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문병기]미국의 ‘제3시대’ 선언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2023. 11. 5.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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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외교 책사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달 24일(현지 시간)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FA)에 '미국 힘의 근원(The Sources of American Power)'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실제 설리번 보좌관은 기고문에서 "우리는 미중 경쟁이 소련 붕괴와 같은 변혁적 최종 상태로 끝나길 기대하지 않는다" "미국은 지정학적 경쟁의 프리즘으로만 세계를 보고 남반구 국가(글로벌 사우스)들을 대리경쟁의 장으로 삼으려는 유혹을 피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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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방미 앞두고 나온 미국판 ‘3不 정책’
한중 관계도 상호존중 아래 안정화 속도 내야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외교 책사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달 24일(현지 시간)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FA)에 ‘미국 힘의 근원(The Sources of American Power)’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이 기고문은 76년 전 ‘X’라는 미스터리의 인물이 같은 매체에 보내 당시 ‘아티클 X’로 불렸던 ‘소련 행동의 근원(The Sources of Soviet Conduct)’을 참고했다. 훗날 미국의 주소련 대리 대사 조지 케넌이 국무부에 보낸 비밀 전문으로 밝혀진 이 글은 옛 소련 붕괴를 유도하기 위한 봉쇄 정책을 주장해 미소 냉전의 서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설리번 보좌관은 이 글에서 “미국은 이제 ‘제3시대’의 시작점에 서 있다”고 선언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글로벌 리더십을 두고 미소가 맞섰던 냉전 시기,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올라선 탈(脫)냉전 시기에 이어 ‘상호 의존과 초(超)국가적 도전 속 새로운 경쟁의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내용이 골자다. 즉,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가 저물고 미국과 중국이 경쟁하며 서로에게 적응해야 하는 ‘다극 체제’가 열렸음을 선언한 셈이다.

이 글이 11∼17일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나왔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의 대(對)중국 정책의 의도를 명확히 하려 했다는 것이다.

실제 설리번 보좌관은 기고문에서 “우리는 미중 경쟁이 소련 붕괴와 같은 변혁적 최종 상태로 끝나길 기대하지 않는다” “미국은 지정학적 경쟁의 프리즘으로만 세계를 보고 남반구 국가(글로벌 사우스)들을 대리경쟁의 장으로 삼으려는 유혹을 피할 것”이라고 했다. 또 반도체 등 수출 규제엔 “좁은 범위의 기술에 초점을 맞추고 상호 연결된 세계 경제를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봉쇄 정책을 통한 중국 붕괴를 추진하지 않고, 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같은 다자안보협력체를 확장하지 않으며, 수출 규제의 무분별한 확대를 통한 미중 경제 디커플링(분리)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미국판 ‘3불(不) 원칙’을 내놓은 셈이다.

중국에 서슬 퍼렇던 바이든 행정부의 이 같은 태도 변화를 두고 워싱턴 소식통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차별화”라고 분석했다. 내년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맞붙을 가능성이 커진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보편적 관세 10% 부과, 중국산 제품 단계적 수입 금지 등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들고나오자 불필요한 대중 선명성 경쟁 대신 미중 관계 안정화라는 현실적 목표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취지다.

설리번 보좌관은 “최근 중국이 관계 안정화의 가치를 인식하는 듯한 고무적인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며 중국의 변화 징후를 해빙 무드의 배경으로 꼽았다. 중국 또한 미중 군 장성급 회담에 이어 남중국해 충돌 방지를 위한 해양 실무회담, 핵 군축 회담까지 응하면서 전방위적으로 소통을 복원하고 있다.

최근 중국 주재 서방 기업들의 투자가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리창(李強) 총리, 허리펑(何立峰) 부총리는 물론이고 최근 미국을 방문한 왕이(王毅) 외교부장까지 나서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를 당부하고 있다. 부동산 부실 등 중국 경제의 위기가 고조되면서 반도체 수출 규제 완화와 제재 철회 등 비현실적 목표를 누그러뜨린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내년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언제 다시 긴장이 치솟을지 모르지만 미중이 관계 안정화에 속도를 내는 것은 한국에도 반가운 일이다. 비대칭적이던 관계를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날이 섰던 한중 관계 또한 상호 존중의 새 균형을 찾고 안정화에 접어들길 기대해본다.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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