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아의 갈등하는 눈동자] 당신이 동시대인이라는 영광
‘거대한 동시대인’이라는 말을 만지작거린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책 <타오르는 질문들>에서 발견한 표현이다. 이 책에는 시몬 드 보부아르에 관한 글이 실려 있는데 애트우드가 거장일 때 쓴 원고인데도 보부아르를 향한 흥분감이 역력하다. 오래전 토론토에서 대학을 다니던 젊은 애트우드에게 프랑스 실존주의자들은 숭배의 대상이었다. 카뮈와 베케트와 사르트르 같은 명사들 사이에서 여자는 딱 한 사람 뿐이었고 그게 보부아르였으니 그에 대한 애트우드의 선망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스무 살의 애트우드는 생각했다.
“초특급 지성들이 모인 파리의 올림포스 산에서 한자리를 차지한 여성. 그녀는 얼마나 겁나게 억센 사람일까! (…) 뼈 있는 말들, 지분대는 손 갈기기, 태평한 연애 한 번, 두 번, 또는 스무 번… 그리고 영화에서처럼 흡연도 필수였다.”
보부아르를 떠올리면 도시적이고 맵시 있고 쿨하고 지성이 흐르는 이미지들이 뒤따랐으나 애트우드의 생활은 그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파리로 가는 게 로망인 토론토 청년이었고, 살롱 테이블에 자연스레 섞일 만한 옷은 한 벌도 없었으며, 담배를 멋지게 피워보려 해도 쿨럭쿨럭 기침이 나왔다. 애트우드는 캐나다 촌뜨기인 자신을 실감했다. 훗날 노년이 된 그는 이렇게 쓴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왜 그렇게 두려웠나요? 여러분은 쉽게 물을 수 있다. 여러분에게는 거리감이 주는 이점이 있다. 죽은 사람은 산 사람보다 본질적으로 덜 무섭다. 특히 후대의 전기 작가들이 애초에 미화됐던 면들을 깎아 원래 크기로 줄여놓고 심지어 결함까지 꺼내놓았다면 별로 무섭지 않다. 그러나 내게 보부아르는 거대한 동시대인이었다.”
애트우드의 엄마와 보부아르
보부아르가 살아 있을 때 <제2의 성>을 끝까지 읽었을 애트우드라는 작가 지망생을 상상한다. 역사 속 위대한 저자들을 헤아릴 때 누군가는 애트우드와 보부아르를 동시에 떠올릴 테지만 그들 사이엔 시차가 있다. 애트우드는 1939년에 캐나다에서, 보부아르는 1908년에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거의 엄마뻘이었기 때문에 애트우드는 보부아르의 생과 자기 엄마의 생을 비교하곤 했다. 두 사람 모두 어린 시절에 1차 대전을, 어른이 되어 2차 대전을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전쟁의 중심지에 더 가까웠던 곳은 프랑스다. 냉혹하고 준엄한 보부아르의 시선은 프랑스가 겪은 참상과도 관련이 깊다. 애트우드는 상대적으로 자기 엄마에겐 냉철한 시선이 결여되어 있었다고 회고한다. 그의 엄마는 캐나다의 시골에서 말을 타고 스케이트장을 누비는 말괄량이였다.
“어머니에게는 소매를 걷어붙인 쾌활함, 징징대지 않는 현실성을 체화했다. (…) 존재의 가혹함에 압도당한 적이 있는가? (…) 내적 진본성, 또는 의미를 찾기 위해 몸부림친 적은? 상류 유산계급의 얼룩을 영원히 씻어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남자와 잠자리를 해야 할지 고민한 적은? (…) 우리 어머니라면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맑은 공기 속에 속보 산책을 한번 해봐요. 기분이 훨씬 나아질 거예요.’ 내가 울적한 지식인 모드로 청승을 떨 때 어머니가 해준 조언이다.”
나의 동시대인들
이 부분을 읽다가 웃음을 참는 데에 실패했다. 애트우드의 엄마와 우리 엄마가 놀랍도록 닮아서다. 우리 엄마는 세상 대부분의 문제를 현미밥과 된장국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듯이 말한다. 내가 글을 못 쓸 때에도, 관계를 망치고 있을 때에도, 중대한 계약을 앞두고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에도 엄마의 입장은 한결같다. “요새 현미밥이랑 된장국을 덜 먹어서 그래.” 그는 언제나처럼 밥을 안치고 냄비에 된장을 푼 뒤 콧노래를 부르며 제철 채소를 다듬기 시작한다. 못난 딸들이 으레 그러듯이 나는 작가로서의 내 결함-충분히 첨예하지 않음, 유치함, 사유의 길이가 짧음 등-이 모두 저 여자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물려준 엄청난 단순함과 명랑함이 아주 보잘것없는 장점 같았다.
애트우드에게 보부아르가 있었듯 나에게도 있다. 징그럽게 똑똑한, 내가 절대로 쓰지 못할 문장을 쓰는 동료 작가들이. 그들은 시시각각 나를 작아지게 한다. 그러나 <타오르는 질문들>을 선물하고 보부아르에 대한 애트우드의 헌사를 소리 내어 읽어준 것도 살아 있는 동료들이다. 그들을 선망하고 두려워하면서 배웠다. 우리가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 양쪽 다 글감이 된단 걸. 문학에선 풍요와 결핍을 무 자르듯 나눌 수 없단 걸. 나는 엄마의 생명력 덕분에 작가가 되었단 걸. 이런 진실은 거대한 동시대인들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알게 되고, 친구들 없이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할 거란 확신은 점점 더 굳건해진다. 그러나 모든 작가는 어떤 작가 때문에 작가가 되었다. 마거릿 애트우드 역시 그랬다는 게 내게는 엄청난 용기다.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헤엄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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