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情景] 그럼에도 '버텨내고 존재하기' 위한 공간

이재훈 기자 2023. 11. 5. 12:0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공간(空間)이 있어야 가능하다.

'버텨내고 존재하기' 위해선 말이다.

'시네 콘서트'를 표방하는 영화 '버텨내고 존재하기'는 그래서 공간에 대한 노래다.

인디의 위기, 극장의 위기라는 말이 수식이 아닌 불치병처럼 다가오는 시점에서 이를 이겨내겠다는 야망이 아닌 그럼에도 어떻게든 버텨내고 존재하겠다는 소망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싱어송라이터 최고은 기획 시네 콘서트
[서울=뉴시스] 영화 '버텨내고 존재하기' 주소영 & 최고은. (사진 = 엣나인필름 제공) 2023.11.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공간(空間)이 있어야 가능하다. '버텨내고 존재하기' 위해선 말이다.

'시네 콘서트'를 표방하는 영화 '버텨내고 존재하기'는 그래서 공간에 대한 노래다. 88년 된 광주광역시 최고(最古) 극장인 '광주극장' 구석구석을 톺아본다. 고상지&이자원, 곽푸른하늘, 김사월, 김일두,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아마도이자람밴드, 정우, 최고은&주소영 등 여덟 팀이 노래를 하는 장면을 통해서다.

공교롭게도 최근 멀티플렉스 극장가엔 생생한 아이맥스 화질로 볼 수 있는 톱 가수 아이유·테일러 스위프트의 대형 콘서트 실황 영화가 인기다. 황홀한 연출을 편안한 의자에 앉아 감상할 수 있는 이들 콘서트를 지켜보는 일은 기분 좋은 '소박한 사치'처럼 느껴진다.

어떻게 보면 '버텨내고 존재하기'는 이들 실황 영화 반대 편에 서 있다. 관객 하나 없이 복도·계단·사무실·영상실·매표소 등 무대가 아닌 곳에서 노래하는 장면들을 담았다. 그런데 이 모습들이 불가피한 형식으로 결합돼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인디의 위기, 극장의 위기라는 말이 수식이 아닌 불치병처럼 다가오는 시점에서 이를 이겨내겠다는 야망이 아닌 그럼에도 어떻게든 버텨내고 존재하겠다는 소망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그런 지점에서 김일두의 '뜨거운 불', 정우의 '철의 삶'은 묘하게 비슷한 맥락에서 공명했다.

"아무런 말 한 나는 / 기억도 알지도 못하는데 / 나는 왜 지울 수 없을까? (…) 너의 발견은 불이었어 / 저 해 보다 뜨거운 불"('뜨거운 불') "당신은 녹슬면 끝이라 했지만 / 천 번을 두드리는 삶도 / 세상에는 있는 것이었다"(철의 삶')

[서울=뉴시스] 영화 '버텨내고 존재하기' 아마도이자람밴드. (사진 = 엣나인필름 제공) 2023.11.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세상이 쉽게 기억하지 못해도, 세상이 보기엔 녹슬어 있어도 누구보다 뜨겁고 단단한 삶이 있다. 인디가수, 예술영화의 삶이 그렇다. 그렇게 "아름답던 세상이 모두 검게 내 것이 아닌 듯 변해도 / 산다 모두들 살아"(아마도이자람밴드 '산다')가며 버티고 존재할 이유를 찾는다. "왜 내가 부르는 노래는 누구에게 닿을 수 없는 걸까"(곽푸른하늘 '살아있기 좋은 날') 고민하면서 그럼에도 부른다. 자신들의 노래가 '마지막 만담'(고상지)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러닝타임이 64분으로 비교적 짧은데 뮤지션들의 영화적 취향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에릭 로메르·짐 자무시를 좋아한다는 김사월은 로메르 영화 '녹색 광선'에서 영감을 받은 노래 '확률'을 부른다.

이 영화의 프로듀서는 출연도 한 최고은이다. 국내 여성 뮤지션으로는 처음으로 영국의 대형 음악 축제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에 초대를 받은 그녀는 코로나19 시대에 이번 영화를 떠올리고 기획했다. 자신의 고향인 광주에 뮤지션들을 초청해 공연을 열어왔는데, 이번 영화로 좀 더 소통과 시선의 폭을 확장했다.

사는 자체가 팍팍해 모든 걸 밀어내는 배타적인 시대에, 단순히 낭만적인 이유가 아닌 진정한 연대와 지지 그리고 응원의 의미로 어떻게 노래해야 하는지 고민한 작품이다. 현실적으로든 추상적으로든 인디 가수들이 노래할 불가능의 공간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그 불가능한 시간을 흐르게 만드는 치열함은 우리가 버틸 근거를 마련해준다. 이제 그 숨겨진 가능성을 아직은 보이지 않음에도 함께 찾아야 한다. 최고은의 '축제' 노랫말처럼. "오늘의 축제가 끝나가도 / 인생의 무대는 계속되고 / 남겨진 날은 숨바꼭질처럼"

1993년부터 영화 간판을 그려온 박태규 화백이 담당한 '버텨내고 존재하기' 속 뮤지션들의 그림 간판은 '어벤저스' 같은 히어로물 구도를 연상시키는데 그건 당당한 영웅의 모습보다, 단단한 우리네 모습 같다. 인디밴드 라이브 음악을 영화화한 '라이브 플래닛' 시즌2 등을 함께 한 권철 감독이 연출했다. '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2022) 페스티벌 초이스에 선정됐고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2022) 한국경쟁 작품상을 받았다. 올해 '제11회 무주산골영화제' 개막작이기도 하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Copyright ©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