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발달장애인 내쫓은 법원…이혼 부친의 주택 반환소송
20년 살아온 아파트서 나오게 된 31살 장애인
부모가 이혼하면서 집에 갑자기 홀로 남게 된 발달장애인 김인호(31·가명)씨는 2023년 여름 서울남부지방법원 집행관에 의해 살던 집에서 쫓겨났다. 아버지가 이혼 뒤 자기 명의의 아파트에 거주하던 김씨에게 소유물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했는데, 법원은 김씨가 아버지에게 부동산을 인도할 의무가 있다고 봤다. 이 판결은 2023년 ‘장애인 인권 걸림돌 판결’ 중 하나로 선정됐다.
■ 부동산 인도, 부양의무 저버린다 보기 어렵다? (서울남부지방법원 2022나55376)
사연은 이렇다. 지적장애2급(자폐스펙트럼장애)인 김씨는 어린 시절부터 서울 양천구의 한 아파트에서 살았다. 어머니는 홈스쿨링·학교를 병행하며 아들인 김씨를 키웠다. 그러다 몇 해 전 어머니는 아버지의 외도를 알게 됐다. 상간·이혼 소송을 제기했고, 2021년 8월 이혼했다. 어머니는 이혼 뒤 아버지 집에서 나가야 했지만, 아들은 그럴 수 없었다.
어머니는 “아들은 지하철을 타면 두세 시간도 반복해서 도는 정도의 장애다. 복지관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하루 4시간 근무하지만, 단순 동작만 반복 가능할 뿐 주고받는 대화는 하지 못한다”며 “특히 장애를 가진 아들은 사는 동네, 집을 기준으로 수천 번 반복 훈련해서 일상을 유지할 수 있게 해놨기 때문에, 살던 집을 갑자기 떠나기 힘든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그 뒤 아들도 아버지가 소송을 걸면서 집에서 쫓겨났다. 어머니는 “장애가 있는 자녀는 성인이라도 독립하지 않았다면 일종의 양육비, 양육 책임을 이혼 시 다퉈야 하는데, 성인이란 이유로 그런 게 없으니 억울해 과거 청와대 국민청원도 올렸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자산가인 아버지가 생활의 여유가 있으면서 아들의 유일한 생활 근거지를 박탈하는 것은 부모로서의 부양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판결문에는 아들의 상황과 관련해 이렇게 적혀 있다.
“2021년 합계 773만8419원의 급여를 지급받은 점, 현재 이 사건 부동산에서 특별한 문제 없이 혼자 거주하며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점, (중략) 부모와 성년의 자녀 사이에 부담하는 부양의무의 이행이 반드시 생활의 근거지를 제공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등에 비추어보면, (중략) 부동산의 인도를 구하는 것이 원고의 피고에 대한 부양의무를 저버린다거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한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 자폐성장애인에게 20년 산 집 나가라는 것의 의미
해당 판결에 대해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디딤돌·걸림돌 판결 선정위원(이복실 서울시발달장애인지원센터 센터장)은 “(법원이) 비장애인 성년인 자녀에게 적용되는 부양의무 기준을 동일하게,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며 “자녀가 성인이지만 발달장애를 가졌다는 점이 충분히 고려되지 못한 판결이며 원고의 소유권에 보다 집중되고 있는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또 “법원은 피고가 근로활동을 하고 일정 급여를 받고 있다는 점을 들고 있으나 연소득이 770만원에 불과한데, 이 급여 수준이 성인 발달장애인이 현재 근거지를 벗어나 혼자 생활하면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충분한지에 대한 비판적 고려가 없다”며 “경제적 여력이 충분한 아버지가 성인이지만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의 퇴거를 요구하는 것을 일종의 유기, 학대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자폐성장애인에게 20여 년을 살아온 집이라는 공간의 환경변화는 상당한 스트레스 요인이며 불안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는 이 판결을 포함해 장애인 인권 ‘걸림돌 판결’ 6개, ‘디딤돌 판결’ 4개, ‘주목할 판결’ 4개를 선정했다. 노태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소장은 “한 편의 판결문은 그저 종이 몇 장이지만 그 속에는 한 사람의 삶이 있으며, 판결을 따라가다보면 장애인 인권의 현주소가 보인다”고 말했다.
