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넥실리스 말레이시아 동박 공장, 전력·인건비 확 낮춰 경쟁력 확보 [르포]

이지민 2023. 11. 5.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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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 규모 세계 최대 동박 생산 공장 가보니
“외국기업으로 최장 기간 법인세 면제 혜택”
지리적 이점에 원가 대폭 낮춰 경쟁력 확보

울창한 열대 야자수와 안경에 김이 훅 서리는 높은 습도가 반기는 남태평양 섬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공항. 이곳에서 북동쪽으로 40분간 버스로 달리면 단일 규모 세계 최대 동박 생산 공장을 만나게 된다. SKC넥실리스 공장은 연면적 16만2700㎡, 축구장(약 7140㎡) 23개 크기로 전체 두 개 공장 중 1공장이 지난달 23일 첫 출하를 시작했다. 2021년 7월 첫 삽을 뜬 지 2년여 만이다.

SK넥실리스 말레이시아 사바주 코타키나발루 동박공장에서 지난 1일 직원이 제박 공정에서 동박을 검수하고 있다. SK넥실리스 제공
방진복에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에워샤워를 마친 뒤 들어선 1공장에서는 원통 드럼통 모양의 제박기 수십여대가 돌아가고 있었다. 지름 3m 제박기는 제자리에서 천천히 구른다. 은빛 티타늄이 얇은 구릿빛 동박을 뽑아낸다. 동박은 구리를 얇게 만든 막이다. 배터리 4대 핵심소재(양극재·음극재·전해질·분리막) 중 음극재를 감싸는 필수 소재로 전기차 1대에 동박 40㎏가량이 들어간다.

동박이 얇을수록 배터리도 가벼워진다. 두께가 곧 경쟁력인 셈이다. 공장 한쪽에 놓인 폐 동박을 손으로 만져보니 조금만 힘을 줘도 찢길 것 같았다. 공정이 고도화하지 않으면 그만큼 주름이 생기거나 구멍이 뚫리기 쉽다는 이야기다. 

신동환 SK넥실리스 말레이시아 법인장은 이곳에서 생산되는 동박이 세계에서 가장 얇고, 길고, 넓다고 강조했다. 머리카락 두께(약 120㎛) 30분의 1인 4㎛ 동박을 1.4m 폭으로 생산해낸다. 6t짜리 롤을 펼친 길이는 세계 최장인 77㎞다.

SK넥실리스의 동박 제품군은 ‘B.E.S.T’로 요약된다. 이차전지(배터리)의 앞글자 B를 딴 B동박, 고연신(高延伸) 제품군 E동박, 인장강도를 개선한 S동박, 5μm 이하의 극박 T동박 제품군이 포함된다. 이 외에 초고강도 U동박 등 제품 라인업을 확장하고 있다. 이날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동박은 두께 6∼12㎛의 이차전지용 표준 동박이었다.

제박 공정을 마친 거대한 구릿빛 동박 롤들은 천장에서 내려온 주홍빛 크레인에 딸려 올라간다. 이후 자동이송배차 기기에 안착해 동박을 자르는 슬리팅 공정으로 옮겨진다. 슬리팅 기기에서 고객의 요구대로 동박을 잘라낸다. 표면을 얼마만큼 깔끔하게 오차 없이 자르는지가 핵심이다. 

SK넥실리스는 지난해 기준 동박 시장 점유율 22%를 차지했다. 중국 왓슨(19%), 대만 창춘(18%),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13%)를 따돌리고 글로벌 1위 입지를 굳혔다.

압도적인 1위로 격차를 벌리기 위해 SK넥실리스는 첫 해외 생산 거점으로 코타키나발루를 택했다. 휴양지로 친숙한 코타키나발루에서 SK넥실리스가 찾은 가장 큰 경쟁력은 ‘낮은 전력 원가’다. 코타키나발루의 전력비는 국내 정읍 공장 대비 절반 이하이며 베트남 등 다른 동남아 국가와 비교해도 70% 수준이다. 한 달 기준 공장에서 쓰는 전력량은 80㎿(메가와트) 정도다. 공장이 있는 사바주(州) 전체 전력 사용량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만만치 않은 규모다. 전력비 절감이 업체에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지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신동환 SK넥실리스 말레이시아 법인장이 지난 1일 코타키나발루 동박공장에서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SK넥실리스 제공 
사바주 당국과의 긴밀한 협의가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일이다. SK넥실리스의 모회사인 SKC 관계자는 “주 당국과 최저요금을 적용하기로 협의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를 뜻하는 REC 장기 구매 계약도 체결했다. 구체적인 기간과 전력량 규모는 비공개이나 이로써 전용 전력 100%를 신재생에너지로 사용하는 RE100을 100% 이행할 수 있게 됐다. RE100 이행 선언은 국내 동박업계 최초다.

한국 대비 3분의 1수준인 낮은 인건비와 ‘법인세 면제’ 인센티브도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아시아, 유럽, 북미시장까지 수출이 쉬운 지리적인 이점도 한 몫했다. 인도네시아, 필리핀보다 인프라는 더 잘 구축돼 있으면서 지리적 이점은 동일하게 누리고 태국보다는 인건비가 저렴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투자 유치가 어려웠던 코로나19 시기 사바주 정부와의 이해관계도 맞아떨어졌다. 신 법인장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심할 때 그 어떤 기업도 투자하지 않을 때여서 유리한 인센티브를 끌어낼 수 있었다”며 “외국기업으로서 최장기간 법인세 면제 혜택을 받았다”고 했다. 그 결과 2021년 1월 부지 선정 뒤 7개월 만에 쾌속으로 착공이 이뤄졌다.

코타키나발루 공장은 똑같은 규모와 구조로 두 개 공장이 있는 ‘쌍둥이 공장’이다. 공사가 마무리 단계인 두 번째 공장은 내년 1분기 완공된다. 1, 2공장 생산 규모는 연산 5만7000t이다. 전북 정읍 1∼6공장의 5만2000t을 뛰어넘는 동시에 단일 공장 기준 세계 최대 규모다.

지난해 7월부터는 폴란드 포드카르파츠키에주 스탈로바볼라에도 연산 5만7000t 규모 공장을 짓고 있다. 내년 상반기 완공해 가동을 시작하면 국내 정읍, 코타키나발루, 폴란드 3곳 공장은 연 15만여t의 동박을 생산하게 된다. 김자선 SK넥셀리스 말레이시아법인 동박생산실장은 “메이저 배터리 회사는 물론 신규 진입하는 배터리 회사들도 저희와 제일 먼저 컨택한다”며 “새 고객사들이 저희와 장기 계약을 맺고 싶어한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코타키나발루=이지민 기자 aaaa3469@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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