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영 감독 “남들이 안 하니 사회비판영화 만들 수밖에“

라제기 2023. 11. 6.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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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장은 흥분이 아직 가시지 않은 듯했다.

정 감독은 '부러진 화살'(2012) 이후 '남영동 1985'(2012), '블랙머니'(2019)에 이어 네 번 연속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영화들을 만들었다.

정 감독은 '한국의 켄 로치(사회 비판적 사실주의 영화로 유명한 영국 감독)'로 불리기도 한다.

정 감독은 스릴러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1982)로 데뷔해 '위기의 여자'(1987)와 '블랙잭'(1997) 등 장르 영화를 다수 선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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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년들'로 공권력의 어둠 들춰
1982년 데뷔 감독으로만 만 41년 창작
"좋은 노장 많아... 나이로 판단 말길"
정지영 감독은 “큰 계획을 세우지 않고 눈앞에 있는 일들을 해 오다 보니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며 “다음 영화는 4·3사건을 다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CJ ENM 제공

노장은 흥분이 아직 가시지 않은 듯했다. 영국 런던에서 받은 갈채의 여운이 얼굴에 어려 있었다. 그의 새 영화 ‘소년들‘은 지난달 18일 막을 연 제8회 런던아시아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됐다. 감독 데뷔 40주년을 기념해 회고전이 열리기도 했고, 평생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소년들’(1일 개봉)은 정지영(77) 감독의 17번째 장편영화다.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정 감독을 만났다.

‘소년들’은 1999년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슈퍼마켓 강도 살인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가 베테랑 형사 준철(설경구)의 노력으로 17년 만에 결백이 밝혀지는 세 소년의 사연을 그린다. 정 감독은 “잘 배우지 못하고 불우한 처지에 놓여 있던 소년들의 사정이 너무 딱해서 영화화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죄를 부정해야 할 처지에 놓인 진범과 소년들이 함께 자리했던 모습이 준 영향도 크다”고 덧붙였다. '소년들'은 4일까지 18만여 명을 모았다.

정 감독은 ‘부러진 화살’(2012) 이후 ‘남영동 1985’(2012), ‘블랙머니’(2019)에 이어 네 번 연속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영화들을 만들었다. 의식적인 연출 행보로 보일 수 있으나 정 감독은 “남들이 안 하니 내가 만들 수밖에 없었다“며 손사래를 쳤다. 눈길이 가는 여러 소재 중 남들이 영화화하지 않은 내용을 스크린으로 옮기다 보니 잇달아 사회 비판적 영화를 만들게 됐다는 얘기다. 그는 "민감한 소재라고 투자자들이 투자를 꺼렸으나 세 편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며 "사회비판영화가 대중성이 떨어진다는 건 편견"이라고 밝혔다.

정 감독은 '한국의 켄 로치(사회 비판적 사실주의 영화로 유명한 영국 감독)'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정 감독은 “적절치 않은 칭호”라고 말했다. “로치 감독은 실제 있었던 일을 정교하게 영화로 옮기지만 저는 장르적 특징과 재미를 활용해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이유에서다. 정 감독은 스릴러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1982)로 데뷔해 ‘위기의 여자‘(1987)와 ‘블랙잭’(1997) 등 장르 영화를 다수 선보이기도 했다.

영화 '소년들'. CJ ENM 제공

감독으로 활동한 지 만 41년. 연출부로 1975년 영화계에 정식 입문한 시기로만 따져도 만 48년을 영화인으로 살았다. 5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영화계와 세상은 급변했다. 그사이 정 감독은 “지금이면 제작비 200억 원은 들어갔을" ‘하얀전쟁‘(1992)을 태국에서 촬영했고, 연예계 실태를 그린 논쟁적인 영화 ‘까’(1998)를 연출하기도 했다.

정 감독은 영화 인생 최대 변곡점으로 빨치산을 정면에 내세운 ‘남부군‘(1990)을 꼽았다. 그는 “이전 연출작 ‘거리의 악사’(1987)는 심의로 10분이 잘려 나가 이야기 연결이 잘 안 됐다“며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남부군‘을 만들 수 있게 돼 시대 변화를 절감했다”고 설명했다.

영화를 함께 했던 동료들은 현업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정 감독은 국내에서 메가폰을 쥐고 있는 영화인 중 가장 나이가 많다. 그는 “저보다 능력 있는 노장 감독들이 일을 하지 못하는 건 한국 영화계의 손해“라며 “투자사들이 감독을 나이로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세태를 꼬집었다. 정 감독은 최근 불거진 한국 영화 위기론에 대해서도 안타까워했다. 그는 “해외 영화제에만 나가도 한국 영화에 대한 반응이 여전히 뜨겁다는 걸 실감할 수 있다“며 “어렵게 이뤄놓은 부흥기를 잘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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