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 개발을 왜 나랏돈으로?…30조 R&D예산 낭비 ‘펑펑’

문지웅 기자(jiwm80@mk.co.kr), 고재원 기자(ko.jaewon@mk.co.kr) 2023. 11. 5.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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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예산 줄여도 GDP 대비 세계2위 수준
D램반도체, CDMA, 고속철 개발 ‘꿈의 예산’에서
경쟁률 1.3대1 신청만 하면 뿌려주는 예산 전락
OECD는 ‘체계적 방법, 창조적 활동’ 정의
국내서는 레시피, 포장만 바꿔는 기업도 지원
한계기업 생존자금으로 지원하는 사례도
생선구이 소스개발에 5백만원 지원하기도
A기업은 지난해 누룽지 떡볶이를 개발했다. 3개월간 정부 지원금 500만원을 받았다. A기업은 누룽지 떡볶이용 떡 압출기계 개발에도 정부예산을 사용했다. 문제는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이런 곳까지 써야하냐는 점이다. R&D 예산은 민간이 투자하긴 어렵지만 국가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공공재적 성격의 기술에 투자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떡볶이나 관련 기계 개발은 순수 민간영역에서 충분히 투자받아도 되지 않냐는 지적이다.

B사는 2년전에 스마트팜 관련 R&D 예산 1억원을 지원받았다. 이 예산으로 복숭아분말을 이용한 과일 찹쌀떡과 특수비닐포장 시스템을 개발했다. 하지만 이 역시 논란이 적지 않다. 국가 R&D 예산을 특정 민간 업체의 판매, 수익에 초점을 맞춘 기술 개발에 사용됐기 때문이다.

국가 R&D 예산 지출 구조조정이 논란이다. 여야 정쟁으로 비화하며 R&D 카르텔 개혁이 좌초되지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이처럼 취지에 맞지 않게 비효율적으로 쓰는 R&D예산은 이번 기회에 고쳐야한다는 주장도 많다. 이런 걸 줄여서 제대로 쓰자는 취지다.

정부는 예산 시즌을 맞아 국회에서 일부 증액이 불가피다는 점을 인정하는 모습이다. 다만 원상복구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이유는 이같은 낭비예산 때문이다.

일단 정부는 내년 예산을 많이 줄이더라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예산 비중은 일본에 이어 세계 2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대신에 정부는 ‘연구를 위한 연구’, ‘성과 없는 갈로파고스식 연구’처럼 현재 국가 R&D가 가진 구조적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대신에 과거 D램반도체,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고속철도처럼 국가 미래 성장동력이 되는 기술 개발에 성공한 ‘꿈의 예산’으로 위상을 재정립하겠다고 설명한다.

정부는 올해 30조원이 넘는 R&D 예산을 봐도 혁신성과는 전혀 무관한 개별기업 사업을 위해 사용하는 사례가 많아 개혁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정부 관계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R&D사업을 ‘사물에 관한 새로운 지식을 획득하거나, 이미 획득한 지식을 이용해서 새로운 응용을 고안 하기 위해 체계적인 방법으로 수행하는 창조적 활동’으로 규정한다”며 “하지만 정부 예산 30조원 중 상당액이 이같은 국제 기준과 동떨어져 집행되고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정부 R&D 예산이 갈비업체의 쇠고기 메뉴 개발에 사용되기도 했다. 2021년 한 갈비업체는 가축 먹이주기 기술개발 R&D 사업을 활용해 소비자 선호도가 높은 쇠고기 메뉴를 개발하는데 예산을 사용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공평하게 수당처럼 받는다’고 지적한 사례도 상당수 확인됐다. 정말로 열심히 연구하고 개발한 사업이나 연구진이 받아야할 예산지원을 모두 다같이 소액으로 나눠갖는 식의 집행이 많았다.

허들이 낮은 신청자격을 제시하고 이를 충족하는 모든 기업에 예산을 배분하는 식이다. 어떤 사업은 경쟁률이 고작 1.3대1 밖에 되지 않아 신청한 대다수 기업이 보조금처럼 R&D 예산을 받았다.

교수와 연구진들끼리 R&D 예산을 나눠갖는 관행도 여전하다. 한 대학교 산업기술거점센터는 산업체, 학교, 연구소가 공동으로 기술개발 과제를 설계할 때 지원해야 할 R&D 자금 14억원을 받아 공동과제 설계없이 학교 내 12명의 교수진이 평균 1억1700만원씩 균등 배분해 나눠가졌다.

한계기업 생존자금으로 R&D 예산이 사용된 경우도 있다. 소프웨어 개발업체 중 한 곳은 연간 매출액이 1억원이 안되고 손실 규모도 큰 상황이었다. 하지만 2020년부터 4년간 14억원의 R&D 자금을 지원받아 기업 생존 자금으로 활용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같은 과제로 한 부처의 R&D 자금을 중복 지원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C사는 중소벤처기업부 3개 사업에서 올해까지 2년간 연구비 3억7000만원을 받았는데, 과제명을 보면 사실상 동일하다. 기재부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15회 이상 정부 R&D 과제를 수주한 기업이 372곳에 달한다. 11~14회 지원 받은 기업도 593곳이나 된다.

정부 관계자는 “R&D 혁신성과 무관한 지원, 나눠먹기, 뿌려주기식 R&D 등 비효율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며 “출연연은 물론 학계등 과학기술계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의 과학기술 R&D 예산 삭감에 대해 과학기술계 내부에서 이번 논란을 비효율을 제거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과학기술 예산에 대한 문제가 윤 대통령에 의해 갑자기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문제는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부터 심도있게 논의됐다.

인수위에 참여했던 과학 기술계 인사는 “R&D투자의 성공을 위해 ‘나눠 주기식 예산배분’보다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에 선택적으로 집중하는 ‘전략적 예산배분’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는 것이 이번 정부의 중요한 국정과제였다”며 “삭감이라는 충격 요법을 통해 이 문제를 쟁점화시킨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과학기술 진흥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며 “이번 구조 개혁을 통해 R&D 개혁을 통해 ‘R&D 다운 R&D’에 향후 예산 투자를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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