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키우듯 평생 동네책방 운동…잊지 않을게요, 당신의 독서열정

조봉권 기자 2023. 11. 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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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양정동 동의의료원 장례식장 특2호실에 마련된 강정아 책과아이들 대표의 빈소에 들어서자 벽면에 붙인 많은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잠잠이샘, 결혼하고 둘이서 인사하러 오겠다고 했는데 약속을 못 지켰네요. 오늘 둘이 손잡고 왔어요. 책과아이들이 저에게는 학교이자 일터이자 사랑을 이뤄준 곳이에요." "강정아 선생님 안녕하세요. 두근두근 당당하게(책과아이들의 연극 프로그램)에 밥데기 죽데기 연극을 했던 ○○○입니다. 그땐 초등학생이었는데 벌써 이렇게 고등학생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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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아이들’ 故 강정아 대표

- 토론·전시·인문공연 등 외길 인생
- 지역 작은서점 전국 확산 이끌어

지난 3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양정동 동의의료원 장례식장 특2호실에 마련된 강정아 책과아이들 대표의 빈소에 들어서자 벽면에 붙인 많은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 1일 별세한 강정아 대표(국제신문 지난 3일 자 17면 보도)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강정아 대표가 타계하기 직전까지 스마트폰에 써 내려간 글도 있었다.

지난 3일 부산 동의의료원 장례식장 강정아 책과아이들 대표의 빈소 한쪽에 모셔놓은 고인의 자취.


“팽나무 살았을 적 사진. 잎을 다 떨구고 참새와 까치에게 자리를 내주고, 매년 새 가지가 저렇게 뻗치고, 잎도 무성했다가, 겨울에 잎을 다 떨구고…. 겨우내 저러고 있으면, 머리 풀어 헤친 모습이라, 미친 나무라고도 했다. ㅎㅎ. 가지치기를 하면 어마어마한 양이라 , 여기서 다 썩힐 수 없어, 트럭으로 내다 버린다. 팽나무는 지금 누워서 잔다. 2023. 9. 18. 잠잠이.” 잠잠이는 강정아 대표의 별명이다.

“잠잠이샘, 결혼하고 둘이서 인사하러 오겠다고 했는데 약속을 못 지켰네요. 오늘 둘이 손잡고 왔어요. 책과아이들이 저에게는 학교이자 일터이자 사랑을 이뤄준 곳이에요.” “강정아 선생님 안녕하세요. 두근두근 당당하게(책과아이들의 연극 프로그램)에 밥데기 죽데기 연극을 했던 ○○○입니다. 그땐 초등학생이었는데 벌써 이렇게 고등학생이 됐어요.”

강정아 대표의 남편 김영수 책과아이들 공동대표의 말이다. “2019년 유방암 판정을 받았을 때 4기라는 진단이 나왔어요. 그 뒤로 치료를 열심히 하면서도 ‘내가 잘할 수 있고 즐거운 일이 책방에서 하는 문화 기획과 프로그램이니 거기서 오는 보람과 즐거움을 포기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하면서 꾸준히 일했습니다.”

책과아이들은 한국 동네책방 운동, 작은 서점 활동, 지역사회 문화사랑방의 가치 증명 등 영역에서 빛나는 존재다. 강정아 대표는 1997년 부산 부산진구 양정현대아파트 상가에 작은 공간을 마련하면서 첫발을 뗐다. 2001년 부산도시철도 1호선 부산교대 역 앞으로 옮겼고, 2009년 부산교대 정문 앞 지금 자리에 뜰이 있고, 서점, 모임공간, 전시실 등을 갖춘 건물을 신축해 이전했다.

올해 26주년을 맞은 책과아이들은 어린이·청소년책을 매개로 독서·토론·인문·공연·강연·전시·지역문화 활동을 두루 부지런히 펴면서 동네책방·작은 서점이 문화·인문의 실개천과 풀뿌리를 얼마나 잘 가꿀 수 있는지 증명했다. 몇 해 전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가 출범했을 때 초대 대표를 김영수 책과아이들 공동대표가 맡은 것도 그런 상황을 보여준다.

고인과 깊은 인연을 맺은 안미란 동화작가를 빈소에서 만났다. “투병 생활을 꿋꿋이 이어가던 어느 날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나는 역시 서점 일을 할 때, 애를 업고 있을 때 힘이 나요’라고. 그러면서 문화기획을 꾸준히 해내셨죠.” ‘애를 업고 있을 때 힘이 난다’는 고인의 말에서, 그가 수많은 어린이 청소년 부모와 문화·인문·예술 프로그램을 어떻게 여겼는지 알 수 있었다.

안 작가는 이런 일화도 들려줬다. “투병 중일 때 책 행사가 망미동에서 있었어요. 그때 하신 말씀이 이랬어요. ‘안 작가님, 내가 그간 죽음에 관한 책, 죽음을 맞이하고 준비하는 책을 많이 읽었거든요. 그중 이 책이 가장 좋았어요. 추천할게요.’” 그는 천생 책 사랑꾼이자 문화기획자였다. 빈소 복도에는 전국 출판사와 책방에서 보내온 화환이 놓여 있었다. 고인은 “소극장을 만드는 목표가 있다”고 말해왔는데, 그 꿈은 미처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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