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억 받아 교수 12명이 나눠갖고 … 갈비업체 메뉴 개발에 혈세
A사는 지난해 누룽지 떡볶이를 개발했다. 3개월간 정부지원금 500만원을 받았다. A사는 누룽지 떡볶이용 떡 압출기계 개발에도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을 사용했다. 문제는 국가 R&D 예산을 이런 곳에까지 써야 하느냐는 점이다. R&D 예산은 민간이 투자하기 어렵지만 국가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공공재적 성격의 기술에 투자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떡볶이나 관련 기계 개발은 순수 민간영역에서 투자를 받아도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B사는 2년 전에 스마트팜과 관련해 R&D 예산 1억원을 지원받았다. 이 자금으로 복숭아 분말을 이용한 과일 찹쌀떡과 특수 비닐 포장 시스템을 개발했다. 하지만 이 역시 논란이 적지 않다. 국가 R&D 예산을 특정 민간 업체의 판매·수익에 초점을 맞춘 기술 개발에 사용했기 때문이다.
국가 R&D 예산 지출 구조조정이 논란이 되고 있다. 여야 정쟁으로 비화하며 R&D 카르텔 개혁이 좌초되지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이처럼 취지에 맞지 않게 비효율적으로 쓰는 R&D 예산은 이번 기회에 고쳐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이런 예산을 줄여 제대로 쓰자는 취지다.
정부는 예산 시즌을 맞아 국회에서 일부 증액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모습이다. 다만 원상복구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은 이같이 낭비되는 예산 때문이다.
일단 정부는 내년 예산을 많이 줄이더라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예산 비중은 일본에 이어 세계 2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대신에 정부는 '연구를 위한 연구' '성과 없는 갈라파고스식 연구'처럼 현재 국가 R&D가 가진 구조적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정부는 과거 D램 반도체,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고속철도처럼 국가 미래 성장동력이 되는 기술 개발에 성공한 '꿈의 예산'으로서 위상을 재정립하겠다고 설명한다.
정부는 올해 30조원이 넘는 R&D 예산을 봐도 혁신 성과와 전혀 무관한 개별 기업 사업을 위해 사용하는 사례가 많아 개혁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정부 관계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R&D 사업을 '사물에 관한 새로운 지식을 획득하거나, 이미 획득한 지식을 이용해서 새로운 응용을 고안하기 위해 체계적인 방법으로 수행하는 창조적 활동'으로 규정한다"며 "하지만 정부 예산 30조원 중 상당액이 이 같은 국제 기준과 동떨어져 집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정부 R&D 예산이 한 갈비업체의 쇠고기 메뉴 개발에 사용되기도 했다. 2021년 이 업체는 가축 먹이 주기 기술개발 R&D 사업을 활용해 소비자 선호도가 높은 쇠고기 메뉴를 개발하는 데 예산을 사용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공평하게 수당처럼 받는다'고 지적한 사례도 상당수 확인됐다. 허들이 낮은 신청 자격을 제시하고 이를 충족하는 모든 기업에 예산을 배분하는 식이었다. 어떤 사업은 경쟁률이 고작 1.3대1밖에 되지 않아 신청한 대다수 기업이 보조금처럼 R&D 예산을 받았다. 교수·연구진끼리 R&D 예산을 나눠 갖는 관행도 여전했다. 한 대학교 산업기술거점센터는 산업체, 학교, 연구소가 공동으로 기술개발 과제를 설계할 때 지원해야 할 R&D 자금 14억원을 공동 과제 설계 없이 학교 내 12명의 교수진에게 평균 1억1700만원씩 균등하게 분배했다.
한계기업 생존 자금으로 R&D 예산이 사용된 경우도 있었다. 한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는 연간 매출액이 1억원이 안 되고 손실 규모도 큰 상황이었다. 하지만 2020년부터 4년간 14억원의 R&D 자금을 지원받아 기업 생존 자금으로 활용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같은 과제로 한 부처의 R&D 자금을 중복 지원받는 경우도 허다했다. C사는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올해까지 2년간 3개 사업을 통해 연구비 3억7000만원을 받았는데, 과제명을 보면 사실상 동일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15회 이상 정부 R&D 과제를 수주한 기업이 372곳에 달했다. 11~14회를 수주한 기업도 593곳이나 된다.
다른 정부 관계자는 "R&D 혁신성과와 무관한 지원, 나눠 먹기, 뿌려주기식 R&D 등 비효율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며 "정부출연연구기관은 물론 학계 등 과학기술계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의 과학기술 R&D 예산 삭감에 대해 과학기술계 내부에서도 이번 논란을 비효율을 제거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과학기술 예산에 대한 문제가 윤 대통령에 의해 갑자기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부터 심도 있게 논의됐다.
인수위에 참여했던 한 과학기술계 인사는 "R&D 투자의 성공을 위해 '나눠 주기식 예산 배분'보다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는 '전략적 예산 배분'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는 것이 이번 정부의 중요한 국정 과제였다"고 말했다.
[문지웅 기자 / 고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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