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빈대의 귀환
1937년 8월16일 부산 동구 수정동의 한 가정집에서 불이 났다. 방 안 빈대를 잡기 위해 휘발유를 뿌리고 모깃불을 피워둔 게 잘못 불이 붙은 것이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불길이 사방으로 퍼지면서 마을 근처 20여채가 연소되고 15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1937년 8월18일 조선일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이 맞았다. 1921~1941년 빈대를 잡으려다 실제로 집을 태운 화재가 21건에 달했다는 보도가 남아 있다.
1970년 6월17일 오전 9시30분께 서울을 떠나 천안역에 멈춰 섰던 특급열차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4호차 20여개 자리에서 빈대가 나타난 것이다. 빈대를 본 승객들이 일시에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혼란이 빚어졌다. 열차 승무원들이 의자 시트를 벗겨보니 좌석마다 빈대가 붙어있어 100마리를 잡아냈고, 승객들의 몸에서도 30여 마리가 나왔다.(경향신문 1970년 6월17일)
1970년대까지만 해도 빈대는 생활 속의 익숙한 존재였다. 청결 상태가 좋지 않은 환경에서 창궐해 이·벼룩과 함께 가난과 궁핍의 상징이었다. 흡혈 해충인 빈대는 한 번 흡혈하면 일주일 동안 혈액을 소화하며 10~15개의 알을 산란하고, 일생 동안 200~250개의 알을 산란한다. 20도 이상의 실내에선 먹이 없이도 120일 정도 생존한다. 때문에 빈대가 한번 나타나면 박멸이 쉽지 않다.
빈대는 새마을운동을 통한 주거환경 개선과 1970년대 맹독성 DDT 살충제 도입 등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후 아파트 중심으로 거주 양식이 바뀌고 공중위생 수준이 개선되면서 토종 빈대는 자취를 감췄다.
2023년, 빈대가 돌아왔다. 달갑지 않은 ‘귀환’이다. 대구의 한 대학 기숙사와 인천 찜질방에 출몰한 사실이 알려진 데 이어 서울 가정집에서도 발견됐다. 외국인이 자주 사용하는 숙박시설 등에서 빈대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전국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빈대 확산을 막기 위해 신속하고 선제적인 방제·방역을 해야 한다. 또 다시 ‘빈대와의 전쟁’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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