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발언대] 매입임대주택 예산 불용, 그 자체로 문제다
심각하다. 서울시의 매입임대주택 사업 실적이 지난 9월 기준 6.5%에 불과하다. 공공임대주택에는 영구임대, 국민임대, 매입임대 등 다양한 유형이 있는데, 우리가 흔히 아는 임대아파트가 건설형 임대주택이라면, 매입임대는 다가구 주택 등을 매입해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방식이다. 매입임대주택은 대규모 신규 택지 개발을 하지 않고 도심 내 다양한 유형의 주택을 빠른 시간 내에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신혼부부, 청년을 비롯해 쪽방이나 고시원, 반지하 거주 가족들에게 매입임대주택은 꼭 필요한 대안이다.
이러한 예산을 불용하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다. 그런데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이후 서울시 매입임대주택 공급실적은 매년 계획에 미달하고 있다. 이를 수행하는 SH공사 김헌동 사장은 서울의 집값이 비싼데 주택을 매입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는데, 투명하고 합리적인 과정을 거쳐 적정한 가격에 매입하기 위한 노력은 공사의 당연한 책무다. 집값이 비싼 것은 조건이지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될 수 없다.
반면 정부와 서울시는 집을 둘러싼 갖은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매입임대주택을 해결책으로 꼽아왔다. 작년 여름 반지하 수해 참사 이후 서울시는 매입임대주택 공급을 후속 대책으로 발표했다. 올해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가 커지자 정부는 피해주택을 임대주택으로 매입하겠다고 했다. 영화 <기생충>이 유명해지자 매입임대주택 신청 유형에 반지하 거주자를 포함시켰다. 시시때때로 발생하는 집 문제에 대해 매입임대주택을 늘리고 있다, 늘리겠다 공언하면서 책정된 예산조차 집행하지 않는다면 모순이 아닌가.
내가 만나는 쪽방, 고시원 주민들에게도 매입임대주택은 삶의 유력한 대안이다. 대기자가 많은 영구임대주택은 기대하기 어렵고, 매입임대주택을 제외한 다른 공공임대주택은 이들이 감당하기 비싸기 때문이다. 한 홈리스는 공공임대주택 확대를 요구하며 ‘나이 많은 이 기다리다 죽겠다’는 팻말을 들었다. 여기엔 별다른 은유가 없다. 수백번대에 이르는 대기번호를 받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이들이 지천이며, 2021년 한 해만 해도 서울에서 매입임대주택을 신청했다 탈락한 사람이 4만4000명에 이르기 때문이다.
오는 11월9일은 7명의 목숨을 앗아간 국일고시원 화재 참사 5주기다. 며칠 전 강남 전원마을 비닐하우스에 살던 80대 노인이 화재로 사망했다. 여관, 판잣집, 비닐하우스 등 이른바 비주택에 거주하는 이들의 숫자는 4년 만에 오름세로 전환됐다고 한다. 집값이 치솟을 때마다 가난한 이들의 거처가 가장 먼저 열악해지는 도시의 공식은 언제쯤 끝나는가. 집이 아닌 곳에 살다 죽어간 이들은 얼마인가. 왜 우리는 같은 참사를 반복하는가. 남아 있는 매입임대주택 예산을 두고 질문해볼 일이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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