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금감원 14년 경력 금융전문가… "부동산 펀드·신탁 힘겨운 시간"
자금관리 용이한 신탁제도, 상속·자산관리 비법으로 떠올라
상속대상 아닌 손주도 신탁이용하면 조부모 재산 상속효과
특정금전신탁 과거와 달리 고위험 상품 비중 커 피해 주의보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려고 마음먹었는데 세금으로 절반을 떼야한다면 누가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상속은 절세가 핵심이다. 황혼기를 맞거나 일선에서 물러난 기업 오너들은 자식에게 가업·자산을 별 탈 없이 물려주기 위해 로펌을 찾는다.
최근 법무법인들은 가업·상속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1세대 창업자들이 은퇴하면서 자녀에게 가업을 잇게 하려는 기업들이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가업·자산승계를 위해서는 조세·규제 리스크를 감안해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정책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법무법인 세종은 지난해 상속·자산관리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여러 세무 사건에서 승소하며 효시판례를 만들었던 백제흠 대표 변호사(한국세법학회장)를 필두로 30여명에 달하는 전문가들이 모였다.
서울동부지방법원 부장판사를 지냈던 정진호 대표변호사, 광주지방법원 부장판사 출신 최철민 파트너변호사 등 분쟁팀은 물론 중부지방국세청 조세법률고문 김현진 파트너변호사, 진시원 금융규제팀 전문위원 등 법률 전문가들도 합류했다.
이들 쟁쟁한 전문가들 가운데 진시원(47·사진) 전문위원을 지난 3일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진 위원은 금융규제 자문분야에서 펀드, 신탁, 외환, 불공정거래 조사, 기업공시 등 실무 자문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세종으로 옮기기 전에는 금융감독원에서 14년을 근무했다. 특히 자산운용감독국 신탁감독팀과 자산운용제도팀에서 일하며 부동산신탁사 신규인가, 사모펀드 법규 개정, 신탁업 업무보고서 개정 등에 참여했다. 금융위원회의 신탁업 제도개선 TF에서는 신탁 수익증권, 가업승계신탁 등 도입을 위한 연구용역을 수행하기도 했다.
진 위원에게 최근 상속·자산관리의 비법(?)으로 떠오르고 있는 신탁제도에 대해 물었다. 진 위원에 따르면 신탁은 상속 및 증여세법상 일종의 '도관(물 따위가 통하도록 만든 관)'이다. 수익자에게 세금을 부과하기 때문에 신탁을 했다고 직접적인 절세 혜택을 누릴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탁을 활용하는 이유는 자금관리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진 위원은 "가령 조부모가 사망 후 손주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싶어도 손주는 민법상 상속을 받지 못하는 게 원칙인데 신탁을 이용하면 수익자를 손주로 지정해 상속과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상속은 상속인 사망시점에 일시에 발생하는 반면, 신탁을 사용하면 수익자에게 분할해 지급하는 등 자금관리 가능성도 열려 있다"며 "수익자를 손주로 지정하면서 그 지급시기를 대학교 입학, 결혼, 자녀출생 등으로 정해 두면 각 시점이 도래하였을 때 수탁자(금융회사)가 수익자인 손주에게 분할해 지급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진 위원은 "전통적인 자산인 상장주식, 채권, 부동산 등에 국한되지 않고, 신탁업자들이 점차 새로운 투자상품을 찾아 신탁에 편입하고자 하는 노력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주가지수와 달리 기업공개(IPO) 시장은 과열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런 경우에 대비해 기술력을 갖춘 비상장회사를 발굴해 비상장주식을 편입하는 특정금전신탁, 또는 부동산펀드가 진출하지 않은 중소형 오피스 부동산에 투자하는 신탁 등이 많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진 위원은 다만 최근 신탁 시장은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20년간 신탁시장은 꾸준히 성장해왔다. 금전신탁은 금전으로 신탁을 설정하고 신탁 종료 시 금전 또는 운용 상태 그대로 수익자에게 교부하는 신탁으로서, 위탁자가 신탁 재산의 운용 방법을 특정하였는지 여부에 따라 특정금전신탁(특금)과 불특정금전신탁(불특금)으로 구분된다.
불특금은 2004년 이후 금지됐고, 현재는 특금 계약만 체결할 수 있다. 특금의 경우 지난 2012~2013년 동양 사태 당시 동양증권이 당국에 증권신고서 제출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동양그룹이 발행한 기업어음증권(CP)을 특금을 이용해 판매한 바 있다. 이런 공시의무 우회를 막기 위해 2014년에 공시의무를 강화했다. 이후 은행에서는 ELS(주가연계증권)나 정기예금을 편입하는 상품이 나왔다. 증권사에서는 채권형 특금 또는 머니마켓펀드(MMF)를 주로 판매했다.
2015년 이후 특금 시장은 점차 다변화됐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서 부동산 자산유동화 기업어음(ABCP)을 편입하는 상품이 많이 늘었다. 금리가 낮아 신탁업자들이 ELS 및 정기예금에서 대체투자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2017~2018년에는 코스피지수가 3000선까지 오르면서 ETF를 특금에 담아 판매하거나, 사모펀드 시장이 성장하면서 사모펀드도 특금에 담아 판매하는 경우가 늘었다.
특금에 편입되는 금융투자상품이 채권 등 전통적인 상품의 비중이 내려가고, 상장지수펀드(ETF), ELS, 파생결합증권(DLS), 사모펀드 등 새로운 형태의 금융투자상품의 비중이 크게 높아졌다. 특금 시장은 최소 가입금액 제한이 없고, 대부분의 은행에서 취급하고 있어 리테일 투자자의 접근성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고수익·고위험 상품 편입 비중이 커지다 보니 일반 투자자의 피해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진 위원은 "특금 시장에서 꾸준히 큰 비중을 차지해왔던 ELS의 경우 그간 손실구간에 진입한 사례가 매우 드물었는데, 현재 홍콩 H지수가 많이 하락함에 따라 내년 초 상당한 규모의 손실 발생이 우려된다"고 전했다. 이어 "부동산 펀드, 부동산 신탁도 힘겨운 시절을 보내고 있다"며 "부동산 펀드의 경우 대규모 오피스·물류 건물 등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부동산 신탁은 주택시장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데, 주택 경기가 좋지 않아 미분양 사례가 늘고 금리 상승과 자재값 상승으로 인해 건설비 또한 크게 늘어남에 따라 부동산 펀드와 마찬가지로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김경렬기자 iam1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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