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인요한 혁신위…‘희생’ 요구에 친윤 ‘침묵’, 비윤계는 ‘냉소’
2호 혁신안을 내놓은 ‘인요한 혁신위’가 활동의 성패를 결정지을 중대 기로에 섰다. 야심찬 ‘희생’ 요구에 당사자들이 무시에 가까운 침묵으로 일관하면서다. 지도부측 인사로부터 인 위원장이 혁신위 운영을 독단으로 한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비윤석열(비윤)계에서도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냉소가 흘러나온다. 혁신 대상으로 지목된 이들의 무대응이 지속될 경우 혁신위는 동력을 잃고 표류할 가능성이 크다.
인 위원장이 지난 3일 “당 지도부 및 중진, 대통령과 가까이 지내는 의원들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거나 아니면 수도권 지역에 어려운 곳에 와서 출마하는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인 위원장 요구에 호응한 의원은 5일 기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수행실장을 지낸 비례대표 초선 이용 의원을 제외하고는 전무한 상황이다. ‘윤핵관’(윤 대통령측 핵심 관계자)으로 불리는 권성동·윤한홍·장제원 의원 등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도 자제한 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당 지도부는 공식 안건이 아니라 대응하기 애매하다는 입장이다. 인 위원장의 희생 요구는 혁신위 의결이 아닌 위원장 차원의 제안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확실히 안건을 의결해서 제안해온 게 아니지 않나”라며 “지도부든 어떤 의원이든 간에 예산안 심의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 지역구 의원들로서는 입장을 밝히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박진호 국민의힘 당대표 특보는 전날 KBS라디오에 출연해 인 위원장에 대해 “선제적으로 이슈를 제기해 외부 여론몰이를 통해서 당을 압박하고자 하는 모습은 적절치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혁신위원회가 전권을 가진 것이지 위원장이 전권을 가진 게 아니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김기현 대표가 세운 것은 혁신위이지 혁신위원장이 아니라고 선을 긋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지점이다. 박 특보는 “정치적 소신을 피력하려면 혁신위원들부터 먼저 희생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마땅한 순서”라며 혁신위의 희생이 먼저라고 역으로 요구했다.
한 친윤 의원은 이날 기자와 통화하면서 “그분들(윤핵관)이 어떤 기득권을 엄청나게 갖고 있는 건 아니지 않나”라며 “장제원·이철규 의원 모두 (대선) 처음부터 고생하고도 엄청난 걸 누리고 있는 게 아닌데 인위적으로 요구하니까 별로 썩 와닿지는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친윤 의원들 내에서는 거론된 인사들이 모두 불출마·험지출마를 했다가는 선거에서 망할 것이라는 성토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비윤계에서도 친윤 의원들이 받아들일 리 없다는 시각 속에 냉소적인 반응이 나온다. 김웅 의원은 전날 SNS에서 “당사자의 사과와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며 “아무튼 선당후사 좋아하시는 그분들의 불출마 선언 온 국민이 기대한다”고 조용한 분위기를 꼬집었다. 또 “친윤들의 선당후사 챌린지 대박 날 듯”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김용태 전 최고위원은 지난 3일 “기계적인 불출마와 지역구 이동을 요구하는 건 대한민국 유권자의 수준을 낮게 보는 것”이라며 “혁신위가 진정 해야 할 역할을 하지 않고 말만 번지르르하게 내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 국정기조에 대한 지적과 당정관계 쇄신 등은 빼놓고 실현 불가능한 불출마론만 던지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인 위원장은 ‘희생’을 강조하며 영남 중진 수도권 출마, 동일 지역구 3선 초과 금지 등도 거론했지만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당내에선 현실을 외면한 “무지와 무책임의 극치”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혁신안에 대한 호응도 떨어진다. 혁신위는 1차 혁신안으로 이준석 전 대표, 홍준표 대구시장 등의 징계에 대한 ‘대사면’을 제안하고 당의 의결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홍 시장은 “과하지욕(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치욕을 참는다)의 수모는 잊지 않는다”고 반발하는 등 비윤계와의 통합 효과는 전혀 내지 못했다. 현역 의원 하위 20% 공천 배제와 국회의원 정수 10% 감축, 불체포특권 포기 등이 담긴 2차 혁신안도 혁신위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기에는 부족했다는 평가가 다수다. 이언주 전 의원은 전날 부산 토크콘서트에서 “국회 개혁을 얘기하고 특권을 내려놓자고 얘기하지만 국민의힘의 문제 이전에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줄 세우기와 대통령의 문제를 혁신하지 못한다면 결국 성과가 나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 위원장의 파격 행보로 여론의 관심을 받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당내 무호응이 지속되면 혁신위 위기론이 고개를 들 것으로 보인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김은경 혁신위’ 역시 3선 이상 의원의 동일 지역구 공천을 금지 등을 논의했으나 당내 반발에 부딪혀 공식 혁신안으로 발표하지 못하고 흐지부지됐다. 지난해 6·1 지방선거 승리 직후 이준석 전 대표가 띄운 ‘최재형 혁신위’도 공천 관련 혁신안을 내놨지만 지도부가 바뀌는 혼란 속 잊혀 ‘안’으로만 남게 됐다. 공천 혁신안을 통과시키지 못한 두 혁신위 모두 결국 실패라는 평가를 받았다.
인 위원장은 이날 MBN에 출연해 “(중진 의원들이 혁신안을) 안 받아들이면 안 된다”며 “오늘도 촉구하는데 몇 분이라도 결단을 좀 해서 발표하기 시작하면 저도 일이 쉬워지고 분위기 바뀌고 국민들도 ‘말만 하는 게 아니구나’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이나 김기현 대표를 직접 겨냥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인 위원장은 향후 행보에 대해서는 “‘3선 이상 못한다’는 건 전 세계적으로 없더라. 그래서 좀 미뤘다”며 “앞으로는 대구도 내려가고 홍(준표) 시장님 한번 뵙고 싶다”고 밝혔다.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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