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듬해 초라한 개관… 대한민국 박물관의 서막 [인천 박물관은 살아있다①]

김지혜 기자 2023. 11. 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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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물러나고 어수선한 시기에 문 열어
6·25전쟁 휴관… 소장품은 방공호에 숨겨
2027년 용현동 ‘인천뮤지엄파크’ 시대 눈앞
옛 인천시립박물관(세창양행 사택)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한 모습. 인천시립박물관 제공

 

“제물포 시대를 중심으로 외적의 침략에 대한 진실을 과학적으로 진열하는 것, 이것이 참으로 인천 박물관의 나아가야 할 방향이고, 근본 사명이라 믿습니다.” 인천시립박물관의 초대 관장인 고(故) 이경성 관장. 그는 인천의 박물관은 향토사 연구의 중심이라고 명명했다. 그는 직접 편찬한 박물관보를 통해 박물관이 지역사회에서 해야 할 역할과 정체성을 거듭 강조했다. 이는 ‘한강의 기적’ 이후 제조업 중심의 압축성장을 경험한 인천과 서울을 배후로 둔 덕에 개발 담론의 소용돌이에 휩싸여야만 한 인천의 문화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르키고 있다. 현재 인천에는 28곳의 박물관이 있다. 국·공립이 16곳, 사립이 11곳, 대학이 운영하는 박물관이 1곳이다. 인천은 지금 300만 도시에서 나아가 750만의 재외동포까지 품은 ‘1천만 글로벌도시’로 거듭났다. 선원의 도시, 산업인의 도시, 중소상인의 도시로 자리 잡은 인천은 이제 문화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를 이어가야 할 때이다. 이에 따라 경기일보는 모두 4차례에 걸쳐 인천의 박물관의 현주소와 함께 박물관의 특징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① 한국 최초의 공립박물관 ‘인천시립박물관’

옛 인천시립박물관(세창양행 사택) 앞. 인천시립박물관 제공

■ 1946년 세창양행 사택서 개관…외내연 확장 매진

대한민국의 박물관 역사는 인천에서 시작했다. 인천시립박물관은 국내 최초의 공립박물관이다. 지난 1946년 등장한 인천시립박물관은 올해로 78주년을 맞는다. 초대 인천시립박물관장인 고 이 관장을 시작으로 역대의 관장들은 박물관의 외연과 내연 확장에 매진해왔다.

인천시립박물관은 해방 후 사회적 혼란이 겹쳐진 1946년 4월1일 옛 세창양행 사택 건물에서 처음 문을 연다. 이곳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하면서 적산 가옥으로 바뀌기도 했다. 이어 1922년 인천부가 매입해 그해 9월 1일 인천부립도서관을 개관한 곳이다.

인천부립도서관은 개관 당시의 전시품은 모두 364점이 전부였다. 여기에는 인천향토관 자료와 ‘맘모스 상아’와 같은 적산 물품, 조병창 출토 중국 유물을 포함하고 있었고 나머지는 개인에게 빌려온 미술품이다.

■ 6·25전쟁 속 지켜낸 유물, ‘옥련동 시대’ 시작

인천부립도서관은 1950년 6·25전쟁이 시작하면서 무기한 휴관에 들어갔다. 당시 고 이 전 관장이 애써 모은 소장품은 박물관 아래에 있던 시장관사 방공호로 숨어들어갔다. 이어 한 직원의 친척이 살고 있는 송림동 송림초등학교 인근 창고로 유물은 이사를 갔다.

인천부립도서관은 전쟁 이후 2년10개월 동안 휴관하다 1953년 4월 1일 드디어 재개관했다. 인천상륙작전 당시 망가진 박물관 건물을 대신해 인천 송학동 1가에 있는 제물포구락부 건물에 자리잡기도 했다. 이후 이곳에는 다양한 문화 경험과 모임을 이어오는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인천부립도서관은 지난 1981년 인천이 직할시로 승격하면서 ‘인천직할시립박물관’, 즉 지금의 인천시립박물관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장소도 옥련동 시대를 열었다. 관장을 포함해 3명 뿐이던 정원도 늘려 첫 학예연구사를 채용하기도 했다.

