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무용단 신작 엘리자베스 기덕 개막

정주원 기자(jnwn@mk.co.kr) 2023. 11. 5.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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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영국 화가 풍속화 재해석

몸짓으로 한 정서, 독립의지 표현

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엘리자베스 키스 초상화. 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지난 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초연된 서울시무용단 ‘엘리자베스 기덕’의 한 장면. 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100년 전 한 이방인의 푸른 눈에 비친 한반도 민중의 모습이 무대 위에 펼쳐진다. 담배 피우며 장기 두는 노인들, 잔치가 벌어진 혼례식, 독립운동 하다 잡혀가는 사람들, 어떤 염원들이 담긴 굿판과 연등 놀이….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가 남긴 한국 풍속화를 화려한 의복과 몸짓으로 재탄생시킨 서울시무용단의 신작 ‘엘리자베스 기덕’이 지난 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초연 무대에 올랐다. 키스는 1919년부터 우리나라를 여러 차례 여행하며 우리 일상을 소재로 다수의 수채화, 목판화를 남겼다. 사람과 풍경을 꼼꼼하게 살핀 관찰자이자, 일제의 탄압에 고통받는 조선인들에 공감하고 연민한 기록자였다.

1막 7장으로 구성된 극의 초반은 낯선 경성(옛 서울)에 도착한 키스가 이름 모를 사람과 풍경들 사이를 완벽한 타자로서 헤매는 모습을 보여준다. ‘백의 민족’이라는 말처럼 온통 흰 옷을 입고 있던 사람들은 점차 색동옷 입은 아이, 갓을 쓴 남성 등 다채로운 복색으로 등장한다. 키스는 이국적이었던 모습에 관심과 애정을 보이고, 자신의 이름까지 얻게 된다. 그림에 넣는 표식인 낙관을 한국식 이름 ‘기덕’으로 바꾼 것이다.

극은 그림의 재해석이라는 기획의도에 충실했다. 무대 배경부터 천정에 매달린 두루마리 종이에서 펼쳐져 내려온 화폭으로 꾸며졌고, 무용수들은 그 위에서 그림 속 살아 움직이는 모습으로 연기했다. 어느 혼례식 날 축제의 군무를 추는 사람들과 그 사이에 아름다운 차림새로 얌전히 앉아있는 신부는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외국인 화가가 관찰한 모습 그대로다. 키스는 가부장적인 결혼식 풍습에서 신부를 슬프고 비극적 존재로 봤다. 극은 여기에 더해 일본군의 압제로 비극적 운명을 맞게 된 신랑과 신부의 애절한 독무를 더하면서 암울했던 시대상을 보여준다. 서사의 흐름은 키스가 자신의 언니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보여줬다.

극 후반부 노란빛 연등을 활용한 민중의 군무는 무대 위의 공기를 몽환적이면서도 숙연하게 만들었다. 일제의 고문을 당했다는 여인의 의연한 독무에선 한(恨)의 정서가 느껴졌고, 키스는 그 몸짓을 어루만지려는 듯했다. 삼일절 만세운동을 연상시키는 무용수들의 힘 넘치는 군무도 이어졌다. 공동 안무를 맡은 정혜진 서울시무용단장은 앞서 언론 인터뷰에서 “편지를 보면 한국인은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고 일본군에 끌려갈 때 당당하고 늠름해 보였고, 오히려 일본인이 초라하고 왜소해 보였다는 내용이 있다”며 “이런 모습을 안무에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극의 기획 자체가 ‘키스의 모험’이어서인지 90분 동안 이어지는 장면이 다소 관조적이고 파편적이란 느낌도 있다. 공연은 5일까지.

지난 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초연된 서울시무용단 ‘엘리자베스 기덕’의 한 장면. 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지난 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초연된 서울시무용단 ‘엘리자베스 기덕’의 한 장면. 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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