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은행 옮겨간 유럽의 횡재세 바람
올해 은행 적용 움직임 증가
'고금리 예대마진 과다' 배경
여론 비판 직면한 韓은행들
해외사례 참고해 대책 찾아야
'국민의 고통을 분담하기 위해 국영 단거리 철도 노선을 무료로'. 작년 9월 스페인에서 실시된 정책이다. 여기에 활용된 재원 중 하나는 에너지기업 등에서 거둔 초과이득세, 이른바 횡재세다.
'윈드폴 세금(windfall tax)'. 바람에 열매가 떨어져 생각지도 못한 이익을 본 것에 빗댄 용어다. 비정상적으로 유리한 요인이나 뜻밖의 상황으로 과도한 이익을 거뒀을 때 여기에 과세하는 것으로, 한국에서는 횡재세라고 표현한다. 한국 금융계에서 요즘 핫한 용어 중 하나가 횡재세다. 한국의 은행들이 글로벌 고금리 기조를 활용해 이자수익을 늘려가고 윤석열 대통령이 '소상공인이 은행의 종노릇' '앉아서 돈 번다' 등의 비판을 쏟아내면서 부쩍 많이 등장한다.
초과이익에 대한 횡재세 부과 사례는 적지 않다. 1980년대 원유 가격 상승세가 이어질 때 미국 지미 카터 정권이 도입한 적이 있고, 1981년에는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가 은행에 과세해 경기대책에 쓴 적도 있다. 최근에는 유럽의 예가 대표적이다. 작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등에 따른 고유가 행진으로 톡톡한 재미를 봤던 석유·가스 등 에너지 기업을 대상으로 활용됐다. 영국은 작년 석유·가스 생산으로 벌어들인 이익에 대한 추가 세율을 더하는 방식 등을 택했고 그리스·헝가리·이탈리아·스페인 등도 횡재세를 도입했다. 올해는 횡재세 이슈가 은행으로 옮겨가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금리 인상과 고금리 장기화는 유럽 은행에도 짭짤한 재미를 안겨줬기 때문이다. 유럽 주요 21개 은행의 1분기 순이익은 역대 최대인 370억유로, 2분기 순이익은 전년 동기에 비해 29%가량 늘어난 329억유로였다.
이탈리아가 지난 8월 은행에 대한 추가 과세안을 내놓고, 여기서 만들어진 재원을 금리부담 증가와 물가상승에 고통받는 가계를 지원하는 데 쓰겠다는 입장이다. 여기에는 고물가로 인한 국민의 고통과 예대금리차 확대에 대한 불만이 깔려 있다. 스페인은 은행의 이자·수수료 수입 등에 4.8%의 추가 과세를 결정했고, 체코도 은행에 횡재세를 도입했다. 리투아니아 의회는 지난 5월 올해·내년 은행의 순이자수입을 대상으로 과거 4년 평균의 50%를 넘는 부분의 일부에 대해 60% 추가 과세하는 안을 승인했다.
횡재세는 법률적 쟁점뿐 아니라 △초과이익의 정의·범위 △기업 투자 의욕 저하 △특정 산업을 대상으로 할 경우 '조세 불평등' 등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이탈리아 등에서 도입이 추진되는 데는 예대금리차 확대에 따른 은행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상당 부분 이유로 작용했을 것이다.
올해 상반기에만 사상 최대인 29조4000억원가량의 이자수익을 거둬 '이자 장사'에 열을 올린다는 비판을 받은 한국의 은행들에 대해서도 '횡재세나 이에 준하는 부담·기여 부과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온다. 은행권에서는 '고금리 시장 상황 때문에 전 은행에서 나타난 현상이고 사회공헌도 많이 해왔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하지만 대통령의 비판이나 횡재세 주장 등에 국민들이 은행 편을 들지 않는 것을 보면, 은행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적지 않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은행들은 항변만 할 게 아니라 해외나 다른 산업의 사례를 연구해 이미지를 개선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근본적 대책들을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일본의 메가뱅크는 자국 내에서 저금리 영향도 있겠지만 예대금리차에는 별 변화를 주지 않으면서 대출이나 영업이익의 40%가량을 해외에서 일으킨다. 국내에서 몇 년 새 순이자마진을 높여오면서도 해외에서 올리는 이익은 많아야 전체 10%대인 한국의 은행들과 달라 보인다. 일본에서는 상대적으로 은행에 횡재세를 거둬야 한다는 논란이 많지 않다.
[김규식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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