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링컨, 서안지구 깜짝방문… 바이든 "휴전 논의 진전"
또 '빈손 외교' 위기 블링컨
튀르키예 출발 전 서안 방문
팔레스타인 수반 만나 회담
물밑협상 결과 나올지 주목
이란·튀르키예 대통령 밀착
이스라엘 구급차 공습으로
라파국경 대피 일시 중단
지난달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한 달째 이어지는 가운데,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인도적 교전 중단' 중재안을 갖고 중동을 찾은 뒤 이스라엘과 아랍 지도자를 만났지만 양쪽에서 퇴짜를 맞았다.
두 번째 중동 방문에서도 '빈손 외교' 위기에 처한 블링컨 장관은 5일(현지시간) 튀르키예로 떠나기 전 팔레스타인 서안지구를 깜짝 방문해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수반을 만나 전후 가자지구 통치 방안을 논의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튀르키예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란과 밀착행보를 보이면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전쟁범죄자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하겠다고 경고했다. 미국의 중동 정책은 딜레마에 빠졌고, 성난 아랍권을 향한 이란의 입김은 커지고 있다.
블링컨 장관은 지난 3~4일 이스라엘과 요르단 암만을 잇달아 방문해 '일시적 교전 중단'을 제안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독립적인 '두 국가 해법'을 거듭 강조하면서, 레바논 무장세력 헤즈볼라와 이란군의 참전을 촉발하는 확전은 안 된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는 "인질의 귀환을 포함하지 않는 일시적 휴전을 거부한다"면서 공세를 늦추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4일 아랍에미리트(UAE)·사우디아라비아·요르단·이집트 외무장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사무총장 등과 진행한 회의에서도 블링컨 장관은 '빈손'으로 돌아섰다. 가자지구 민간인 인명 피해에 격앙된 아랍권은 이스라엘 공세를 전쟁범죄로 규정하고 "국제법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 당장 휴전하라"며 압박했다.
표면적으로 양측의 입장 차만 확인한 가운데, 블링컨 장관은 5일(현지시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과의 회동을 위해 튀르키예로 향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스라엘 주재 자국 대사를 소환했고 "네타냐후 총리는 대화 상대가 아니다"며 등을 돌린 상태다. 그는 "이스라엘의 인권침해와 전쟁범죄를 국제형사재판소로 가져가는 계획을 지지한다"며 "우리 외무부가 이 작업을 이끌 것"이라고 밝혔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달 사우디 리야드에서 열리는 이슬람협력기구(OIC) 정상회의에서 가자지구 휴전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블링컨 장관의 중동행에서 인도적 교전 중단 협상에 진전이 있느냐'는 질문에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그렇다"고 답해 실질적인 물밑 협상 결과가 주목된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중동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이란의 움직임도 심상찮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이달 말 튀르키예를 방문해 휴전안을 협의한다. 하마스의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가 최근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를 비밀리에 만났다는 이란 국영IRNA 통신 보도도 나왔다.
지난 3일 이스라엘군이 중환자를 이송하던 가자지구 구급차를 공습한 이후 외국인과 이중국적자, 중환자들의 라파 국경 밖 대피 작업도 중단됐다. 로이터통신은 이집트 안보 소식통을 인용해 유일한 대피 통로인 라파 검문소 문이 다시 닫혔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를 포위하고 육해공군을 모두 동원해 군사작전을 펼치면서 또 다른 하마스 지도자인 야히아 신와르를 제거하기 위해 주민의 협조를 당부하고 나섰다.
미국 워싱턴DC와 유럽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는 가자지구 민간인을 희생시킨 이스라엘을 규탄하면서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하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하마스를 비난하고 팔레스타인 민간인 희생에 안타까움을 전하며 "누구의 손도 깨끗하지 않다"면서 지속가능한 평화를 달성하지 못한 정책의 책임을 인정했다.
[워싱턴 강계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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