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R&D 예산 복원 시늉에 그쳐선 안된다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3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33년 만에 삭감된 내년도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예산과 관련해 “전문가들과 학계 의견을 들어 필요한 부분은 대거 증액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한 데 이어 지난 2일 대전 대덕특구 50주년 행사에서 “연구자들이 제대로 연구할 수 있도록 돈이 얼마가 들든지 적극 뒷받침할 것”이라고 한 발언을 구체화한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이나 정부 당국자들의 언급을 살펴보면 진정 예산 복원 의지가 있는지, 시늉만 내는 데 그칠 것인지 종잡을 수 없다.
우선 대통령이 과연 입장을 바꾼 것인지도 분명치 않다. 그는 대덕특구 50주년 행사에서 “R&D다운 R&D에 재정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앞으로 R&D 예산을 더욱 확대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신진 연구자들과의 비공개 간담회에서는 예산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 현행 시스템을 언급하며 시스템만 고쳐지면 R&D 투자는 2배, 3배까지 늘릴 수 있다고 했다고 한다. 삭감액 복원보다 시스템 개선이 먼저라는 입장인 셈이다. 추경호 장관도 “R&D가 너무 비효율적이고 중복적이고 보조금식, 나눠먹기식, 편파적이란 문제제기가 굉장히 많았다”고 했다. 이런 발언들이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한다면 올해에 비해 16.6%(5조2000억원)나 삭감된 내년 R&D 예산안의 복원은 생색내기에 그칠 우려가 크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 3일 해외 출장을 이유로 예산안 심의에 불참한 것도 의지를 의심케 한다. 대통령이 R&D 예산에 대한 입장을 바꿨다면 그에 맞춰 정부 계획을 설명하고 입법부와 증액 방향을 협의해야 할 장관이 무단으로 자리를 비운 것이다. R&D 예산 복원이 초미의 관심사임을 모르는 것인지, 의원들의 질타를 듣기 싫었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주무장관으로서 무책임한 태도다.
현장 연구·개발 종사자들은 과학기술 경쟁력의 핵심인 기초연구사업의 복원과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연구를 보장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요구한다. 국회 심의에서 예산 복원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다면 젊고 유망한 인재들의 ‘탈한국’ 러시가 벌어질 우려가 크다. 과학입국으로 성장해온 대한민국에서 정부 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연구·개발 예산에 효율성의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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