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라노] ‘해충들 세상’ 펼쳐지다… 해충 출몰 늘어난 이유
해외 교류 증가로 해충 유입 원활해
기후변화도 해충 증가 원인 중 하나
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우리나라에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 ‘초가삼간 다 타도 빈대 죽는 것만 시원하다’ ‘빈대 미워 집에 불 놓는다’ 등의 빈대와 관련된 속담이 많이 있어요. 라노는 빈대라는 벌레를 속담에서나 들어봤지, 실제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빈대를 잡으려고 집에 불까지 지른다는 속담이 생길 만큼 꽤나 끈질기고 독한 벌레일 것이라는 추측만 해볼 뿐이에요.
빈대가 등장하는 속담이 10여 개에 이를 정도로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빈대를 흔하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 새마을운동을 거치고, 1970년대 살충제 방역을 하자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빈대가 사실상 사라진 상태가 됐습니다.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빈대는 2010년대 다시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해외여행객이 증가했기 때문이었죠.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거치며 빈대 보고 사례는 차츰 줄어드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팬데믹이 해제되고 해외여행길이 열리자 빈대는 또다시 우리나라로 유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프랑스 파리에서 빈대가 기승을 부린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과 무관치 않다는 것입니다. 파리가 빈대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에도 빈대 출몰 사례가 보고됐죠.
우리나라는 지난 10월 인천의 한 사우나에서 빈대 성충과 유충이 발견된 데 이어 대구의 한 사립대 기숙사, 경기도 부천의 고시원에서도 빈대가 나타나는 등 전국에서 빈대가 출몰했습니다. 빈대는 보통 여행객의 가방에 붙어 국경을 넘나듭니다. 팬데믹 이후 여행객이 증가하자 해외에서 유입된 빈대가 우리나라 곳곳으로 퍼져나간 것으로 추정합니다.을지대 양영철(보건환경안전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빈대가 출몰한 장소 대부분이 외국인이 머물다 간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양 교수는 “빈대는 초기에 잡아내지 못하면 콘센트 안이나 화재감지기 속까지 번질 정도로 집 구석구석으로 숨어들어간다. 초기 방제가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빈대는 법정감염병을 옮기는 개체가 아니기 때문에 정부나 지자체에게 방제 의무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 방제에 철저해야 하죠. 양 교수는 처음 빈대가 발견됐을 때 침대 커버·이불 등을 뜨거운 물로 세탁하고 진공청소기로 구석구석 청소한 뒤, 스팀청소기로 열을 가해 초기에 빈대를 잡아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양 교수는 “초기 방제에 실패하면 무조건 방역 회사를 불러야 한다. 빈대가 불어나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경고했습니다.
빈대 외에도 외국에서 유입된 해충들이 도시 곳곳에 출몰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열대지방에서 서식하는 해충인 마른나무흰개미가 올해 국내에서 발견됐습니다. 지난 5월 서울 강남구의 주택가에서 처음 발견된 데 이어 지난 9월 경남 창원시의 주택가에서도 잇따라 출몰했죠.
마른나무흰개미는 목재를 갉아먹는 해충으로, 건축을 위한 수입 자재나 목재 가구 등에 붙어있다가 우리나라로 유입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른나무흰개미는 군체로 발견됐을 때 목재 문화재나 목조 건물 등을 붕괴시킬 정도로 큰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흰개미는 기온이 0도 이하로만 떨어져도 버티지 못하고 죽어버립니다. 그래서 겨울을 버티지 못하는 흰개미는 우리나라에서는 오래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겨울철 온도가 점점 높아져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입니다. 봄철 기온이 상승하고 가을이 늦게 찾아오며 활동 기간도 길어졌죠. 부산대 박현철(생명환경화학과) 교수는 “흰개미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것은 지구온난화하고 밀접하게 관련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를 해충 증가 원인 중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곤충은 변온동물입니다. 기온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 생애 주기를 결정하죠. 기온이 높아지면 곤충의 대사 활동이 활발해지고 더 빨리 성장하게 됩니다. 빠르게 성충이 되면 산란 시기도 빨라질 것이고 세대가 금방금방 교체됩니다. 해충 또한 곤충으로, 주변 온도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해충의 세대는 빨리 교체되고 숫자는 불어나는데 기후변화로 겨울은 점점 더 늦어지고, 따뜻해지고 있습니다. 당장 올해 가을만 해도 추워지지 않고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죠.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기온 상승 속도가 약 두 배 정도 빠릅니다. 2050년이 되면 가장 추운 1월의 온도가 10도 정도로 유지될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많은 해충이 죽지 않고 살아남게 될 것이고, 그에 따른 피해는 점점 더 늘어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고신대 이동규(보건환경학부) 교수는 “기후변화가 일어나서 겨울철에 죽었어야 할 해충들이 살아남으면 다른 지역 풍토병이 옮겨올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흰줄숲모기와 이집트숲모기는 뎅기열을 옮기는 모기입니다. 우리나라에는 흰줄숲모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뎅기열이 잘 발생하지 않습니다. 흰줄숲모기가 뎅기열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겨울철에 다 죽어 바이러스가 번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덕분에 뎅기열이 토착화되지 않았죠. 하지만 겨울철 기온이 점점 높아지고 있어 해충이 옮기는 풍토병이 우리나라에도 토착화될 수 있게 됐습니다. 이 교수는 “기온이 높아지고 강수량이 많아지면 해충들이 얼어 죽지 않고 다 살아남는다”며 “계속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 우리나라에서 해충이 옮기는 열대지방 풍토병이 퍼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습니다.
박 교수는 해충이 폭발적으로 번지는 지금의 사태를 “지난 시간 동안 쌓아왔던 문제가 맞물려 터져 나온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1970년대 당시 살충제 방역에서 살아남은 해충들이 약재저항성을 가지게 됐고, 저항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물려줬습니다. 이제는 살충제로도 쉽게 죽지 않는 해충들이 많아지게 된 것이죠. 도시화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과거에는 해충을 자연 통제할 수 있는 천적이 많았지만, 도시화가 진행되며 생물적 다양성이 떨어져 해충의 천적도 줄어들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따뜻하고 적당히 습한 겨울이 지속되자 해충들만의 세상이 펼쳐지게 됐습니다. 박 교수는 “정부와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방제를 실시해야 하고 장기적으로 해충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종 다양성을 회복하고 공원녹지화를 실시해 도시지만 다양한 생물이 살도록 해야 한다. 환경파괴·도시화·집단 거주 문제를 해결해야지, 살충제 방제로는 한계가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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