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전지 개미' 원성 산 공매도, 결국 금지…증권가는 우려
업계·전문가들 "공매도 순기능 존재…규제 신중히 접근해야"
(서울=연합뉴스) 증권팀 = 최근 증권가에서는 이차전지 종목들을 중심으로 개인투자자들의 공매도 전면 금지 요구가 거셌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이들의 표를 의식해 공매도 전면 금지 요구를 받아들였지만,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장기적으로 외국인의 자금 유입이 감소하는 등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개미들, 외국인과 '공매도 전쟁'도…"기울어진 운동장 바로 잡아라"
5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개인투자자들은 에코프로를 비롯한 이차전지 종목들을 놓고 외국인 투자자와 '공매도 전쟁'을 벌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초 540억원 수준이었던 에코프로의 공매도 잔고액은 지난 5월 처음으로 1조원을 넘은 데 이어 지난 7월 중순 1조3천753억원까지 불어났다. 주가가 단기간에 급격히 올라 고평가됐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이차전지 팬덤으로 똘똘 뭉친 개인투자자들은 '공매도 세력과의 전쟁'을 선언하며 이에 맞섰고, 외국인의 '숏 스퀴즈'(주가 하락을 예상해 주식을 빌려 팔았던 공매도 투자자가 주가 상승 시 더 큰 손실을 막기 위해 해당 주식을 사는 행위)를 끌어내며 1차 항복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당시 에코프로 주가는 최고 153만9천원까지 급등해 연초 11만원에서 14배 올랐다.
에코프로 관련주들이 급등한 지난 봄부터 증권가에선 홍콩, 싱가포르에 있는 헤지펀드 매니저들이 한국 이차전지 관련주를 공매도해 숏 포지션을 잡았다가 주가가 급등하자 해고당했다는 소문이 떠돌 정도였다.
다만 이후에 에코프로의 공매도 잔고가 다시 2조원에 가깝게 불어나고 주가가 고점에서 '반토막'이 날 정도로 급락하자 개인들 사이에서는 재차 공매도에 대한 원성이 높아져 갔다.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10월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공매도 거래 비중(공매도 거래대금을 총 주식거래대금으로 나눈 값)은 각각 6.70%, 3.49%로 최근 1년간 가장 높았다. 특히 코스닥시장 공매도 비중은 평소 1∼2%대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증시가 약세를 보인 최근 한 달간 공매도가 급증한 것이다.
지난달 금융감독원이 HSBC와 BNP파리바 등 글로벌 투자은행(IB)의 장기간에 걸친 무차입 공매도를 적발했다는 소식 역시 개인투자자들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당국이 주문 실수나 착오가 아닌 고의적인 불법 공매도로 판단한 첫 사례였다.
개인투자자들의 단체인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의 정의정 대표는 "이론적으로 공매도의 순기능도 없지는 않겠지만 실제 현실에서 공매도는 약탈적 공매도로 악용되기 때문에 한시적 금지를 해놓고 모든 점에 대해 짚어볼 필요가 있다"며 외국인·기관과 개인 간 '기울어진 공매도 운동장'을 바로잡을 것을 촉구했다.
구체적으로는 ▲ 공매도 상환기관 90일 통일 ▲ 담보 비율 130% 통일 ▲ 무차입 공매도 적발 시스템 구축 ▲ 공매도 전면 금지 대상에 시장조성자 포함 등을 요구했다.
멀어지는 MSCI 선진지수 편입…"가격발견 기능 저해" 우려도
결과적으로 이 같은 개인투자자들 요구에 여당과 정부가 화답하면서 내년 상반기까지 전면 금지 조치가 시행되게 됐지만, 증권가에서는 충분한 숙의 없이 정치권의 주도로 이뤄진 공매도 금지는 한국 증시의 대외 신인도를 떨어뜨리고 장기적으로는 외국인의 이탈을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한 대형증권사 관계자는 "외국인과 기관이 다양한 포지션 거래를 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공매도인데, 이걸 쓰지 못하게 하면 상당한 반발이 예상된다"며 "단기적으로는 매도 물량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을 순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운신의 폭을 줄여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는 데 허들을 만드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과 역행하는 조치라는 점에서 외국인 수급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MSCI가 지난 6월 발표한 2023년 연례 시장 분류 결과에서 한국 증시는 18개 항목 중 6개 항목에서 '개선 필요' 평가를 받으며 선진 지수 편입이 최종 불발됐다.
'공매도'(short selling) 항목에서는 '개선 필요'보다는 높지만 '문제없음'보다는 낮은 '개선 가능' 성적표를 받아들였다.
조병현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공매도도 외국인 비중이 높은 매매 방식 중 하나인데 외국인은 양방향으로 자유로운 거래에 가중치를 두는 경향 있다"며 "MSCI 선진국 지수에 편입하려면 자유로운 매매 관련 조건이 까다로운데 외국인 참여도를 높이는 쪽과는 거리가 있고 외국인 수급이 들어오는 시기가 지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올해 들어 '라덕연 사태', 영풍제지 등 주가조작 세력이 공매도가 금지된 종목들만을 골라 시세조종을 일삼았다는 점에서 공매도의 순기능인 가격발견 기능이 저해될 수도 있다.
김준석·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지난 2월 펴낸 '공매도 규제효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 시행 이후 시장의 가격효율성은 저하됐고 변동성은 증가했으며 시장거래는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해외의 많은 주식시장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공매도에 대한 금지 조치를 단행하지 않았던 것은 다수의 실증분석을 통해 공매도의 경제적 기능이 확인되고 그러한 기능이 위기 상황에서도 오히려 더 긴요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며 "공매도 전면 금지와 같은 강력한 규제 수단을 빈번하게 활용하는 것은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 역시 "공매도를 없애면 주가 하락 압력을 줄일 순 있겠지만 터무니없는 가격에 거래되는 종목의 가격을 조정해 적정 밸류에이션을 찾아가도록 하는 순기능까지 막는 결과가 돼 시장 전반에 이득이 된다고 할 수 없다"며 "외국증권사들의 불법 공매도가 문제라면 거래소와 금융당국이 나서서 단속을 강화하면 될 일인데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는 건 과도한 듯하다"고 지적했다.
지나치게 정치적 이득만을 고려했다는 점에서 금융시장 정책이 정치권의 논리에 따라 왔다갔다 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목소리도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외국 자본에 좋지 않은 시그널을 주는 사안을 총선 앞두고 급하게 서두르는 것 같아 우려가 된다"고 말했다.
(이웅 임은진 송은경 이민영 기자)
nor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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