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지는 전쟁, 깊어지는 미국의 ‘딜레마’
오는 7일(현지시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개전 1개월을 맞는 가운데 미국의 ‘딜레마’가 커지고 있다. 전쟁을 진정시키기 위한 중재자 역할이 마땅한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데다 분쟁 간섭을 최소화하려는 외교 구상도 어그러졌다. 여기에 미 의회 내부의 혼란까지 겹치며 내년 대선을 앞둔 바이든 대통령은 무거운 과제를 안게 됐다.
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등 외신들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고립된 민간인들의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의 ‘중동 순방외교’가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직후인 지난 10월 8일 제럴드 포드 항모전단을 동지중해에 등 중동 분쟁에 즉시 반응하며 억제력을 높여왔다. 가자지구 내 민간인 피해가 커지자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이스라엘을 찾아 가자지구와 이집트를 연결하는 라파 검문소 개방 합의를 이끌어냈지만, 인도주의적 위기를 멈추기엔 역부족이었다.
여기에 미국이 요구하고 있는 일시적 교전중단을 이스라엘이 거부하며 바이든 정부는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우방 이스라엘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즉시적 휴전을 요구하는 아랍국가들과도 이견만 확인하게 된 셈이다. 가자지구의 민간인 희생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이스라엘을 지원해 온 미국을 향한 국제 사회의 비난도 날로 커지고 있다.
길어지는 전쟁은 이미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는 미국에게 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미국은 그간 중동 분쟁의 수렁에서 벗어나고 국방 예산 감축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두 개 이상의 전선을 감당하지 않겠다는 구상을 펼쳐왔다. 한 개의 주요 전쟁에 집중하고 이외 지역에선 소규모 작전으로 도발을 억제하는 이른바 ‘원 플러스’ 전략이다.
하지만 러시아와 아시아, 중동 등 곳곳에서 긴장이 폭발하며 노선을 우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이어 대만·필리핀에서의 중국발 국지적 무력충돌 가능성까지 한꺼번에 다루게 된 것이다.
하마스의 이번 공습으로 미국이 중동에서 시도한 이스라엘과 아랍국가 사이 관계 개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가시적인 외교 성과가 급한 바이든 대통령에겐 뼈아픈 대목이다.
이번 전쟁은 미국 내 표심과 정치 측면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에게 고민거리를 안기게 됐다. 정·재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해 온 유대계와 지지층 내 친팔레스타인 표심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는 난관에 봉착한 것이다.
아랍아메리칸연구소(AAI)가 최근 500명의 아랍계 미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17.4%만 “오늘 대선이 치러진다면 바이든 대통령을 뽑겠다”고 답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여파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아랍계와 무슬림계 미국인은 전체 미국 인구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비율을 차지하지만 미시간주와 같은 투표 격전지에서는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이번 중동 분쟁 대응으로 배신감을 느낀 기존 지지자들이 등을 돌리며 바이든의 재선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2016년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아슬아슬하게 넘어갔던 미시간주에서 2020년 15만5000표 차이로 승리한 바 있다.
민주당 일부 상·하원 의원 사이에서도 바이든 정부의 전폭적인 대이스라엘 지원 정책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민주당 일부 진보성향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민간인 살상을 막기 위해 바이든 행정부가 더 강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압박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표적 진보 성향 인사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은 “단순한 휴전을 넘어 우리 당이 대통령에게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잔혹행위를 중재하도록 압력을 가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무소속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비롯해 민주당의 제프 머클리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피터 웰치 상원의원은 미 정부를 상대로 이번 전쟁이 얼마나 많은 민간인 사상자를 내고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지 등을 묻는 질의서를 발송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에 일시적 교전 중단을 설득하고 있는 미국이 당분간 무기지원 등 대이스라엘 지렛대를 활용하는 것까지 검토해가며 이스라엘 압박을 시도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다만 백악관을 압박하는 목소리는 민주당 내에서 아직은 소수로, 지난주 미 하원은 143억달러(약 19조원) 규모의 대이스라엘 군사 지원 예산안을 가결했다. 폴리티코는 “바이든이 강력한 동맹국과, 인도주의적 우려에 대한 진보적 압력 사이에서 극명한 정치적 충돌을 겪게 됐다”고 분석했다.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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