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목격하며

한겨레 2023. 11. 5.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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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을 만들다 보면 누군가를,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여자 아마추어 야구팀 주전으로 활약하는 엄마를 응원하기 위해 주말마다 야구장에 온다던 초등학생, 시니어 모델로 무대에 서는 게 그저 좋다던 70대 할머니, 재개발로 사라질 골목 한켠에서 작은 정원을 함께 가꾸며 이곳을 오래 지키고 싶다던 노부부. 세상엔 다양한 형태와 빛깔, 온도를 가진 사랑이 있다는 걸 그들의 눈을 마주하며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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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말고]

게티이미지뱅크

[서울 말고] 이고운 | 부산 엠비시 피디

방송을 만들다 보면 누군가를,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여자 아마추어 야구팀 주전으로 활약하는 엄마를 응원하기 위해 주말마다 야구장에 온다던 초등학생, 시니어 모델로 무대에 서는 게 그저 좋다던 70대 할머니, 재개발로 사라질 골목 한켠에서 작은 정원을 함께 가꾸며 이곳을 오래 지키고 싶다던 노부부…. 세상엔 다양한 형태와 빛깔, 온도를 가진 사랑이 있다는 걸 그들의 눈을 마주하며 배웠다.

지역 행사나 축제에서 펼쳐지는 음악 공연 실황을 방송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업무를 하는 요즘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이들을 만나고 있다. 바로 공연에 참여하는 가수들의 팬이다. 자신이 응원하는 트로트 가수를 상징하는 색깔의 옷을 맞춰 입고 세심하게 제작된 펼침막까지 들고 와 열정적으로 소리치는 중년의 팬들, 좋아하는 가수를 직접 만나고 싶다는 일념으로 이른 아침부터 부산까지 달려온 젊은이들, 신인 아이돌을 위해 커다란 카메라를 든 채 촬영감독 못잖은 열정으로 셔터를 누르는 이들까지…. 방식에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모두가 자신의 가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진심을 전하려 애쓴다.

그런 팬들을 보면 언제나 궁금하다. 무대 위의 가수가 잘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도 어쩌면 그렇게 열정적일 수 있는지, 황금 같은 주말에 어떤 마음으로 여기까지 오게 된 건지 묻고 싶다. 하지만 중계차 안에서 현장에 있는 카메라들이 찍고 있는 장면을 살펴야 하는 나는 가끔 카메라에 팬들이 잡힐 때나 그들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커다란 환호와 박수, 흔들리는 펼침막과 휴대폰 불빛으로 존재하는 팬들의 사랑은 어쩐지 미지의 영역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지난 시월의 어느 날엔 팬 수만명이 모인 공연을 방송 프로그램으로 만들기 위해 부산아시아드 주경기장에 있었다. 총 10개 팀의 아이돌이 등장하는 대규모 콘서트였는데, 응원봉을 든 팬들을 그렇게 많이 본 건 생애 처음이었다. 공연 내내 중계차 밖에선 열정적인 환호와 함성이 이어졌는데, 카메라 10대가 촬영하고 있는 화면들을 살피느라 정신없는 내겐 꼭 머나먼 별세계에서 보내오는 흐릿한 신호처럼 들렸다.

공연이 끝나고 후반 편집을 위해 편집실에 앉아서야 그날 그곳을 채운 팬들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팬들은 가수의 노랫소리보다 더 큰 목소리로 환호하고 응원하며 사랑을 외치고 있었다. 특히 드론 카메라 촬영본이 인상적이었는데, 하늘에서 내려다본 공연장에 반짝이는 수만개 불빛이 파도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음악에 맞춰 응원봉이 내는 불빛들이 함께 춤을 췄다.

무대 위에 서서 뜨겁게 노래하고 춤추는 가수와 함께 호흡하는 불빛들을 보니,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동경하는 이를 위해 초가을 찬바람을 헤쳐가며 공연장을 찾은 이들이 켠 불빛 하나하나에 담긴 마음을 사랑이 아니면 뭐라 부를 수 있을까. 벅차고 애틋한 사랑이었다. 드넓은 경기장을 채운 수만개 불빛들이 별처럼 반짝이는 풍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별빛 가득한 밤하늘 같은 풍경을 보고 있자니 그날 들었던 노래의 한 소절이 문득 떠올랐다. “내 가장 눈부신 지금, 너에게 줄게….”

그날 공연의 주인공은 가수들이었다. 현장에 있던 모든 카메라가 쉼 없이 그들을 좇았다. 하지만 가수들의 모습으로 가득한 편집본 위에 팬들이 만들어 낸 반짝이는 풍경을 함께 올리고 나니 그제야 비로소 방송이 완성된 것 같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전하는 사랑이 그날 그 순간을 완성했다. 미지의 사랑이 일렁이는 불빛들 속에서 한결 선명해진 것 같았다. 어떤 사랑은 모이고 모여서 그런 식으로 모두의 순간을 완전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걸, 또 한번 사랑을 목격하며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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