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기의 사이언스토리] 전 세계 과학기술 경쟁의 최전선… 대전·여수 엑스포와는 격이 다르다
오는 28일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2030년 엑스포 개최지가 결정된다. 이미 우리나라에서 1993년 대전엑스포와 2012년 여수엑스포가 있었지만, 이번 엑스포는 다르다. 국제박람회기구는 박람회의 등급을 엄격하게 구분한다. 5년마다 개최되는 등록박람회가 있고, 규모와 주제가 제한된 인정박람회가 있다. 등록박람회는 참가국이 자비로 전시관을 건축하지만, 인정박람회는 주최국이 전시관을 만들어 참가국을 초청한다. 그만큼 등록박람회의 위상이 대단하다. 대전엑스포와 여수엑스포는 둘 다 인정박람회였고, 2030 엑스포는 우리가 처음 도전하는 등록박람회이다. 각국이 거액을 들이면서 엑스포에 참가하는 이유는 단순한 전시 행사가 아니기 때문이고, 그 시작에는 과학의 역사가 있다.
산업혁명을 주도한 것은 영국이었지만, 그 성과를 전시하는 박람회를 국가적인 행사로 만든 것은 프랑스였다. 1789년 대혁명 이후 혼란을 거듭하던 프랑스 공화국 정부는 과학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질서를 박람회로 제시하고자 했다. 1798년 처음 열린 이 행사는 분열로 대립하던 국민을 통합하는 데 큰 몫을 하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프랑스 산업 박람회는 공화정이 무너진 뒤 나폴레옹 시대와 왕정이 복고되는 혼란 속에도 계속되었고, 다시 왕정이 무너지고 입헌군주제와 공화정이 부활하는 격동기에도 이어졌다. 이 박람회의 의미를 주목한 것은 영국이었다.
1848년 유럽을 휩쓴 혁명의 파도가 영국에 들이닥치자, 빅토리아 여왕은 런던을 떠나 피신했다. 즉위 후 세 번이나 여왕이 총격받을 정도로 당시 영국은 군주제에 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었다. 1849년 11회를 맞은 프랑스 산업 박람회를 보고 온 시찰단은 여왕의 부군 앨버트 공(Prince Albert)에게 하나의 제안을 한다. 국내 산업에 치중한 프랑스와 달리 세계 여러 나라가 참가해서 과학적 성과를 경쟁하는 새로운 박람회였다. 1845년 런던 왕립 화학 대학교를 설립했던 앨버트 공은 누구보다 과학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왕실에 닥친 정치적 위기에 그는 ‘세계 박람회(World’s Fair)’ 구상을 추진한다. 당대 최고의 과학자 마이클 패러데이가 기획에 합류하고 영국 산업혁명을 이끈 이점바드 킹덤 브루넬이 실행에 앞장섰다.
1851년 5월 1일 영국 런던 하이드파크에 길이 수백m에 이르는 초대형 유리 건축물이 등장했다. 수정궁(水晶宮)으로 불리는 이 ‘크리스털 팰리스(Crystal Palace)’로부터 최초의 엑스포가 시작되었다. 이 건물의 면적은 무려 7만1794㎡로 3만6000㎡인 삼성동 코엑스 전시장의 두 배에 이른다. 개막식에 빅토리아 여왕 부부가 등장하자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이는 앨버트 공의 철저한 계산이었다. 혁명의 열기를 우려한 권력자들은 많은 군중이 모이는 것 자체를 피했다. 게다가 암살 시도가 계속되던 빅토리아 여왕 부부가 대중 앞에서 자유롭게 걷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유럽의 다른 왕실들은 이런 행동이 무모하다고 보았으나, 국왕 부부는 과학기술 육성으로 국민의 이익을 위해 함께 간다는 분명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빅토리아 여왕은 이 순간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으로 기록에 남겼다. 개막식의 입장권은 고액이었지만 매진되었고, 이후 가격은 계속 내려가 1실링(현재 한화로 약 8000원)에 이르렀다. 10월 15일까지 6개월간 지속된 행사에 당시 영국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600만명이 관람했다. 최신 과학의 성과에 매혹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영국 대문호 찰스 디킨스가 환호했다. 빅토리아 여왕 부부는 34회 이상 박람회를 방문한다.
수익도 엄청났다. 앨버트 공은 만족하지 않고 이 돈으로 엑스포 지역을 대규모 과학 문화 단지로 개발한다. 그 결과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과 과학 박물관, 자연사 박물관이 문을 열었고 그가 설립한 왕립 화학 대학교에도 자금이 투입되어 이공계 전문 대학인 임피리얼 칼리지(Imperial College)로 이어졌다. 이 대학은 1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고, 세계 대학 순위 6위의 명문으로 발전한다. 여기에 영국 최대의 공연장이 건설되었다. ‘로열 앨버트 홀’로 불리는 이곳의 공식 명칭은 ‘Royal Albert Hall of Arts and Sciences’로, 외벽에는 ‘예술과 과학의 발전을 위해 세워졌다(This hall was erected for the advancement of the arts & sciences)’는 문구를 새겼다. 매년 여름 음악 애호가들을 열광시키는 ‘BBC 프롬스’가 여기서 열린다. 이렇게 과학 문화 단지로 조성된 이 지역을 앨버트 공의 이름을 따 ‘앨버토폴리스(Albertopolis)’라고 부른다.
영국의 세계박람회가 크게 성공하자 이에 질세라 1855년 프랑스도 개최했고, 이후 서구 각국이 앞다투어 엑스포를 열었다. 런던의 수정궁이 그랬듯이 개최국들은 랜드마크 건축을 새로운 시대의 아이콘으로 등장시켰다. 1889년 파리 박람회를 위해 세워진 에펠탑이 그랬고, 1962년 시애틀 박람회에 등장한 스페이스 니들(Space Needle)이 그랬다. 1851년 600만명의 관람객으로 시작된 엑스포는 성장을 거듭해 수천만 명이 방문하는 엄청난 규모로 발전했다. 이처럼 엑스포는 5년마다 전 세계가 과학기술로 경쟁하며 인류의 현재를 조망하고 미래를 제시하는 곳이다. 앨버트 공의 비전은 영국을 빅토리아 시대의 번영으로 이끌었으며 서구 열강들이 이를 따라갔다. 1970년 일본이 아시아 국가 최초로 엑스포를 개최한 이후 중국과 UAE가 뒤이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엑스포를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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