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 칼럼] 들끓는 유가, 석유 빈국 한국이 위험하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반세기 전의 악몽을 되살린다. 50년 전인 1973년 10월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 간 네번째 전쟁인 '4차 중동 전쟁'이 터졌다. 미국이 이스라엘에 무기를 공급하자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 산유국들은 석유를 무기화했다. 원유 감산과 함께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과 네덜란드에 대한 원유 금수 조치를 결정했다. 그 결과 원유 가격은 3개월 만에 4배나 급등했다. 배럴당 2.9달러에서 12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는 즉각적으로 석유 관련 제품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이를 제1차 오일쇼크라고 부른다.
세계 경제는 대혼란에 빠졌다. 물가는 급등했고 순항중이던 경제에 제동을 걸었다. 주가는 폭락했고 성장은 마이너스로 급전직하했다.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국민생활 안정을 위한 대통령 긴급조치 3호가 선포됐다. "에너지는 국력이다"면서 에너지 절약운동이 거국적으로 펼쳐졌다. 그마나 한국은 개발도상국이라 석유보다 석탄을 주된 에너지원으로 썼기에 파국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물가는 살인적이었다. 1973년 한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3.5%에 불과했으나 이듬해인 1974년에는 24.3%, 1975년 25.2%까지 치솟았다. 고물가 속에 경기마저 침체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었다.
산유국들의 석유 무기화 전략은 대성공이었다. 4차 중동전쟁에서 아랍은 유럽공동체와 일본의 지지를 얻어냈다. 한국 역시 아랍 지지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오일쇼크는 한 차례로 끝나지 않았다. 1978년 말 이란 혁명과 1980년 9월 발발한 이란-이라크 전쟁의 여파로 제2차 오일쇼크가 일어났다. 3년 동안 유가가 약 2.7배 뛰었다. 중화학공업 육성에 몰두하던 한국은 큰 타격을 받았다. 1980년 경제성장률은 -1.6%를 기록했다. 1960년대 이후 최초의 마이너스 성장이었다.
이렇게 중동 정세가 요동칠 때마다 유가는 들끓었고 한국 경제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번 전쟁 역시 악영향을 줄 것이다. 지난달 7일(현지시간) 새벽 하마스가 대규모 기습 공격을 감행하자 다음날 유가가 급등한 것은 당연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뒤 뛰어올랐던 유가가 1년 만에 제자리를 찾는가 싶었지만 새로운 중동 충돌이 유가에 불을 지폈다.
이후 유가는 다행히 안정세를 찾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산유국이 아니고, 주변 산유국들이 전쟁에 뛰어들 가능성도 낮다는 관측이 유가 급등에 제동을 걸은 것이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너무 이르다. 향후 불확실성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유가 향방은 전쟁 장기화 및 이란의 개입 여부에 달려 있다. 무엇보다 이란이 유가 향방의 키를 쥐고 있다. 이란은 이슬람 국가들에게 이스라엘에 대한 석유 수출을 중단해야 한다고 거듭 촉구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이 계속된다면 참전할 수 있다는 경고장도 계속 날리고 있다. 이런 식으로 이란은 이스라엘과 미국에 대항하고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이긴 하지만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미국이 대(對)이란 제재를 강화한다면 유가 폭등은 명약관화다. 세계은행은 전쟁이 확전된다면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선까지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과연 우리 경제가 이 정도 수준의 고유가를 견뎌낼 체력이 있을 지 의심된다.
아직까진 국지전 양상이지만 상황에 따라 전쟁이 순식간에 중동 전체로 확산될 위험은 상존한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이럴 가능성은 커진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고 했다. 손 놓고 있다가는 재앙을 맞을 수 있다. 그런데 정부 대응을 보면 안이하다.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비상대응체계를 유지하겠다는 말 뿐이다.
대조적으로 일본은 초비상이다. 과거 혹독했던 오일쇼크를 경험해본 일본은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에도 불구하고 아랍 산유국들과 척을 지지않는 '균형외교' 쪽으로 기울고 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석유는 공급받겠다는 자세다. 일본과 비교해보면 우리는 태평이다. '찻잔 속 태풍'에 그치길 바라는 것 같다. 정부가 어느 정도의 실질적 대비책을 마련해 두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말고 실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무엇보다 화급한 것은 확실한 원유 확보 전략이다. 어쩌면 이것이 현재 정부의 가장 중요한 임무일지도 모르겠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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