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혼들을 위한 용주사 수륙대재 참 뜻 이어지길…묵전 김황섭 서예가 [문화인]
지난 3일 화성 용주사에서는 천불(千佛)의 명호(名號)를 써 내린 수백개의 번(幡)이 세상의 번잡한 일을 씻어내듯 나부끼며 이른 아침부터 사부대중을 맞이했다. 육지와 바다를 떠도는 죽은 영혼을 좋은 곳으로 보내는 천도를 위해 지내는 ‘제6회 용주사 수륙대재’가 열린 이날. 오방색이 번 하나하나마다 조화롭게 어우러져 수륙대재의 의식을 이뤘다.
행사장 빼곡히 내걸린 번을 써내려 간 이는 묵전 김황섭 서예가(62)다. 그는 국내 조계종의 각종 의식에 참여해 글을 쓰며 봉사하고 있다. 각종 번과 결계에 내거는 글을 쓰고 오리는데 그처럼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기술을 가진 이는 드물다.
그는 “수륙재 양식에 맞춰 집집마다 거는 위치가 다르다. 행사에 맞게 종이 선정부터 오방색 다섯 색깔의 배합도 잘 맞춰야 한다. 굿판에 맞게 서예를 쓰고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인데 정조대왕과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숨결이 깃든 용주사인만큼 이들과 왕후들의 영혼을 불러올 수 있도록, 또 전쟁 등 여러 떠도는 영혼들을 위한 글을 써내려갔다”고 밝혔다.
결계는 외부의 나쁜 기운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맑은 도량을 만드는 의식이다. 번은 영가들을 불러들이는 의식으로 나쁜 기운을 막은 후 의식이 진행되는 행사장에선 각종 번들이 고혼을 불러들인다. 묵전이 쓴 글들은 결계를 치고, 번으로 영가들을 불러들였다.
불교 신자로 절에서 장엄 작업을 해오며 솜씨를 인정받던 그는 약 15년 전 조계종 봉선사 한암 정수스님에게 서예를 사사해 글을 쓰고 있다. 또 조계종 의례의식을 관장하는 어산어장 인묵스님에게 번을 배워 조계종에서 진행되는 수륙재 행사에 참여한다. 매년 절에서 서예 특별전을 열어 여기에 나온 수익금은 모두 절에 기부하는 베푸는 삶도 이어나가는 중이다.
그에게도 이번 수륙대재에 참여한 감회는 새롭다. 용주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수륙재 봉행 도량’으로 고려시대 의식 절차를 계승했다는 자긍심이 높은데다 조선 정조 14년(1790년) 용주사에서 열린 무차회가 조선 후기 공식적인 기록을 갖는 유일한 국행수륙재라는 연구결과가 발표돼 그 가치가 크다.
특히 그동안 맥이 끊어져 전수되지 못했지만 지난 2017년 제1회 용주사 수륙대재를 봉행한 데 이어, 올해엔 고려 수륙대재를 고증하고 전통문화 복원과 계승에 힘을 쏟기로 하면서 용주사 본사와 말사 스님, 조계종 수륙대재를 집행하는 스님들이 한 자리에서 전통 의식을 제대로 선보이는 자리로 마련됐다.
묵전은 “희미해져가는 옛 의식을 다시 되살리는데 힘 쏟고 정조와 장조의 숨결이 깃든 용주사의 수륙대재에 그 정신을 함께 하게 돼 의미가 더욱 남달랐다”며 “절에서 삶과 인생을 배우고, 글을 배운 만큼 내가 취한 것을 다시 본래의 곳에 되돌려주는 게 배움의 참뜻이라 생각한다. 앞으로도 내가 가진 글을 더 많은 자비와 베풂에 쓰이도록 할 것”이라고 전했다.
정자연 기자 jjy84@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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