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이 새 비서 원하니 해고?…“노란봉투법은 최소한의 안전장치”
파견직 비서로 일하던 A씨는 원청 사용자가 새 비서를 뽑고 싶어한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파견사로부터 퇴사 권유를 받았다. A씨가 사직서 작성을 거부하자 파견사는 “기존 근무지와 1시간 반 거리의 근무지에 자리가 났다”며 “새벽 4시30분 출근에 3교대인데 힘들어서 도중에 못 버티고 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제안 거부 시 계약 종료나 무단결근으로 징계 및 해고사유가 될 수 있다는 ‘협박’도 했다.
대기업 사내하청업체 직원 B씨도 느닷없이 해고통보를 받았다. 그는 “원청이 주·야간을 주간 하나로 합치게 됐다는 이유로 해고를 지시했고, 하청업체 인사 담당자는 원청으로부터 지시를 받은 당일 나에게 해고를 통보했다”고 말했다. 하청업체는 해고 회피를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는 5일 간접고용 노동자인 A·B씨 사례를 공개하며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처리를 촉구했다. 이들 사례는 모두 원청이 파견·하청 등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조법 개정안 2조엔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사용자로 본다”는 문장이 담겨 있다.
올해 1~10월 직장갑질119에 들어온, 신원이 확인된 e메일 제보 1507건 중 원청 갑질 관련 문의는 52건(3.5%)이었다. 직장갑질119는 “제보 사례를 보면 원청사업주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징계·해고, 임금, 휴가 등을 일방적으로 결정·통제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직장갑질119가 지난 8월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선 10명 중 7명이 노조법 2조 개정안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대통령이 노란봉투법 국회 통과 시 거부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는 응답은 44.4%로,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의견(20.6%)의 두 배 이상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오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란봉투법 처리를 시도할 예정이지만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예고한 상태다.
김현근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원청사는 간접고용 노동자의 채용, 근로조건, 인사, 해고, 작업지시 등 근로관계 전방위에서 실질적인 결정권자로 군림하고, 하청사는 원청과의 계약관계를 핑계로 나 몰라라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며 “이런 현실에서 노조법 2조 개정안은 헌법에 명시된 노동3권을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말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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