이 판결문들을 다루는 보고회는 10월31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에서 열린다.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철웅 교수가 좌장을 맡고, 재단법인 동천 강용현 이사장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김아람 간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가 본 사업 및 판결 선정 과정을 소개하고, 디딤돌 판결(법무법인 디라이트 강송욱 변호사), 걸림돌 판결(소수자정책연구가 변재원 활동가), 주목할 판결(재단법인 동천 김윤진 변호사) 발표를 각각 진행한다.
■ 10월31일 보고회…디딤돌, 걸림돌 판결 어떤 것들 선정됐나
판결문 선정은 2022년 1월부터 12월까지 선고된 장애 관련 판결 총 5천여 건을 수집해, 장애·인권·법률 전문가로 구성된 선정위원 9명이 세 차례 회의를 거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디딤돌 판결’로는 ‘편의시설 설치 의무가 있는 편의점의 범위를 확대한 사례’ ‘혼자 운전할 수 없으리란 이유로 주민센터가 장애인에게 전동휠체어 교부를 거부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한 사례’ ‘장애를 얻어 피성년후견인이 된 검찰공무원의 명예퇴직 부적격 판정과 관련해, 피성년후견인을 당연퇴직 사유로 규정한 국가공무원법은 위헌이라고 본 결정’ ‘노인성 질병이 있어 장기요양급여를 받던 65세 미만 장애인이 활동지원급여를 신청했는데 거부하는 건 헌법불합치결정을 받은 조항에 근거한 위법한 처분임을 확인한 사례’ 등을 꼽았다.
‘걸림돌 판결’로는 ‘치료감호를 빙자해 발달장애인을 장기 구금한 것을 정당하다고 한 사례’ ‘전화로만 가능한 진료예약 및 장애인근로자 채용 면접시험에서의 불합격이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사례’ ‘청각장애인(구화인)이 정당한 편의 제공 미비를 이유로 장애인모집전형 불합격처분취소 등을 청구하였으나 면접 사항은 면접관의 재량권에 속한다고 제한적으로 판단하여 기각한 사례’ ‘부모의 이혼 후 부의 주택에서 홀로 거주하던 발달장애인 자녀에게 청구한 소유물 반환청구 소송으로 부가 자녀의 퇴거를 요구하여 인용된 사례’ ‘지적장애인의 일실수입을 인정하지 않은 사례’ ‘휠체어 이용 장애인의 시외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버스회사와 국가를 상대로 휠체어 탑승 설비와 저상버스 도입을 청구하였으나 차별에 대한 판단을 지나치게 엄격히 적용한 사례’ 등을 선정했다.
장애인 인권과 관련해 많은 고민을 하게 한 ‘주목할 판결’로는 ‘사법정보 접근권 향상을 위한 ‘읽기 쉬운’(Easy-Read) 방식의 첫 판결문’(그러나 피고를 상대로 청구한 장애인 채용 차별과 불합격처분 취소 소송은 차별이 아니라고 판단한 사례), ‘시설거주 장애인에 대한 후속 조치 계획이 미비한 상황에서 운영자가 추진하는 장애인 거주시설 폐쇄 신고는 인정될 수 없다고 판단한 사례’ ‘정신병원이 비자의입원 목적 이송 과정에서 발생한 정신질환자의 피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는지에 관해 직접원인 중심으로 판단한 사례’ ‘국민연금법상 장애등급 판정 기준에 대한 적극적, 실질적인 해석을 통하여 장애를 인정한 사례’ 등을 선정했다.
이 외에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이소아 변호사가 ‘장애인활동지원법 만 65세 연령 제한 조항에 관한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당사자의 권익 보장’에 대하여, 사단법인 온율 배광열 변호사가 ‘국가공무원법 제69조 제1호 위헌제청으로 바라본 후견제도’에 대해,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윤정노 변호사가 ‘시외 이동권 소송으로 바라본 장애인차별 구제청구 소송의 흐름’에 대해 토론한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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