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경분의 1초’는 어떤 시간이길래…도대체 이게 왜 필요한거야 [교과서로 과학뉴스 읽기]

원호섭 기자(wonc@mk.co.kr) 2023. 11. 5.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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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분의 1초’의 ‘10억분의 1초’
아토초 펄스를 찾아낸 물리학자들
미시의 세계 이해 넓히는 데 기여
올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들의 모습이에요. <사진=노벨상위원회>
10억분의 1을 1나노라고 표현합니다. 시간 단위인 ‘초’라면 과연 어느 정도의 순간일까요. 1초를 10억개로 나눴을 때, 그중 한 칸이 움직일 때의 시간이겠죠. 1나노초를 다시 10억분의 1로 나누면 어떤 단위를 쓸까요. 이를 ‘아토초’라고 부릅니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이 바로 이 ‘아토초’와 관련이 있습니다. ‘찰나의 순간’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아토초에는 이 ‘찰나’를 쓰기도 애매합니다. 찰나보다 더 찰나. 그 찰나보다 더 찰나 정도는 되어야 아토초라는 이름을 넣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노벨 생리의학상에 이어 이번에는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과학자들의 성과를 교과서에서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토초 펄스, 100경분의 1초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는 ‘아토초 펄스’ 생성법을 증명한 세 과학자, 피에르 아고스티니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물리학과 명예교수와 페렌츠 크러우스 독일 막스플랑크 양자광학연구소 교수, 안 륄리에 스웨덴 룬드대 원자물리학과 교수가 각각 선정됐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아토초란 10억분의 1초를 다시 10억분의 1초로 나눈 시간입니다. 100경분의 1초라고 짧게 쓸 수 있습니다. ‘펄스’란 맥박처럼 짧은 시간에 발생하는 ‘진동’을 의미합니다. 아토초 펄스란 엄청나게 짧은 시간 발생하는 빛의 진동입니다. 이 빛의 진동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노벨 물리학상을 설명하는 많은 글이 ‘빛’과 ‘카메라’를 기반으로 아토초를 이야기합니다.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이유는 빛과 조리개 때문입니다. 밝은 빛이 있으면 조리개가 빠르게 ‘찰칵’하면서 움직이는 물체를 선명하게 찍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빛이 어두우면 조리개가 닫혔다 열리는 소리가 깁니다. “차아아아알칵”소리가 납니다. 많은 빛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때는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의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즉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의 사진을 찍으려면 빛이 아주 밝아야 합니다. 엄청나게 밝아야 합니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이 이 기술을 개발했는데, 과정이 상당히 복잡합니다.

고에너지 ‘광자’를 만들어라
원자나 전자의 움직임을 이해하기 위해 교과서를 펼쳐보겠습니다. 중학교 2학년 과학 교과서입니다. 원자는 (+) 전하를 띠는 원자핵과 (-) 전하를 띠는 전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원자핵은 원자의 중심에, 전자는 원자핵 주위를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너지 준위’라는 개념이 나오는데요, 이는 고등학교 화학1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높은 에너지 준위로 올라왔던 전자는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그 에너지 준위에 해당하는 빛을 방출합니다.

일반적으로 원자의 전자들은 에너지가 가장 낮은 상태에 있습니다. 이를 바닥상태라고 합니다. 이 전자가 에너지를 흡수하면 높은 에너지 상태로 이동하는 데 이를 들뜬 상태라고 표현합니다. 들뜬 상태의 전자는 상대적으로 불안정한 만큼 낮은 에너지 상태의 궤도로 되돌아가려고 합니다. 이때 빛이 발생합니다.

이 설명을 가져온 이유는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들이 엄청나게 밝은 빛을 만들기 위해 이를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엄청나게 밝은 빛, 밝을수록 뜨겁습니다. 에너지가 충만하겠죠. 높은 에너지를 가진 빛(광자)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광자, 즉 빛 알갱이를 가져왔습니다. 여기서는 물리1에 등장하는 ‘진동수’와 ‘파장’의 개념을 가져와 보겠습니다. ‘에너지(E)=hv’ 라는 공식이 있습니다. h는 플랑크 상수, v는 빛의 진동수입니다. 진동수의 단위는 헤르츠입니다. 헤르츠는 1초에 한 번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100hz는 1초에 100번 진동한다는 뜻입니다.

