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터치] 작가의 말

김담이 동화작가 2023. 11. 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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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출판될 책에 들어갈 작가의 말을 써야 했다.

이미 편집도 끝나고 작가의 말만 들어가면 되었다.

어린이 자료실의 정기를 받아 작가의 말을 반드시 쓰고 오겠다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소년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동안 나는 힐끗거리며 작가의 말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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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담이 동화작가

곧 출판될 책에 들어갈 작가의 말을 써야 했다. 이미 편집도 끝나고 작가의 말만 들어가면 되었다. 금방 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노트북을 펼쳐 놓았지만, 선뜻 키보드로 손이 가지 않았다. 무슨 말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되었다. 턱을 괴고 앉아 노트북 화면만 뚫어지게 보다가 이렇게 있다가는 한 글자도 쓸 수 없겠다는 생각에 가방을 챙겨 도서관에 가기로 했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때는 몽땅 챙겨 도서관으로 가는 게 최고이다. 집 바로 옆에 작은 도서관이 있었다. 1층 종합자료실, 2층 어린이 자료실, 3층 휴식 공간으로 이루어진 도서관에서 내가 주로 사용하는 공간은 어린이 자료실이다.

어린이 자료실을 이용하게 된 것은 몇 년 되지 않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항상 1층 종합자료실에 머물렀다. 동화책을 찾아 읽기 시작하면서 어린이 자료실을 이용하게 되었는데 문을 열고 발을 내디디는 순간 반해 버렸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게 되어있는 어린이 자료실 바닥은 내 방처럼 따뜻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책상과 의자도 있지만 보드게임도 하고 그림도 그릴 수 있었다. 조용히 책만 읽는 공간이 아니어서 마음에 들었다. 뭔가 아이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도서관 같았다.

나는 햇살이 드는 창가 자리를 좋아했다. 내가 도서관을 이용하는 시간에는 아이들이 없어서 조용하기도 했지만, 볕이 따뜻하게 드는 창가에 앉아 있으면 마음도 따뜻해졌다. 세상의 평화가 여기에 있는 것 같았다. 어린이 자료실의 정기를 받아 작가의 말을 반드시 쓰고 오겠다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세상에 맙소사.

볕이 드는 창가 자리에 태권도 도복을 입은 소년이 앉아 있었다. 절대 도서관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을 것처럼 생긴 소년이 문제집을 펼쳐 놓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 자리를 빼앗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건너편에 앉아 노트북을 펼쳤지만, 글은 써지지 않았다. 결국 노트북을 접고 일어났다. 힐끔 소년을 보았다. 여전히 문제집을 푸느라 정신없었다. 나는 내일을 기약하며 물러났다. 그런데 다음 날도, 다음 날도 볕이 드는 창가 자리는 소년의 차지였다. 소년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동안 나는 힐끗거리며 작가의 말을 끝냈다.

‘그런데 뭐야. 왜 학교 안 가고 도서관에 있어. 뭐지?’

궁금해졌다. 까맣게 탄 얼굴에 태권도 도복을 입고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소년은 도대체 어떤 아이일까. 소년을 다시 만난 건 생각지도 않은 곳이었다. 집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안에 소년이 있었다. 아이는 엘리베이터를 잡고 있다 내가 타니 문을 닫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안녕. 고마워.”

오늘은 태권도 도복을 입고 가방을 메고 있었다. 구석에서 머리를 기대고 서 있었다.

“몇 학년이야? 여기 살아?” “3학년이에요. 4층에 살아요.”

기운 없고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네. 학교에서 기분 나쁜 일 있었어?” “아파서 그래요. 축구를 하다 허리를 다쳤어요.”

오리처럼 입을 내밀고 말하는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나려고 하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소년이 내릴 때 뒤에 대고 말했다. “많이 아픈가 보다. 얼른 나아.”

아이가 잠깐 서서 나를 보더니 빙긋 웃었다. “많이 아프지 않아요. 안녕히 가세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소년과 몇 마디 나누지 않았는데 기분이 좋아졌다. 소중한 선물을 받은 것처럼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까짓것 기분이다. 휴전이다. 다친 라이벌과 불꽃 튀는 자리 경쟁을 할 수는 없잖아’.

속으로 외치며 후회했다. 작가의 말은 소년을 위해 썼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기에 남긴다.

“도서관 태권도 소년아, 나의 라이벌, 나는 너의 소년 시절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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