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우주방사선

손제민 기자 2023. 11. 5.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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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 에너지의 근원은 태양이다. 인간이 먹는 작물, 가축을 기르는 풀, 화석연료가 된 나무와 해양유기물, 운송과 기계에 쓰이는 풍력과 수력까지 그 근원은 모두 태양이다. 지구는 마침 태양과 적당한 거리에 있기에 엄청난 열과 빛에서 대체로 필요한 것만 취할 수 있다. 그런데 달갑지 않게도, 에너지원과 함께 도달하는 게 있으니 방사선이다. 우주방사선으로 불리는 이 전리방사선(X·α·β·γ선 등)은 모든 별에서 뿜어져 나오는데 지구는 단연 태양에서 오는 것을 많이 쐰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우주방사선은 한 사람이 쐬는 연간 방사선의 11%인 0.33mSv(밀리시버트)를 차지한다. 단거리 비행의 경우 X선 촬영보다 낮은 선량 피폭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그 방사선에 평균보다 많이 노출된 항공기 조종사·승무원들은 얘기가 다르다. 우주방사선 피폭량은 노출 시간이 길수록, 고도·위도가 높을수록 커진다. 항공사들은 미 연방항공청의 계산법 등에 근거해 승무원 개인 누적 피폭량이 연간 6m㏜를 넘지 않도록 관리한다.

우주방사선 피폭과 고형암(장기에 덩어리로 자라는 암)의 관련성이 인정돼 산재 판정을 받은 사례가 국내에서 처음 나왔다. 최근 근로복지공단은 대한항공 승무원 송모씨(당시 53세)에 대해 질병과 업무의 관련성이 있다고 판정했다. 송씨는 2021년 4월 위암 4기 판정을 받고 3주 만에 숨졌다. 그는 1995년부터 25년간 승무원으로 일하며 미주·유럽 노선에서 절반 가까운 비행 시간을 보냈다. 항공사는 그의 누적 피폭량이 연간 6m㏜에 미치지 못한다며 업무 관련성을 부인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업무 특성상 불규칙한 식사를 한 요인으로 거론하면서 안전기준 이하의 우주방사선 피폭도 위험할 수 있다고 봤다. 항공사가 제시한 피폭 수치가 실제보다 과소평가됐을 수 있고, 저선량 피폭 위험성이 최근 더 알려지고 있으며, 전리방사선과 암 발생의 상관관계에는 문턱값이 없을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판정위원 7명 중 4명이 그렇게 봤다. 정부는 방사선 피폭 계산법을 재검토하고, 승무원의 방사선 영향 전수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 우주방사선은 원전에서 나오는 방사선과 성질이 같다. 그런 점에서 원전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안전기준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안전한 방사선 기준치란 없다.

국제선 장거리 노선, 특히 북극항로를 지나가는 항공기 승무원들은 일반인들보다 높은 우주 전리방사선에 피폭된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우주방사선을 설명하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영상 자료 스틸컷. CDC 영상 캡처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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