정말 짧은 순간의 장면을 촬영하려면, 빛 알갱이의 진동수는 커야 합니다. 100Hz보다 1000Hz, 1만Hz로 가야 합니다. 1만Hz는 1초에 1만번 진동한다는 뜻이니까 엄청 빠르죠. 진동수가 커지면 앞선 식에서 볼 수 있듯이 에너지가 커집니다(밝은 빛이 에너지가 크다는 말과 비슷하죠?). 즉, 아토초라는 엄청나게 빠른 단위를 촬영하려면, 그에 적합한, 즉 에너지가 상당히 높은 광자를 만들어 내면 되는 겁니다.

이 광자를 어떻게 만들까요. 노벨상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는 그림을 보면서 쉽게 이야기해보겠습니다(이 과정에서 “너무 단순화한 것 아니냐?”라고 전문가분들께서는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정확한 과학적 내용은 논문이나 과학자들의 직접적인 설명을 찾아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노벨상위원회 홈페이지에 있는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이 아토초 펄스를 만들어낸 방법입니다.
과학자들은 원자에 레이저를 쏩니다. 레이저의 빛이 전자를 쳐냅니다. 전자가 밖으로 툭 튀어 나갑니다. 밖으로 튀어 나간 전자는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가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빛(광자)이 발생합니다.

빛이 발생한다는 얘기는 ‘광자’가 만들어진다는 얘기와 같습니다. 이는 곧 주파수와 파장을 가진 광자가 만들어진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서 처음 쏴준 레이저를 잘 조정하면, 즉 레이저 역시 주파수와 파장을 가지고 있으니, 아까 만들어진 광자와 부딪히고 섞이기도 하면서 진동수가 높은 광자가 만들어집니다. 진동수가 높다는 것은 주기가 짧다는 것을 뜻합니다. 주기가 짧은 광자, 바로 우리가 원하던 에너지 넘치는 광자입니다. 이제 이를 유지한 뒤 원자 분자를 촬영하면 됩니다.

수소 원자의 경우 바닥 상태에 있는 전자가 원자핵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150아토초라고 합니다. 너무 빨라서 전자의 움직임이 어떤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아토초 펄스가 개발되면서 이러한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이들의 노력 덕분에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 분자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됐고 이는 인류의 과학 지식를 확대하는 데 이바지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반도체는 모두 원자, 분자 상태를 조절하는 분야입니다. 우리 몸의 세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이 미시세계를 여는 카메라를 만들었고, 이를 기반으로 인류는 한 발짝, 발을 내디딜 수 있게 됐습니다.

“중학교 3학년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가져오란 말이야.” 과학을 담당하는 기자가 선배들에게 많이 듣는 말 중 하나입니다. 맞습니다. 과학·기술 기사는 어렵습니다. 과학·기술 자체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내용을 풀어가다 보면 설명은 길어지고 말은 많아집니다. 핵심만 간결히 전달하지 않으면 또 혼나는데 말입니다. 이공계 출신인 제게 “문과생의 언어로 써라”라는 말을 하는 선배도 있었습니다.   혼나는 게 싫었습니다. 중3이 이해하는 언어로 기사를 쓰고 싶어 과학 교과서를 샀습니다.  그런데 웬걸, 교과서에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많은 과학이 담겨 있었습니다. 기억 안 나시죠. 중3 수준으로 기사를 쓰면, 더 어려운 기사가 됩니다.   과학기술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챗GPT, 유전자 가위, 반도체, 양자컴퓨터 등 이름만 들어도 머리 아픈 최신 기술이 우리의 삶을 바꾸고 있습니다. 모르면 도태될 것만 같습니다.   어려운 과학·기술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 싶어 교과서를 다시 꺼냈습니다.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최신 기술의 원리를 교과서에서 찾아 차근차근 연결해 보려 합니다. 최신 과학·기술은 갑자기 툭 튀어나오지 않았습니다. 교과서에 이미 모든 원리가 들어있으니까요. 함께 공부하는 마음으로 적어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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