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같은 듯하지만 다른 미꾸리와 미꾸라지
오는 8일은 입동(立冬)이다. 과거 이 무렵이면 밭에서 배추와 무를 뽑아서 김장을 했다. 입동을 전후해서 5일 안팎으로 김장을 해야 김치가 맛있다는 속설도 있다.
예전엔 입동의 풍속으로 치계미(雉鷄米)라는 것도 있었다. 말 그대로 꿩(雉)과 닭(鷄)을 잡고 따뜻한 밥(米)을 지어 동네 어르신들을 대접하던 경로잔치다. 치계미는 입동을 비롯해 동지와 섣달그믐날 등에 벌이곤 했는데, 마을 사람은 아무리 살림살이가 어렵더라도 1년에 한 차례는 치계미를 위해 금품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마저도 형편이 안 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은 ‘도랑탕 잔치’로 대신했다. 이 무렵에 논밭 근처의 도랑을 파면 겨울잠에 들어가기 전 잔뜩 살이 오른 미꾸라지나 미꾸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이것으로 음식을 만들어 노인들을 대접하던 것이 도랑탕 잔치다. ‘추어탕 잔치’인 셈이다.
추어탕은 미꾸라지나 미꾸리를 재료로 한 음식이다. 미꾸리를 미꾸라지의 사투리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데, 둘은 생김새부터가 다른 물고기다. 우선 미꾸리는 몸통이 둥근 반면 미꾸라지는 좀 납작하다. 아울러 수염이 길면 미꾸라지, 짧으면 미꾸리다. 국어사전들도 둘을 다른 물고기로 설명하고 있다.
맛은 미꾸리가 미꾸라지보다 더 좋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추어탕의 고장’으로 유명한 전라북도 남원에 미꾸리를 재료로 쓰는 집들이 많다. 그런데 국어사전들은 ‘추어탕’을 “미꾸라지를 삶아 체에 곱게 내린 후 그 물에 된장을 풀어 우거지 따위와 함께 끓인 국”으로만 설명하고 있다. 또 국어사전들의 추어(鰍魚)에 대한 설명이 미꾸라지와 똑같다. 반면 미꾸리와는 조금 다르다.
이로 인해 마치 미꾸리는 추어가 아닌 것처럼 읽힌다. 게다가 국어사전들에 ‘미꾸라짓국’은 표제어로 올라 있지만 ‘미꾸릿국’은 없다. 미꾸리를 재료로 쓰는 추어탕 맛집들로선 서운할 법하다.
하지만 미꾸라지도 추어이고, 미꾸리도 추어다. 따라서 추어탕과 추탕의 국어사전 뜻풀이에 미꾸리도 함께 올라가야 한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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