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친왕비 희생의 삶…韓日 잇는 가교 될 것"
日황족태생 조선 마지막 왕비
평생 장애인 돕고 봉사하며
한일 문화 교류 앞장서기도
직접 모은 유물·작품 소개
영친왕비 뜻 기억하고 알려
"미래 세대 더 많이 소통하길"
"한일관계는 갈등을 반복해왔지만 앞으로 달라져야 하지 않나. 이방자 여사가 한국에 남긴 희생과 봉사의 뜻을 기억해 미래 한일 청소년들이 더욱 교류하고 소통하길 바란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부인은 '이방자'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 기념사업회의 정하근 이사장을 최근 매일경제가 만났다. 영친왕비는 일본 황족으로 태어나 조선 마지막 왕비로 죽는 날까지 장애인 복지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헌신했다. 정 이사장은 그의 환국 60주년을 맞아 지난 45년간 모은 유물로 기념전을 연다.
어린 시절부터 우표, 동전 등 수집에 일가견이 있던 정 이사장은 대학생 때 본격적으로 고미술품을 수집했다. 그는 회사를 운영하며 모아온 고미술품으로 은퇴 후 인사동에서 18년째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것은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의 예술작품들이다. 그가 소장하고 있는 것만 400여 점이다.
정 이사장이 영친왕비와 처음 인연을 맺은 건 1979년 창덕궁을 찾았을 때다. 그는 "낙선재 앞을 지나는데 사람이 아주 많이 몰려 있었다"며 "그곳에 이방자 여사가 곱게 옷을 차려입고 궁궐 사람들과 자선바자회를 열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때 처음으로 이방자 여사와 인사를 나눴지만 당시엔 나도 일본에 대한 감정이 썩 좋지 않았다"며 "집으로 돌아와 여러 책을 찾아보니 고초를 겪고도 끊임없이 선행한 삶이 가슴 아파 눈물이 다 났다"고 말했다. 그는 그 이후로 자선바자회를 다니며 영친왕비가 내놓은 작품을 하나둘 모으기 시작했다.
영친왕비는 1960년대 한국에 칠보를 처음 들여왔다. 일본 예술학교에서 배운 솜씨로 당시 육영수 여사와 장관 부인들을 대상으로 칠보를 가르쳤다. 정 이사장은 "이방자 여사는 20여 년간 궁인들의 자문을 받아 조선 궁중예복과 칠보 혼례복을 직접 만들어 전시를 열었고, 그 후원금은 다 한국 장애인학교에 기부했다"고 말했다.
장애인 복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던 1960년대, 영친왕비는 국가에서 받은 지원금과 자선바자회 후원금으로 부랑하던 장애인을 위한 공간을 마련했다. 정 이사장은 "이방자 여사는 장애인들이 사회의 일원이 되도록 기술을 가르쳐 목공소, 방직공장 등에서 일할 수 있게 했다"며 "세계 장애인 협회·기구에서도 그분의 공적을 높이 산다. 한 나라의 왕비가 소외계층을 위해 이토록 헌신한 역사가 없다"고 말했다. 영친왕비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89년 국민훈장을 받았다.
정 이사장은 영친왕비를 기리기 위해 기념재단을 세우고 유물 전시를 기획했다. 오는 8일에는 청소년을 위한 특별전을 개최한다. 그는 "시청각 교육자료를 통해 청소년들에게도 역사와 이방자 여사의 삶을 알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정 이사장은 2019년 일본 외무성 산하 일한문화교류기금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그는 "과거 영친왕비가 자선바자회를 열 때면 일본 황궁 사람들이 전세기를 타고 찾아와 왕비를 도왔다"며 "일본에선 이방자 여사를 일제의 야욕에 희생된 불쌍한 인물로 기억한다. 헌신적 봉사로 억압의 역사를 희석해 준 걸 고맙게도 여기는데 정작 한국에서는 이러한 인물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정 이사장의 목표는 영친왕비 기념관을 세우는 것이다. 그는 "한일관계의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들이 역사를 배우고 기억할 수 있는 상설 교육관을 마련해 문화 교류와 교육의 장으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제국 최후의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 작품전은 이달 8일부터 서울 종로구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안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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