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소리] 어떤 신호
최근 유명 연예인들의 마약 파문 소식이 연이어 들려오고 있다. 연예계 마약 파문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다만 마약사범이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는 소식,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마약 음료 시음 사건을 함께 놓고 보면, 마약이 우리의 일상 깊숙이 침투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주하는 연예계 마약 파문은, 분명 과거의 것과는 다르게 다가온다.
우리의 뇌에는 보상회로가 존재한다. 우리가 배고픔을 느끼거나 목이 마를 때, 음식을 먹거나 물을 마셔서 욕구를 충족하면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이 분비되는데, 우리는 이를 통해 즐거움을 얻는다고 한다. 이러한 보상회로는 자연보상과 약물로 인한 인위적 보상으로 나누어지는데, 후자의 경우 전자에 비해 적게는 2배에서, 많게는 10배의 도파민이 분비된다고 한다. 마약이 위험한 이유는 이러한 보상회로를 강력하게 자극해 망가뜨리며, 다른 활동으로는 보상을 느끼지 못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자극적인 걸 통해 쉽게 쾌락을 얻는 건 비단 마약뿐만은 아닐 것이다. 음악이 점점 짧아지고 있고, 영화와 드라마 분량도 줄어들고 있으며, 영상 콘텐츠마저 점점 짧아지며 숏폼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처럼 대중문화 콘텐츠들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건, 대중들의 욕구가 짧고 자극적인 것들을 향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과거에 우리가 향유했던 긴 음악, 2시간이 넘는 영화, 100부작 대하드라마, 긴 분량의 영상 콘텐츠 등과 비교하면, 이러한 콘텐츠들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보상회로는 과거와 비교할 때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중독은 자극과 그에 따른 보상의 과정이 지나치게 간략화되었을 때 발생한다. 이는 우리의 일상에서 쉽게 살펴볼 수 있다. 자극적인 음식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며, 우리는 여기에 쉽게 중독된다. 먹는 순간 화려한 쾌락이 우리의 몸을 지배하며, 우리가 애써 세웠던 식단 계획은 그 앞에서 너무도 쉽게 무너진다. 다만 우리는 현재의 쾌락만을 탐닉하는 게 당장은 좋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 좋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매 끼니를 자극적인 음식으로 채우지 않으려 노력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늘 중독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며, 우리는 이를 인지하고 늘 조심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다.
이처럼 자극적인 것들과 비교할 때, 책은 자극과 보상 체계가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 매체라고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책 역시 판형이 작아지고 두께도 얇아지고 있는 추세이긴 하지만,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치는 시대에 두툼한 종이 뭉치와 마주하는 과정은 우리에게 이질적인 감각을 제공해 준다. 모든 걸 쉽게 떠 먹여주는 영상 콘텐츠에 비해 책은 굉장히 까다롭고 불편한 매체다. 한 권의 책을 읽기 위해 투자해야 하는 노력과 에너지는 다른 매체에 비해 훨씬 많다. 숏폼 콘텐츠가 우리를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는 데는 1분이면 충분하지만, 책이 우리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선 최소 몇 시간, 며칠, 몇 달이 걸린다. 도파민 분비의 관점에서 본다면, 책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매체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바로 이러한 이유로,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치는 시대 속에 책은 우리에게 균형 감각을 제공해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매체라고 할 수 있다. 독서량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현상과 각종 콘텐츠가 점점 자극적이고 짧게 바뀌는 현상은 결코 떨어져 있지 않다. 이렇게 자극적인 것에만 열광하는 세상에서, 마약이 일부 연예계를 넘어 우리의 일상 속에 침투한 건 어쩌면 특별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마약사범에 대해 비판해야 하고 그에 따른 강력한 처벌도 필요하겠지만, 오로지 자극적인 것에만 열광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빼놓고 지금의 현상을 이야기할 순 없다.
우리는 이미 많은 것에 중독되어 있으며, 이미 짧아질 대로 짧아진, 자극과 보상 사이의 거리감에 익숙해져 있다. 단순히 책을 읽느냐 안 읽느냐를 넘어, 책으로 대표되는 무언가가 우리의 삶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연예계 마약 파문과 마약사범의 급증은 몇몇 소수가 저지른 일탈을 넘어,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신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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