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천 칼럼] 경제문명의 운명, 윤석열 경제의 운명
허드슨이 쓴 책 <문명의 운명>이 흥미롭다. 금융과 부동산 부문이 손잡고 지배하는 현대 불로소득자본주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나아가 미·중 갈등의 경제적 본질이 뭔지 알고 싶은 이들에게 나름 명쾌한 답을 준다. 쉽지 않은 내용을 이처럼 쉽게 풀어 놓은 책도 흔치 않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꽉 막힌 한국경제 생각도 많이 했을 법하다.
허드슨판 불로소득경제론의 첫번째 기둥은 자산소유권에 기반한 지대개념이다. 경제적 지대는 근로소득(임금, 이윤)과 대비되는 불로소득이며 가치를 초과하는 비생산적 가격부분이다. 이 지대는 자산의 소유·통제권에 기반을 둔다. 자산의 소유·통제란 곧 소득과 산출에 대한 특권적 지대청구권을 의미하며 국가가 이 특권을 보장한다. 따라서 그것은 정치적 성격을 갖고 있다. 생산적 실질경제는 불로소득청구권을 행사하는 소유권과 비생산적 자산경제의 그물망에 둘러싸인 채 지대지불부담 압박(지대압박)을 받고 쪼들린다.
둘째, 허드슨은 불로소득경제의 거시 축적메커니즘을 불로소득동학(rentier dynamics)이라 부르는데 그 중심에 자산인플레이션과 부채디플레이션이 놓여 있다. 빚내서 집 사기와 은행 담보대출 등으로 자산시장이 팽창하는 반면 부가가치생산과 민간소비가 중심인 실질경제 순환은 위축된다. 불로소득경제는 부채기반경제, 즉 빚으로 쌓아올린 집이다. 경제의 생산능력 및 부채상환 능력과 무관하게, 그보다 더 빠르게 부채규모와 이자가 증가하는 것이 거시동학의 기본공식이다. 허드슨이 말하는 이 동학은 피케티가 제시한 r(자본수익률)>g(경제성장률) 부등식보다 더 현실감이 있다.
셋째, 빚으로 쌓아올린 불로소득경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실질가치 창출과 유리된 채 허구적으로 팽창한 거품은 꺼지기 마련이다. 또한 이 불로소득 거품경제는 양극화 불평등을 조장한다. 자산계급이 지대놀이 잔치판을 벌이는 한편 자산약자와 노동약자들은 자산가격 상승과 이자부담 압박에 시달리며 내핍과 희생을 강요당한다. 은행도 긴축과 고금리 기조로 돌아선다. 부채디플레이션과 소비감소의 누적효과로 경제는 침체에 빠진다. 여기에 공공서비스 민영화와 시장독점화, 물가상승이 가세한다. 이는 가계생활비와 기업사업비를 더 높이고 실물경제 지출능력을 갉아먹으면서 거시경제 악순환을 심화시킨다. 지금 우리는 이 침체국면에 빠져 고통받고 있다.
<문명의 운명>은 주로 미국경제를 정조준해 비판한다. 하지만 미국이야기만은 아니다. 부동산과 화폐금융의 판도라상자가 열렸을 때 인간경제가 어떤 운명에 놓이는지, 재앙을 맞는지 논하고 있으므로 윤석열 경제의 운명에 대해서도 설명력이 높다. 윤석열 경제는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으나 허울 좋은 자유의 깃발 아래 자산계급이 자유를 향유하는 불로소득경제 띄우기에 몰두하는 것이 1번이다. 그런데 허드슨의 이야기를 한국경제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는 몇 가지 대목들이 있다.
첫째, 불로소득경제 거시동학에서 자산가격상승은 자산약자에 지대압박으로 작용하는 한편 소비확대로 이어지는 순환고리도 존재하는데 이를 부(富)의 효과라 한다. 그런데 미국과 달리 한국 자산시장 특성상 이 효과가 희미하다. 한국의 자산투자는 실질경제와 단절되어 미국보다 훨씬 더 돈 놓고 돈 먹기 성격을 띠고 있다. 둘째, 한국 실물경제는 고도로 수출의존적이며 내수가 부진할수록 수출증대에 목을 맨다. 그런데 중국수출이 30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윤 정부의 외교참사가 큰 요인이다. 또한 국내투자는 부진한데 대기업의 미국투자는 요란하다. 셋째, 윤 정부는 고물가 고금리의 경기침체기에 시대착오적 긴축재정에 집착한다. 정부소비증감률이 3분기까지 -1.6%로 역성장이다. 그럼에도 감세와 세수부족으로 역대 최대 재정적자를 기록한다. 재정참사가 침체를 심화시킨다. 미국이 고금리 긴축을 확장재정으로 만회해 정책반전을 도모하고 있는 것과 정반대다. 넷째, 약자 대중은 지대압박과 저임금압박을 함께 받고 있다. 2022년 실질임금 인상률이 4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임금감소가 소비침체를 심화시킨다. 미국이 호황 속에 고용시장이 탄탄한 것과 대조된다. 더구나 한국은 미국이 고금리 강달러로 타국에 전가하는 인플레압박을 그대로 받는다.
윤석열 경제에 희망이 있을까. 선거철이 되니 포퓰리즘적 지원보따리를 푼다. 유산자특혜 특례보금자리론으로 정책실패를 저질러놓고 태연히 은행갑질과 종노릇 이야기까지 한다. 국민이 바보인가. 강서구청장 선거결과가 현재 민심의 흐름을 보여준다.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지식인선언네트워크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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