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래 그 사연] 꾹꾹 써내려간 진심어린 ‘말’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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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 낙엽이 지면 쓸쓸함이 불어온다.
한해가 간다고 생각할 때쯤 우리는 그리운 지인들에게 편지 한통을 보내곤 했다.
그래서인지 편지를 소재로 한 노래들은 가을과 함께했다.
"말없이 건네주고 달아난 차가운 손 가슴속 울려주는 눈물 젖은 편지/ 하얀 종이 위에 곱게 써내려간 너의 진실 알아내곤 난 그만 울어버렸네/ 멍 뚫린 내 가슴에 서러움이 물 흐르면 떠나버린 너에게 사랑 노래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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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 낙엽이 지면 쓸쓸함이 불어온다. 한해가 간다고 생각할 때쯤 우리는 그리운 지인들에게 편지 한통을 보내곤 했다.
그래서인지 편지를 소재로 한 노래들은 가을과 함께했다. 최양숙 ‘가을 편지’, 동물원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윤도현밴드 ‘가을 우체국 앞에서’ 등이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노래가 어니언스의 ‘편지’다.
어니언스는 임창제와 이수영이 결성한 듀오그룹으로 디스크자키 이종환이 운영하던 카페 쉘부르에서 노래를 시작했다. 이들은 1972년 TBC 신인 가요제에 출전해 가수 김정호가 만든 노래 ‘작은 새’를 불러 대상을 수상하면서 주류 가요계에 진출했다. 이듬해 ‘편지’가 수록된 첫 독집을 발표했다.
‘편지’는 국문학과생이던 김미선이 노랫말을 썼다. 사랑하는 이에게 직접 말하지 못하고 편지로 마음을 전해야만 했던 순수함이 담긴 포크송이다.
“말없이 건네주고 달아난 차가운 손 가슴속 울려주는 눈물 젖은 편지/ 하얀 종이 위에 곱게 써내려간 너의 진실 알아내곤 난 그만 울어버렸네/ 멍 뚫린 내 가슴에 서러움이 물 흐르면 떠나버린 너에게 사랑 노래 보낸다.”
이 곡은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1970년대 밥 딜런, 조안 바에즈 등의 포크음악이 한국에 상륙해 기타·청바지·맥주를 유행시키며 새로운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런데 당시 포크 음악은 엘리트들이 주로 소비했다. 대부분 젊은이가 대학을 가지 못하던 시절, 포크가수 김민기·이장희·윤형주·양희은 등은 대학생이었고 그들 위주로 포크음악을 부르고 즐겼다.
‘편지’는 그렇지 않았다. 이 곡이 인기를 끌면서 모든 국민이 포크음악을 보편적인 장르로 인식하기 시작해 ‘편지’는 의미가 있다. 만약 이 곡이 없었다면 오늘날 쎄시봉 열풍도 없었으리라. ‘편지’는 젊은이들 사이에 펜팔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펜팔은 노래책 뒤편에 적힌 누군가의 주소에 편지를 보내 친구나 애인이 되는 행위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오래전 편지는 통신수단 이상의 역할을 했다.
과거 편지지 역할을 하던 한지(韓紙)의 수명은 1000년 이상이었다. 그런 종이 위에 한글자 한글자 눌러써 편지를 보냈다. 요즘은 말과 글의 소중함을 모르고 지키지 못할 공약을 남발하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잦아졌다.
노자가 쓴 ‘도덕경’에 다언수궁(多言數窮)이란 말이 나온다. 말을 많이 하면 실수가 생겨 수가 막힌다는 뜻이다. 여기저기 정보는 넘치지만 지난날 써왔던 진중한 편지 한통보다 못한 것이 많다.
박성건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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