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화가 그림 속 사람들이 춤추네
100년전 키스의 풍속화 재해석
100년 전 한 이방인의 푸른 눈에 비친 한반도 민중의 모습이 무대 위에 펼쳐진다. 담배 피우며 장기 두는 노인들, 잔치가 벌어진 혼례식, 독립운동을 하다가 잡혀가는 사람들, 어떤 염원들이 담긴 굿판과 연등 놀이….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가 남긴 한국 풍속화를 화려한 의복과 몸짓으로 재탄생시킨 서울시무용단의 신작 '엘리자베스 기덕'이 지난 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초연 무대에 올랐다. 키스는 1919년부터 우리나라를 여러 차례 여행하며 우리 일상을 소재로 다수의 수채화, 목판화를 남겼다. 사람과 풍경을 꼼꼼하게 살핀 관찰자이자 일제의 탄압에 고통받는 조선인들에게 공감하고 연민한 기록자였다.
1막 7장으로 구성된 극의 초반은 낯선 경성(옛 서울)에 도착한 키스가 이름 모를 사람과 풍경들 사이를 완벽한 타자로서 헤매는 모습을 보여준다. '백의 민족'이라는 말처럼 온통 흰옷을 입고 있던 사람들은 점차 색동옷 입은 아이, 갓을 쓴 남성 등 다채로운 복색으로 등장한다. 키스는 이국적이었던 모습에 관심과 애정을 보이고, 자신의 이름까지 얻게 된다. 그림에 넣는 표식인 낙관을 한국식 이름 '기덕'으로 바꾼 것이다.
극은 그림의 재해석이라는 기획 의도에 충실했다. 무대 배경부터 천장에 매달린 두루마리 종이에서 펼쳐져 내려온 화폭으로 꾸며졌고, 무용수들은 그 위에서 그림 속 살아 움직이는 모습으로 연기했다. 어느 혼례식 날 축제의 군무를 추는 사람들과 그 사이에 아름다운 차림새로 얌전히 앉아 있는 신부는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외국인 화가가 관찰한 모습 그대로다. 극은 여기에 더해 일본군의 압제로 비극적 운명을 맞게 된 신랑과 신부의 애절한 독무를 더하면서 암울했던 시대상을 보여준다. 서사의 흐름은 키스가 자신의 언니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보여줬다.
다만 기획 자체가 '키스의 모험'이어서인지 90분 동안 이어지는 장면이 다소 관조적이고 파편적이란 느낌도 있다.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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