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 홀대·R&D 예산 삭감이 '의대 쏠림' 자초"
정원 조정·전과 확대 등 학과 벽 허물어야
수능 자격시험화 하고 선발 자율화 강화
대학 상아탑 틀 갇혀···사회 공헌 역할해야
“의약학 계열 취업자의 초임 급여가 가장 높고 상승세도 가파르죠. 반면 과학자들에 대한 처우는 너무도 형편없는 데다, 국가 연구개발(R&D) 예산까지 삭감되고 있습니다. 의대 쏠림 현상은 어찌 보면 당연한 거죠. 앞으로 우리나라 국가 경쟁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겁니다.”
김동원 고려대 총장은 최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총장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의대 쏠림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부가가치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해 보수를 높이고 R&D 예산을 늘릴 필요가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올해 3월 고려대 총장에 취임한 김 총장은 1997년부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노동대학원장과 국제노동고용관계학회장을 역임했다. 최근 자연계열에서는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 자퇴하는 학생이 크게 늘고 있는 가운데 김 총장은 고용·노동전문가답게 ‘의대 쏠림’ 현상을 노동시장 측면에서 바라봤다.
그는 “의대 정원을 확대해 공급을 늘리는 것도 의사와 다른 직종의 보수 차이를 좁힐 수 있는 방법이겠지만, 각 직업이 기여하는 가치대로 보수가 제대로 책정됐는지 살피고 이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특히 최근 국가 R&D 예산 삭감으로 학생 연구자 인건비 감소 등 대학 현장의 어려움이 심화됐다”며 "현재 수준의 보수로는 해외에 있는 우수한 인재들을 한국으로 데리고 오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의대 쏠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의 혁신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핵심은 학과 간의 벽을 허물고 산업·학생수요가 높은 학과를 집중 지원하는 것이다. 김 총장은 “학과 간 탄력적인 정원 조정을 통해 의대 외 학생들이 선호하는 학과의 정원을 확대해 학생 선택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며 “전과 제도를 확대하는 것 역시 중도 탈락을 예방하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가 집중 육성하는 첨단분야와 관련해 계약학과를 확대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고려대는 2025학년도 대입부터 계열별 수학 선택 지정과목을 폐지하고 추후 인문·자연 양방향 교차지원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또한 전과제도와 융합전공, 마이크로디그리(소단위 학위과정) 등을 적극 운영 중이다.
최근 초고난도 문항(킬러 문항) 배제 방침과 2028학년도 대입개편 시안 등으로 화두에 오른 입시 문제와 관련해서는 대학에 자율권을 대폭 부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총장은 “대입에서도 교육부가 정해주는 틀에 맞춰 선발해야 하는 ‘규제’가 존재한다”며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자격시험으로 하고 대학이 학교 철학에 맞는 학생을 뽑도록 하는 선발 자율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려대가 2025학년도부터 7년 만에 논술전형을 부활시키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김 총장은 대학이 학령인구 급감이라는 위기 속에서 생존하려면 ‘사회 공헌’ 역할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 총장은 “대학은 그동안 상아탑이라는 틀 안에 갇혀 사회와 유리돼 왔다"며 "그로 인해 국민들도 대학의 위기에 별로 관심 갖지 않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학이 사회와 더 밀착해 사회가 필요로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등 사회에 공헌을 많이 해나가야 사회도 대학에 지원을 하면서 상호 발전을 하게 될 것"이라고 봤다.
김 총장은 미래 사회 공헌을 위해 연구·교육 분야에서 다양한 변화와 혁신을 시도하는 중이다. 그 일환으로 고려대는 세계 석학을 묶는 케이 클럽(K-Club)과 향후 10년 내 고려대 졸업생과 교원들에서 노벨상, 필즈상, 튜링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케이유 노벨(KU-Nobel)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또한 인류 사회에 기여하는 방안을 모색한다는 취지로 넥스트 인텔리전스 포럼(Next Intelligence Forum)을 열어 노벨상 수상자들의 강연을 마련 중이다. 김 총장은 “인류가 당면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 연구와 교육을 수행해 대학의 사회적 책무를 다할 것”이라며 “연구와 교육의 핵심 축인 교수와 연구진에게 전례 없던 지원을 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15년째 이어지고 있는 등록금 동결 등으로 커지고 있는 재정 위기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펼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김 총장은 “직업전환이나 창업에 유용한 학위·비학위과정을 개설해 고령화 사회 중장년층의 교육수요를 충족킬 것”이라며 “기업 후원금을 받아 채용하는 기금 교수제 도입을 추진하는 등 기금조성 방안에 대해서도 단기·중기·장기 전략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신중섭 기자 jseop@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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