는 일을 즐겁게 해준, 한국 농촌을 경험하면서 생전 처음 느끼는 추위에 질색한, 싱가포르에서 온 ‘우퍼(WWOOFer)’였다.
우프(WWOOF)는 유기농농가와 농촌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단체의 줄임말이다. 영국에서 시작됐고, 나라별로 지점이 있다. 우퍼는 그 단체 사람을 일컫는다. 유기농농가는 옛 시골 외할머니처럼 방문하는 우퍼를 맞이해주고, 그들과 함께 일하며 일상을 나눈다. 농가를 방문하는 우퍼는 농사일과 시골살이를 경험하고 지역사람들의 문화와 일상적인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일종의 문화 교류 프로그램인데, 중간 업체 없이 농가가 숙식과 농촌 일상을 제공하면 우퍼는 노동력을 준다.
경기 양평으로 귀농한 이듬해부터 우리는 우프코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다. 봄부터 늦가을까지 한달에 1∼2명, 그렇게 해서 6년간 만난 사람의 숫자가 꽤 된다. 생각보다 많은 외국인과 재외 한국인이 농촌의 삶·자연을 직접 경험하길 원한다. 나는 농부로서 겪은 경험을 나누고, 다른 곳에서 온 우퍼들과 에너지를 공유했다. 돈이 아닌 선의로 연결된 관계는 새삼 인간관계에 대한 놀라움을 전해줬다.
어느 나라에서나 비슷한 도시에서의 삶 말고, 진짜 한국적인 풍경과 문화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가치가 농촌에 있다. 그 풍경과 삶의 방식, 식문화 등은 바꾸어야 할 구태의연한 과거의 산물이 아니라, 보존하고 지켜야 할 전통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가. 산을 파내어 집을 짓고, 논을 없애고, 농지를 온통 하우스와 스마트팜으로 바꾸려 하지 않는가.
이탈리아의 아그리투리스모나 호주의 팜스테이 등도 모두 시골의 풍경과 문화를 그대로 관광자원으로 활용한 좋은 예다. 그렇지만 시골의 풍경과 문화가 사라진다면 이 모든 가능성은 사라지게 된다. 일본이 고령화하면서 일본스러운 시골 풍경이 사라져가니, 도시보다는 시골 여행을 얼른 해보라는 글을 읽은 적 있다. 우리나라에도 곧 비슷한 미래가 다가오지 않을까.
모든 변화에 반대를 할 수는 없다. 그래도 무엇을 가졌는지, 또 보존할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은, 그것을 잃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작업이 아닐까.
안정화 종합재미농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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