지난 1981년 인촌 옥연동 인천직할시립박물관 개관식 모습. 인천시립박물관 제공

인천상륙작전기념관 부지에 지어진 시립박물관 건물은 당시 지하 1층, 지상 2층의 건물에 3개의 전시실과 옥외 전시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시유물 375점, 소장 유물은 1천121점에 불과했다. 이후 인천시립박물관은 지하1층, 지상3층 규모로 확장한다. 송학동 박물관보다 대지는 약 20배, 건물 면적은 6배가 증가했다. 박물관의 직원도 학예연구사 3명을 포함해 20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1994년에는 ‘영종·용유 지역 문화 유적 지표조사’를 시작으로 공백기에 놓인 지역사 연구에도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지역사 연구의 거점으로 자리잡고자 하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이다. 이어 박물관은 현재 인천 서구 원당동과 영종도 등에서 발견한 선사 유적과 유물을 전시실에 전시했다. 개항과 함께하는 근대 문화유물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지역사에 대한 다양한 특별전시가 이어지기도 했다. 2010년 ‘인천 짠물에 대한 해명’, 2013년 ‘안녕하세요, 배다리’ 등 다양한 지역사 전시를 했다. 또 학술대회 역시 놓치지 않았다. 제1회 학술회의는 제물포 구락부에서 ‘개항장 인천과 조계’라는 주제로 시작했다. 각국의 조계지를 중심으로 학술회의가 열린 것이다. 이어 2006년에는 화교를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열기도 했다. 이렇듯 인천시립박물관은 전시와 지역사 연구, 조사와 자료수집 쌍끌이 전략으로 인천에 뿌리를 내린다.

인천뮤지엄파크 조감도. 인천시 제공

■ 40여년 만의 이동…인천뮤지엄파크로

인천시립박물관은 새로운 시대 앞에 와있다. 오는 2027년 미추홀구 용현동으로 향할 ‘인천뮤지엄파크’ 시대가 그것이다.

인천뮤지엄파크는 미추홀구 학익동 587의52에 4만1천170㎡(1만2천475평)에 들어선다. 이곳에는 지하1층~지상4층 규모의 시립박물관 1만3천540㎡(4천75평)과 함께 시립미술관도 자리잡는다. 이어 주차장과 예술공원 등도 포함한다. 총 사업비는 2천14억원으로 전액 시비로 지어진다.

인천시는 이곳을 미술관·박물관·예술공원 등을 결합한 전국 최초의 복합문화시설로 만들 계획이다. 현재 시는 국내 최초의 박물관과 미술관 복합시설인 만큼, 이곳을 채울 콘텐츠와 전시 기법에 힘을 쏟고 있다.

첫 개관 당시 고작 364점의 유물이던 인천시립박물관은 2002년 약 5천점, 2012년에는 1만여점을 뛰어 넘었다. 이어 현재는 약 1만2천여점의 소장품을 품고 인천 삶과 역사를 지니고 있다.

시 관계자는 “현재 뮤지엄파크시대를 앞두고 유물 및 전시 방향성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터뷰 손장원 인천시립박물관장 “박물관의 저력은 유물에서 나온다”

손장원 인천시립박물관장. 김지혜기자

“박물관 정책의 핵심은 ‘유물’ 입니다.”

손장원 인천시립박물관장은 1분1초가 아깝다. 할 일은 많은데, 1일은 24시간 밖에 없는 탓이다. 손 관장은 오는 2027년 문을 열 인천뮤지엄파크으로의 이사를 준비하기 위한 컨트롤 타워다. 손 관장은 “박물관은 ‘유물’이 중요할 수 밖에 없다”며 “관람객들은 옛 것 그대로에서 오는 ‘아우라’를 느끼기 위해 박물관에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고 했다. 이어 “시립박물관이 보유한 국가지정문화재는 보물 1개가 전부이다”며 “유물 확대를 절실하게 해야 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손 관장은 송학동 시대에서 넘어온 옥련동 시대의 막바지를 장식하고 있다. 손 관장은 지난해 12월 인천문화재단·옹진군과 함께 인천 섬 생활사 조사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초대 관장이 강조한 ‘섬 지역’에 대한 유물 및 기록에 집중하고 있다.

손 관장은 “직원들과 함께 밤 낮이고 매달리고 있다”며 “인천의 문화적 경험의 지표를 상승시키고, 다양한 박물관 경험을 제안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또 손 관장은 상설전시와 기획전시 모두 중요한 동시에 이를 만드는 학예연구사의 역량과 함께 유물 구입을 위한 예산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그는 “유물 구입부터 전시의 스토리텔링을 만드는 것까지 학예연구사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며 “학예연구사를 박물관의 꽃이라고 부르는 이유”라고 했다. 이어 “소수의 인력으로 최대의 결과를 뽑아낼 수는 있지만, 인력 지원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손 관장은 ‘킬러 콘텐츠가 없다'는 인천의 박물관 정체성에 대해 선사시대의 스토리텔링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을 제안하고 있다. 손 관장은 “인천은 ‘마한의 영역’이라며 이 지점을 활용해 검단선사박물관의 정체성을 잡아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옥련동 시대에서 인천뮤지엄파크로 향하는 지금이 박물관의 확장을 고민할 수 있는 가장 주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인천시민들이 자랑스러워 하는 박물관을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지혜 기자 kjh@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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