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지름 3m 드럼서 동박이 돌돌… 상업생산 개시한 SKC 말레이 공장
지난 1일 말레이시아 사바주 코타키나발루. 도심을 벗어나 차로 약 20분을 달리자 코타키나발루 산업단지(KKIP) 내 위치한 SK넥실리스 말레이시아 공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SKC의 동박 생산 자회사 SK넥실리스의 첫 해외 생산법인으로, 지난달 23일 첫 출하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상업 생산에 돌입했다.
2차전지 음극 집전체로 사용되는 동박은 구리를 두께 10㎛(1㎛는 100만분의 1m) 이하로 얇게 펴 만든 구리 막이다. 전기차 한 대에 들어가는 배터리에서 25~40㎏가량을 차지하는 핵심 소재다. 이날 SKC는 동박 업계 최초로 해외 생산 공장 내부를 공개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방진복으로 무장한 채 클린룸에 들어서자, 지름 3m에 달하는 거대한 티타늄 드럼이 장착된 제박기 60여개가 눈에 들어왔다. 일정한 속도로 회전하는 드럼 표면에는 매우 얇은 동박이 붙어 있었는데, 이 동박이 드럼에서 분리되는 동시에 모터에 감기면서 두루마리 휴지 형태를 만들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베틀을 보는 듯했다.
동박은 도금(鍍金·금속 등을 물체 표면에 입힘)의 원리를 이용해 생산된다. 폐전선, 스크랩 등에서 확보한 구리를 황산 용액에 녹여 도금액을 제조하고, 이를 전기 분해해 티타늄 드럼 위에 구리 이온을 전착시키면 동박이 만들어진다. 신동환 SK넥실리스 말레이시아법인장은 “제조 과정이 까다롭기 때문에 동박을 얇고 길게, 또 폭이 넓게 만드는 것이 기술력”이라며 “후발 주자가 진출하기 어려운 사업”이라고 말했다.
제박 공정을 거친 두루마리 형태의 동박은 보관 지역에서 먼저 육안 검사로 이상 유무를 확인한다. 이후에는 감겨 있던 동박을 다시 반대로 풀면서 엑스레이 등 첨단 자동화 장치로 품질을 확인하고, 동시에 고객의 요청에 따라 다양한 폭과 길이로 재단하는 ‘슬리팅 공정’을 거친다. 재단까지 마치면 최종 검사와 포장을 거친 뒤 고객에게 출하된다. 동박 롤은 무인운반차량(AGV)과 대형 크레인으로 이동한다.
SK넥실리스는 세계 최초로 4㎛(마이크로미터) 두께의 동박을 생산했는데, 이는 머리카락 두께의 30분의 1 수준이다. 또 세계에서 가장 긴(77㎞) 동박을 생산할 수 있고, 폭이 가장 넓은(1400㎜) 동박도 만든다.
SK넥실리스는 한국 정읍에 연산 5만2000톤(t) 규모의 공장을 가지고 있는데, 이 공장의 모든 공정과 노하우를 말레이시아 공장에 적용했다. 동시에 공정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공장 설계 방식을 개선해 원가 경쟁력을 높였다. 말레이시아 공장에는 경쟁사 대비 10% 이상 큰 지름 3m, 무게 10t 규모의 티타늄 드럼을 가진 제박기를 투입했는데 이를 이용해 단위 시간당 생산성을 약 20% 늘렸다.
SK넥실리스 공장이 들어선 말레이시아 사바주 코타키나발루 지역은 동박 생산에 최적의 위치라는 평가를 받는다. 동박 제조원가의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전력 단가가 국내보다 절반 이상 낮고 다른 동남아 국가보다도 20~30% 저렴하다. SK넥실리스 말레이시아 법인은 한 달에 80㎿(메가와트) 규모의 전력을 사용하는데, 이는 사바주 전체 전력 사용량의 약 절반에 달한다.
SK넥실리스는 REC(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 및 전력 장기계약 등을 통해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인건비도 기존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줄였다. 태풍 발생 지역보다 남단에 위치해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도 적을 것으로 예상한다.
사바주는 SK넥실리스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일정 기간 법인세를 전액 면제하고 전력·수도 등 각종 기반시설 비용에도 혜택을 줬다. 풍진제(Phoong Jin Zhe) 사바주 산업부 장관은 “주 차원에서 SK넥실리스 사업을 담당하는 전용 TF(태스크포스)를 만들었고, 그 결과 공장 착공에 필요한 모든 승인 절차를 마치는 데 7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SK넥실리스 말레이시아 공장의 생산 능력은 현재 1만4000t 수준이나, 증설을 통해 내년 5월에는 5만7000t까지 늘릴 예정이다. 이날 찾은 1공장 외부에서는 2공장을 건설하는 수십 명의 현지 인부들을 볼 수 있었다.
신 법인장은 “당초 설계상 CAPA(캐파·생산 능력)는 1·2공장을 합쳐 5만t 규모였지만, 공정 과정에서 그간 축적한 생산성 향상 기술을 모두 적용한 결과 총 5만7000t까지 늘어나게 됐다”고 말했다. SK넥실리스는 말레이시아에 이어 폴란드 스탈로바볼라에도 연산 5만7000t 규모의 동박 생산 공장을 내년에 완공할 계획이다.
신 법인장은 “주요 배터리 업체뿐만 아니라 시장에 신규 진입하는 업체들이 SK넥실리스의 제품을 찾는 이유는 다양한 제품군으로 요구 사항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며 “앞으로도 고품질 동박 공급을 확대해 한국의 2차전지 산업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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