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세상] 돌아가는 삼각지

기자 2023. 11. 5.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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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첫날, 가수 유재하(1987년)와 김현식(1990년)이 각각 교통사고와 간경화로 요절했다. 그 이후로 대중음악계에는 ‘11월 괴담’이 망령처럼 떠돌았다. 1995년 그룹 듀스의 김성재와 2010년 원맨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이진원이 세상을 등졌을 때도 팬들의 충격이 컸다.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의 차중락, ‘안개 낀 장충단공원’의 배호, ‘하얀 나비’의 김정호가 모두 낙엽이 지는 11월에 요절했다.

그중에서도 배호는 이 계절에 한 번쯤 꺼내 듣는 가수다. 그는 1971년 11월7일 스물아홉의 나이로 병마와 싸우다가 세상을 떴지만, 여전히 장충단공원과 삼각지의 정서적 주인이다.

“삼각지 로터리에 궂은 비는 오는데/ 잃어버린 그 사랑을 아쉬워하며/ 비에 젖어 한숨 짓는 외로운 사나이가/ 서글피 찾아왔다 울고 가는 삼각지.”

배호는 1967년 이 노래를 발표하면서 가요계의 신인상을 휩쓸었다. 애수에 젖은 저음의 바이브레이션과 중절모에 검은테 안경을 트레이드마크로 승승장구했으나 지병인 신장염이 늘 발목을 잡았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배호는 16세 때 외삼촌이 운영하던 ‘동화캬바레’의 악단에서 잔심부름하면서 음악을 시작했다. 스물한 살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 악단을 만들어서 드러머이자 가수로 활동했다. 이 노래가 배호에게 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작곡가 배상태가 전차를 타고 삼각지를 지나다가 만들었지만 녹음할 가수를 찾지 못했다. 남일해, 금호동을 거쳐 남진과 김호성에게 퇴짜를 맞고 건강 때문에 쉬고 있던 배호에게 찾아갔다. 결국, 만든 지 5년 만에 빛을 봤지만, 팬들의 사랑이 커질수록 배호의 건강은 악화됐다.

용산의 삼각지는 이제 대통령실이 있는 요충지가 됐다. 울고 가는 삼각지는 아니지만, 현대사의 파란만장한 현장임은 분명하다.

오광수 시인·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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