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길채면 돼", 남궁민 한 마디에 안은진도 시청자도 눈물 터진 이유('연인')
[엔터미디어=정덕현] "아직도 날 모르겠소? 내 마음을... 그리도 모릅니까? 난 그저 부인으로 족합니다. 가난한 길채, 돈 많은 길채, 발칙한 길채, 유순한 길채, 날 사랑하지 않는 길채... 날 사랑하는 길채, 그 무엇이든 난 길채면 돼." MBC 금토드라마 <연인>에서 이장현(남궁민)이 차분한 목소리로 유길채(안은진)에게 건네는 그 말은 놀라울 정도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이 대사만을 놓고 보면 그리 대단한 말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도대체 무엇이 이러한 감정의 전이를 가능하게 한 걸까.
그건 장현이 하는 이 말 속에 그가 그간 길채를 위해 해왔던 일련의 모든 말과 행동들이 하나하나 새록새록 떠올라 얹어지기 때문이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아무런 걱정도 생각도 없어 보였던 길채였고 그래서 장현을 밀어냈었지만 장현은 그런 길채를 지금껏 단 한 번도 마음에서 떠나보낸 적이 없었다. 병자호란이 터지고, 오랑캐들에게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전쟁 통에 생사를 오가며 끈질긴 생존의 의지를 보이는 길채의 옆에도 대신 칼을 맞아주며 쓰러지던 그가 있었고, 끝내 자신을 버리고 다른 사내와 혼례를 치렀지만 장현의 길채를 향한 마음은 여전했다.
도망 노예라는 누명을 쓰고 심양까지 끌려와 오랑캐들에게 갖은 고초를 겪을 때도 끝내 그를 구해내 속환해준 것도 장현이었고, 황녀 각화(이청아)가 질투해 쏜 화살을 대신 맞은 것도 장현이었다. 남편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끝내 길채를 조선으로 돌려보냈고, 그가 이혼을 했다는 사실을 모르면서도 훗날 조선에 오게 된 장현의 발길이 먼저 닿은 곳은 길채의 집이었다. 혹여나 자신이 짐이 될까 장현의 마음을 끊어내기 위해 임신한 것처럼 꾸며 잘 사는 모습을 연기한 길채였지만 그 진짜를 끝내 알아차린 것도 장현이었다.
또한 이혼을 한 사실을 알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장현을 끝내 밀어내려 길채가 스스로 '환향녀'로서 심양에서 당한 이야기를 꺼내놓으려는 그 마음에도 그간 그가 겪어온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엇갈린 운명 속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갈 줄 알았지만, 심양에서 만나 장현의 마음을 알고 자신도 마음을 줬던 길채였다. 하지만 남편이 있다는 사실과 각화의 협박 때문에 피눈물을 흘리며 장현이 길채를 조선으로 돌아가게 했을 때, 길채의 마음 또한 무너졌었다.
그렇게 조선으로 돌아왔지만 '환향녀'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손가락질 받는 길채는 남편이 새 아내를 들여 살고 있는 걸 알고는 그에게 자신이 오랑캐에게 당한 치욕을 꺼내놓으며 그것보다 자신이 이혼하는 진짜 이유는 장현에게 마음을 준일 때문이라고 말한다. "심양에서 오랑캐에게 팔려갔었습니다. 거기서 참기 힘든 치욕을 당했지요. 이장현 나리도 만났습니다. 나리의 도움으로 속환되었어요. 오랑캐에게 욕을 당한 건 제 잘못은 아닙니다. 그 일로 이혼을 요구하셨다면 전 끝까지 물러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심야에서 이장현 나리께 마음을 준 일은 미안합니다. 해서 이혼하는 겁니다."
길채 또한 장현에 대한 마음이 이토록 깊다는 걸 그간의 서사들을 통해 알고 있는 시청자들은 남편에게 했던 것처럼 장현에게도 심양에서의 일을 애써 꺼내놓는 길채의 마음이 남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말에도 남편과 달리 "길채면 돼"라고 말하는 장현에게 길채는 더 아픈 이야기를 꺼낸다. "좋아요. 허면 오랑캐에게 욕을 당한 길채는...?" 그런데 장현은 그런 길채를 꼭 안아주며 말한다. "안아줘야지. 괴로웠을 테니..."
짧은 장면이지만 이 한 장면 속에서 길채와 장현이 나누는 말들은 그간 이들이 병자호란의 아픈 세월을 함께 겪어내며 맺어온 관계의 무게들이 얹어진다. 차근차근 서사를 통해 변화하고 누적된 감정의 빌드업이 이 한 순간에 집중되는 그런 느낌이다. 그래서 평이해 보이는 말들이지만 그 말이 주는 감정적 전이는 폭풍급이다. 빌드업을 통해 응축되어온 감정들이 엄청난 세월의 무게감으로 전해지는 것.
다시 생각해도 이 길채와 장현이라는 인물의 감정 빌드업을 차근차근 쌓아온 남궁민과 안은진의 연기를 칭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 장면에서도 남궁민은 끝내 눈물을 참아내며 담담히 길채를 안아주는 연기를 했고, 안은진은 참다 결국 터져 나오는 눈물을 떨구는 길채의 모습을 실감나게 연기했다. 이러니 시청자들도 저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경험할 수밖에. 최근 드라마에서 주목받고 있는 스토리의 '빌드업'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순간을 이 두 배우는 보여줬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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